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만 잘주면 ‘쉬쉬’…교수·학생 ‘침묵의 카르텔’
학점만 잘주면 ‘쉬쉬’…교수·학생 ‘침묵의 카르텔’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5.06.22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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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강의평가’ 이대로 괜찮나

악평 남긴 학생 지목, 강의실서 엄포 놓는 사례 많아
학생들 “엄정한 평가, 무조건 손해…‘막대 세워’야죠”

서울 S대 건축학과의 A교수는 가족 명의로 설계사무소를 몰래 운영하면서 강의시간만 되면 건설수주를 따러 다녔다. 강의 대신 영업활동을 한 것이다. 그가 맡은 과목은 ‘팀 티칭’(교수 2명의 협력강의)이라 자리를 비워도 강의는 별탈없이 돌아갔다. 학계 후배를 팀의 강사로 뽑아뒀기 때문이다.

A교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일에 익숙해져 갔다. 익숙함만큼 행보도 나날이 대담해졌다. 강의시간에 영업활동을 하는 것도 모자라, 미국의 유명 대학에 박사과정을 등록했다. 학기 중 수차례 미국을 드나들며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 강의는 뒷전이었다.

학기 말이 돼서야 강의실을 찾은 A교수는 규정보다 더 많은 학생에게 A학점을 줬다. 일종의 입막음용 ‘선물’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알게 된 대학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그를 즉시 해임했다.

대학에선 왜 교수의 부정(不淨)을 먼저 눈치채지 못했을까. 이번 사건을 지켜본 한 동료교수는 “학생들 입장에선 교수가 수업에 소홀해도 학점을 후하게 주니 큰 불만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A교수의 기상천외한 부정(不淨)을 강의평가에 적어낸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A교수는 팀티칭을 하면서 교수 한 명이 강의를 하지 않아도 빈자리를 채울 교수자가 있다는 점을 악용했다. 학생들이 강의평가를 통해 제보(!)만하지 않는다면 대학본부도 알아채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학점을 후하게 준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당시 이 대학은 전체 교과목에서 팀티칭을 전면 중단했다.

강의평가 악평 남겼다가 ‘응징’ 당하는 학생들

학기말이면 학생들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강의평가를 엄정하게 할지, 눈치껏 적당히 하고 학점을 열람할지 양자택일의 딜레마다. 특히 전공교수 강의의 경우 ‘악평’을 쏟아낼 만큼 강의가 불만족스러워도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강의평가가 익명을 보장한다고는 하지만 악평을 썼다가 오히려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 탓이다.

▲일러스트 돈기성

기말고사를 앞둔 인천 I대 공과대학의 한 전공강의 시간. B교수는 수업 도중에 “중간(강의)평가 결과가 나왔는데 내 평가가 저조하게 나왔다”며 강의평가 얘길 불쑥 꺼냈다. B교수는 강의를 듣고 있던 한 학생의 이름을 공개하면서 “근데 OOO 학생은 강의평가에 욕설을 쓰면 어떡하나. 다음부터 주의하도록 해!”라고 경고했다. 해당 학생은 “죄송하다. 다음부터 (강의평가를) 똑바로 하겠다”고 대답하며 얼굴을 붉혔다. 결국 이 학생은 강의를 포기하고 재수강하기로 했다.

이 광경을 목격한 학생들은 강의평가에 악평을 남기면 교수가 ‘응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강의평가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게 나온 실상은 따로 있었다.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과목임에도 교수가 수업진도를 빠르게 빼고 과제물도 많이 내줬다는 게 수강생들의 얘기다. 그 학생의 표현(욕설)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B교수의 엄포는 고스란히 학기말 강의평가에 반영됐다. 이 강의를 수강한 한 학생은 “교수님의 얘기를 듣고 나서부터는 되도록 좋은 쪽으로 강의평가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 난처해했다.

서울 S대 경영학부의 C씨(24·남)도 난처한 일을 겪었다. 학기가 끝날 무렵 교수에게 한 학기 강의에 대한 감사의 인사 겸 소감을 담아 이메일을 보냈다. 교수는 며칠 동안 답장을 하지 않았고 메일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이 무렵 강의평가를 하게 된 C씨는 ‘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을 하지 않는 등 학생 개개인에 대한 피드백이 부족하다’고 솔직하게 썼다. 며칠 후 해당 교수가 C씨에게 “섭섭했었냐”며 말을 걸어와 화들짝 놀랐다고 한다.

