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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파 이슬람으로 개종해 세력 확대 … 비잔틴제국 황제까지 능욕
수니파 이슬람으로 개종해 세력 확대 … 비잔틴제국 황제까지 능욕
  • 교수신문
  • 승인 2015.06.1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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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초원에서 흑해까지_ 41.중앙아시아 초원에서 페르시아로(1): 서쪽으로 간 오구즈 투르크[투르크멘]-셀주크 투르크 제국


하시시는 잘 알다시피 대마초 또는 대마초로 만든 마취제다. 신앙심으로 고무된 젊은 전사들에게 대마초를 복용케 해 양심과 이성적 판단이 마비된 상태에서 살인과 폭행 등의 잔혹행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게 했다고 한다. 최근 IS라는 이슬람 테러리스트 집단이 이를 흉내내는 건 아닐까. 페르시아의 입장에서 셀주크 투르크인들은 야만인이었을 것이다. 비록 이슬람의 옷을 입고 있었어도 말이다.

▲ 투르크인들이 사용했던 갑옷과 도끼. 그들은 이것으로 자신들의 용맹함을 드러냈다
“누구도 자신의 뜻을 다른 이에게 강요할 수 없다. 다만 인도하고 모범을 보일 수 있을 뿐이다.”―『코란』 67장 26절

나라 이름 투르크메니스탄(T¨urkmenistan)의 시원이 된 종족 이름은? 당연히 투르크멘족이다. 서쪽으로 카스피해를 끼고, 북쪽으로는 아무다리야강을 경계로 우즈베키스탄 및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동북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남서쪽으로는 이란과 마주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국가, 투르크메니스탄.
여기가 과거에는(기원전 3세기 경) 파르티아왕국(중국 史書의 安息國)의 발상지였다. 수도인 아시가바트(Ashgabat)가 바로 그 지점이다. 이 도시의 원 페르시아 명칭은 Ešq-ābād. 그 뜻은 아주 낭만적이게도 ‘사랑의 도시(the city of love)’ 혹은 ‘헌신의 도시(the city of devotion)’ 또는 ‘사랑하는 도시(the beloved city)’다. 투르크멘 학자들 중에는 이 도시의 이름이 파르티아 제국의 창건자 아르사케스(Arsaces)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Arsaces가 돌궐식 발음의 영향으로 Ashk로 바뀌고, 여기에 도시를 뜻하는 말 -abad가 붙어서 ‘Arsaces(=Ashk)의 도시’ Ashk-abad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슬람 국가의 수도답게 아시가바트(현지에서는 아슈하바트에 가깝게 발음함) 주민 대부분은 수니파 무슬림이다. 인종적으로는 당연히 투르크멘인이 도시 인구의 77%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인, 아르메니아인, 이란인, 아제르바이잔인, 우크라이나인, 타타르족, 우즈벡족, 카자흐족, 유대인, 터키인 등 100여 소수 민족들이 함께 거주한다. 나라 전체 인구수는 500만 명이 채 안 된다.


투르크메니스탄은 1991년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했으나, 이듬해인 1992년 3월 CIS(독립국가연합)에 가입했다. 옛 소련 독립국 중 유일하게 통제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토 면적이 48만8천100 평방킬로미터로 남한의 다섯 배나 되는 이 나라는 카자흐스탄 다음으로 중앙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지만 전면적의 약 90%가 카라쿰(Kara Qum: ‘검은 사막’) 사막이다. 기후는 극도로 건조한 사막성 기후로, 여름에는 혹서가 계속된다. 겨울에는 겨우 영하 몇 도까지 내려가는 정도다. 민족 구성은 투르크멘인이 85%로 다수를 차지한다. 석유, 천연가스, 유황 등의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공업은 석유 채굴과 제유, 면직공업, 製絲業, 유리제조업, 융단업이 발달했다. 농산물로는 면화, 곡물, 포도, 양모, 누에고치 등이 생산된다. 1인당 국민소득은 5천 달러를 상회한다. 나라 동부에서 남부를 싸고도는 카라쿰 운하는 아무다리야 강의 물을 카스피해까지 인도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全長 1천400㎞) 舟行 관개운하다. 1954년에 착공돼 1967년에 완공된 주요 부분은 아무다리야 강에서 아시가바트 서쪽의 괴크 테페까지 840㎞에 걸쳐 있으며, 카라쿰 사막의 가장자리를 지난다. 이 운하에서 항행이 가능한 수로의 길이는 450㎞이며 운하의 물은 주로 관개용수로 이용된다. 본래 물이 부족한 이 나라에 운하의 물이 주는 혜택은 대단히 크다.


