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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사고 재난에 대비한 로봇 ‘휴보’
원전사고 재난에 대비한 로봇 ‘휴보’
  • 윤지은 기자
  • 승인 2015.06.22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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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호 카이스트 교수의 어떤 도전

▲ 오준호 카이스트 교수(사진 아랫줄 가운데)팀이 이끈 로봇 ‘휴보’가 원전사고를 대비해 재난과제를 수행하는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대회에서 미국, 일본 등의 로봇 강대국을 제치고 우승했다.
재난로봇은 전쟁이나 지진 등의 재난상황에 인간을 대신해 투입된다. 미국은 전쟁용 로봇으로 소형 탱크 모양의 로봇인 팩봇(packbot)을 개발해 지뢰를 탐지하거나 방사능 오염 여부를 측정하는 용도로 활용했다. 한국은 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에서 지난 1월 폭발물을 먼 곳으로 치우고 부상병을 안고 이동하는 ‘T-100’이라는 전쟁용 구조로봇을 개발했다.

그런데 이 재난이 방사능 사고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방사능에 노출된 현장에서 적군을 염탐하거나 폭발물을 제거해야 하는 일은 거의 드물다. 실제로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방사능이 노출됐을 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원전의 냉각수 밸브를 잠그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떤 재난로봇도 그 일을 수행하지 못했다. 재난로봇들은 정작 문고리조차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사고를 계기로 원전사고를 대비할 수 있는 로봇개발이 간절해졌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이하 DRC)’가 주목받고 있다. DRC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원전 현장에 사람 대신 로봇이 들어가 냉각수 밸브를 잠그고 나올 수 있는지를 겨루는 대회다. 지난 6일 열린 이 대회에서 오준호 카이스트 교수(61세, 기계공학과)팀이 이끈 로봇 ‘휴보’가 우승을 차지해 화제가 됐다.

이번 대회는 미국, 일본, 독일 등 6개 나라 24개 팀이 참가했다. 운전하기, 차에서 내리기, 계단 오르기, 문열고 들어가기, 밸브 돌리기 등 8개의 과제를 수행했는데, 그중 휴보가 44분 28초로 가장 빠른 시간 내 임무를 수행했다.

이번 우승은 한국의 로봇연구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오 교수는 “우리보다 앞서 로봇기술을 개발한 일본, 미국과 같은 선두주자와 겨룰 수 있는 실력을 보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강조했다.

▲ 로봇 휴보의 모습.
오 교수는 2004년 국내 최초로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를 개발해 로봇연구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UC버클리대에서 로봇공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카이스트 교수로 부임해 줄곧 로봇연구에 몰두해왔다. 그런 오 교수도 로봇연구에서 한차례 쓰라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13년 열렸던 DRC대회에서 휴보는 16개팀 중 9위에 머물렀다. 그 당시 휴보는 문 열기, 장애물 제거, 벽 뚫기 과제에서 0점을 받았다. 그때의 실패는 오 교수를 더욱 연구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시스템의 안정성이다. 오 교수는 “시스템이 다운되면 로봇은 실전에서 쓰러지고 만다. 그 경험이 너무 뼈아팠다. 하드웨어, 전자부품, 내부 통신의 안정성, 카메라, 마이크로폰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주변의 복잡한 환경 속에서도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작동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2년 만에 미국과 일본 등 로봇 강대국을 제치고 우수한 성과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휴보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다른 재난로봇과 달리 인간의 실생활과 가장 근접하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운전하고,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는 그런 임무는 언뜻 보기에는 재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지역에서는 휴보가 수행하는 기능들이 절실하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재난현장은 돌발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재난로봇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로봇이 실제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피해를 당하지 않는 것이다. 끝까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로봇을 만드는 연구가 요구된다. 오 교수는 “더 완벽하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로봇의 기능을 끌어올리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다”라고 말했다.

재난상황에서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이 필요하다는 것은 로봇연구자들의 공통된 과제다. 가까운 미래는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 재난상황을 완벽하게 수습할 날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윤지은 기자 jie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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