학생들은 강의평가를 교수와 학생이 소통하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평가를 엄정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C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강의평가에 익명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사제관계는 적대적으로 바뀔 것”이라며 “어느 누가 굳이 이런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면서까지 평가를 엄정하게 하겠느냐”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경기도 C대는 강의평가 기간만 되면 학생 인터넷 커뮤니티에 “강의평가가 정말 익명을 보장해 주느냐”는 문의가 단골메뉴로 올라온다. 얼마 전 한 학생이 강의평가에 교수를 인신공격 하는 투의 평가를 썼는데 해당 교수가 학생을 찾아내 ‘너가 (악평) 썼냐?’고 직접 확인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로 강의평가에 대한 불신은 학생들 사이에서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대학관계자들에 따르면, 특히 도제식 교육이 이뤄지는 예체능계열은 강의평가 무용론이 나온 지 오래다. 사제 간의 보다 긴밀한 관계가 맺어지는 탓에 학생들이 교수의 강의를 비판하기 어렵다. 교수의 수업 태만 혹은 부정행위가 있었다 해도 강의평가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드물다.

예컨대 교수가 학생들에게 임의로 걷은 실습비를 사비로 유용해도 학생들은 웬만해선 강의평가에 쓰지 않는다. 강의평가에 이 같은 정황을 쓰면 해당교수에게 곧바로 알려질 것을 우려해서다. 최근 학생들이 SNS나 신문사에 제보하는 것도 모자라 청와대 신문고까지 찾아가 부실한 강의를 고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종 대학평가의 金科玉條 ‘강의평가’ 재점검 필요

이처럼 대학이 평가자인 학생의 익명성을 보호해주지 않으면서 강의평가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제는 이렇게 불완전한 강의평가가 현재 대학교육의 질을 측정하는 객관적 지표로 유일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대학구조개혁정책을 비롯, 학부교육선도대학지원사업(에이스사업), 교육역량강화사업 등 굵직한 정책에서 강의평가는 빠지지 않는다.

대학구조개혁 1단계 평가에서 ‘학사관리’는 수업관리와 학생평가 두 가지를 본다. 강의평가는 수업관리 항목에서 다뤄지고, 평균점수(정량지표)와 의견(정성지표) 등을 복합적으로 평가해 ‘학생 만족도’를 평가한다.

교육부 산하의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학사관리 평가는 A·B학점 남발 유무와 강의평가 결과 외에는 뚜렷한 평가기준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강의평가에 허점이 있다면 개선해 나가는 쪽으로 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반면 익명을 요청한 시간강사 D씨는 “일부 교수들은 강의를 대충해도 학기말에 A학점을 많이 주면 학생들이 강의 만족도가 높아져 강의평가에 낱낱이 고발(!)하지 않을 것을 알고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학생들은 강의평가가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불안감 속에서 마지못해 후한 평가를 하고, 교수들은 자신을 악의적으로 평가한 학생을 색출(?)해내는 것도 모자라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있지만, 정부와 대학은 합리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병훈 대학구조개혁위원(경상대 전 교무처장)은 “현행 강의평가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교육을 아주 잘하는 교수자와 교육을 소홀히 하는 교수자를 각각 고르고 걸러내는 역할은 강의평가가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견란’만큼이라도 로그아웃한 후 쓰게 해야”

학생들은 그러나 보다 실질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강의평가가 학사관리 차원을 넘어 교육만족도 평가의 중요한 척도로 쓰인다면 ‘의견란’만큼이라도 익명성을 지켜줄 별도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기지역 사립 C대를 졸업한 E씨(29·여)는 “기본 항목(객관식)을 체크한 후 ‘로그아웃’한 상황에서 의견란(총평)을 쓸 수 있게만 해도 심리적으로 받는 압박(불신)이 덜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모든 문항에 똑같은 평가점수를 주는 이른바 ‘기둥 세우기’나 질문을 제대로 읽지 않고 무작위로 작성하는 일을 막으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E씨는 “평가결과를 학생들이 바로 알 수 있게 해주면 강의평가를 책임감 있게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함께 수강한 사람들은 강의에 어떤 평가를 내렸고, 자신의 생각과 어떤 유사성(혹은 차이점)이 있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강의평가 결과가 교수에게 전달될 때 평가를 한 학생들에게도 동시에 전달돼야 평가를 신중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학생들은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강의평가 실효성에 대해 매학기 갑론을박을 벌인다. 이들은 그간 강의평가가 교수와 학생 간 ‘침묵의 카르텔’(무언의 합의) 속에 내던져져 있었다면 이제는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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