19세기 초반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과 제정 러시아 간에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 일명 ‘그림자의 토너먼트’가 벌어진다. 중앙아시아를 수중에 넣으려는 러시아의 집착은 대단했다. 세계대전을 의미하는 그레이트 워(The Great War)가 아니라 ‘게임’이라는 말이 사용된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는 양 제국 간 자신들의 사냥감 내지 먹이에 해당하는 식민지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한 판 게임에 다름 아니었다.
그레이트 게임은 1813년의 러시아-페르시아 조약에서 시작해 1907년의 러시아-영국 우호 조약으로 끝을 맺는다. 일부에서는 1917년의 러시아 10월 혁명을 게임의 종점이라고 주장한다. 제2차 세계 대전과 더불어 식민지 시기가 끝난 후, 이 용어는 중앙아시아의 강대국과 지역 강국의 지정학적 권력과 영향력에 대한 경쟁을 의미하는 the New Great Game과 같은 말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의 페르가나 분지 남서부 지역에 해당하는 코칸드에 이어 타시켄트, 그리고 부하라와 사마르칸드, 히바의 순으로 중앙아시아의 주요 칸국(汗國, khanate)들은 속속 러시아에 점령됐다. 마침내 1881년 괴크테페 전투에서 완강하게 저항하던 투르크메니스탄 남부의 테케족(Teke tribe)이 무너지면서 1883~1884년 메르브(Merv) 지방을 거점으로 하던 투르크멘 부족들이 잇달아 평정되고 전체 투르크멘이 러시아에 복속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광대한 러시아령 투르키스탄이 완성되면서,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청왕조의 중국 사이에 국경선이 확정되고 그것이 그대로 후대의 소련으로 계승된다. 투르크메니스탄이라는 나라도 이런 과정 속에 탄생한다.

▲ 투르크메니스탄 지도출처: https://www.google.co.kr

다시 오구즈, 달리 말해, 투르크멘이라 불리던 투르크족 연합체 이야기를 좀 더 하자. 시르다리아 강 북쪽에 거주하던 이들 오구즈 연합체의 일부 집단이 10세기 중엽 분가해 시르다리아 강 좌안으로 이주해 셀주크라는 인물을 수령으로 추대하며 잔드(Zand)를 근거지로 삼는다. 바로 이곳에서 이들은 이슬람을 받아들인다. 1020년에는 카라쿰 초원을 넘어 가즈나조의 영역인 호라산 북부를 침략한다. 1040년 단다나한 전투(the Battle of Dandanaqan)에서 셀주크 투르크가 가즈나 왕조를 격파하고 호라산(Khorasan) 지역을 접수하고는 여세를 몰아 1055년에는 바그다드에 입성한다. 이렇게 세상의 판도는 계속해 바뀐다.
이렇게 수니파 이슬람으로 개종한 셀주크 투르크족이 하중지방을 벗어나 이란, 이라크 등지로 세력을 확장하던 11세기 후반 이후 카스피해 남쪽 알보르즈 산맥(the Alborz Mountains)을 거쳐 시리아의 다마섹(Damascus)이나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오늘날의 이스탄불)에 도달하려는 상인, 여행자, 성직자, 외교관 등은 자칫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했다. 그들은 알보르즈 산중에 위치한 알라뮤트(Alamut: 오늘날의 Qazvin)라는 요새를 통과해야 했고, 그곳에는 ‘스스로를 희생하는 자들(those who sacrifice themselves)’이라는 의미의 피다이인(fedayeen Persian fidāʼīyīn, ‘희생’이라는 뜻의 말 fidāʼī의 복수형)이란 말로 고상하게 위장한 암살 조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중에 이 말은 피다이(fedayee)로 철자가 바뀌어 오스만 제국의 압제와 살육에 맞서는 아르메니아 게릴라 조직이나 무장 폭도들이 ‘자유전사(freedom fighter)’를 뜻하는 말로 자신들의 폭력성을 정당화 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서방세계에 암살단이라는 의미의 ‘the Assassins’라고 알려진 이 조직을 만든 사람은 콤(Qom) 출신의 페르시아인 핫산 사바(Hassan-i-Sabbah). ‘알라뮤트의 군주’ 혹은 ‘산중 노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이 인물은 중세 셀주크 투르크 제국에 저항하는 시아파 이슬람 무장 세력 니자리 이스마일리스(Nizari Ismailis)의 지도자였다.


Fedayeen(신을 위한 희생자들)이라는 이 저항집단을 달리 지칭하는 영어 Assassins는 ‘하시시 복용자들(eaters of hashish)’이라는 뜻의 아랍어 Ḥashshāshīn(ḥashshāsh의 복수형)에서 비롯됐다. 하시시는 잘 알다시피 대마초 또는 대마초로 만든 마취제. 신앙심으로 고무된 젊은 전사들에게 대마초를 복용케 해 양심과 이성적 판단이 마비된 상태에서 살인과 폭행 등의 잔혹행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게 했다고 한다. 최근 IS라는 이슬람 테러리스트 집단이 이를 흉내내는 건 아닐까. 페르시아의 입장에서 셀주크 투르크인들은 야만인이었을 것이다. 비록 이슬람의 옷을 입고 있었어도.
이 무렵 셀주크 투르크 제국에 니잠 울 물크(Nizam al-Mulk)라는 페르시아인 학자 겸 재상이 있었다. 셀주크 투르크 제국의 제2대 술탄(Sultan: 이슬람 군주) 알프 아르슬란(Alp Arslan: ‘용감한 사자’)이 내정문제 등 제국의 행정 책임을 맡긴 역사적 인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지도자는 용인술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것 같다.
1071년 8월 26일 비잔틴 아르메니아의 만지케르트(오늘날의 터키 무시 주 말라즈기르트) 부근에서 비잔틴 제국과 셀주크 투르크 간에 전투가 벌어진다. 이름하여 ‘만지케르트 전투(The Battle of Manzikert; (터키어) Malazgirt Muharebesi)’.
이 전투는 용병들 간의 결전이라고 해도 될 법하다. 비잔틴 제국의 군대에는 프랑크족, 영국,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불가리아, 투르크족인 페체넥(Pecheneg)과 쿠만(Cuman: 또 다른 말로는 킵착인) 용병들이, 셀주크 투르크 군대에는 역시 페체넥과 쿠만 용병이 자리잡고 있었다.
교전의 결과는 의외로 싱거웠다. 1, 2차 전투에서 우위를 보이던 비잔틴 제국 군대가 3차전에 이르러 무참히 패하고 황제 로마노스 디오게네스(Romanos IV Diogenes)가 셀주크 투르크의 포로가 된다. 이로 인해 아나톨리아 반도가 점차 투르크화 된다. 비잔틴 제국은 국가방어능력이 심각하게 약화되고, 내적 갈등과 경제적 위기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전투 이후 10년도 채 안 돼 투르크족이 아나톨리아 중심부에 대량 유입돼, 셀주크 투르크족이 7만8천 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획득한다.
유목 집단인 셀주크 투르크인이 수립한 제국의 우두머리 알프 아르슬란은 피투성이에 옷은 갈가리 찢긴 채 포로가 된 비잔틴 황제 로마노스 4세를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곧 정체를 알아채고 아르슬란은 황제의 목덜미에 구둣발을 올려놓고 황제로 하여금 땅에 입을 맞추도록 강요했다. 이때 둘 사이의 대화가 유명하다.
알프 아르슬란: 내가 만일 포로가 되어 당신 앞에 놓이게 되면 어찌 하겠소? 로마노스: 그렇다면 아마 나는 당신을 죽일 거요. 어쩌면 콘스탄티노플 거리에 당신 시체를 걸어둘지도 모르고. 알프 아르슬란: 내 처벌이 훨씬 무겁군. 당신을 용서하고 자유롭게 풀어주겠소.


▲ Louis Roederer社의 명품 Cristal Champagne (1993년産)
로마노스 황제는 한 주 가량 술탄의 포로로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술탄은 황제를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게 했다. 그러면서 안티옥, 에데사, 히에라폴리스, 만지케르트 등의 영토 양보에 동의하도록 했다. 무학이고 따라서 문맹이었을 투르크 유목민 오구즈족 출신 술탄의 사람 다루는 술책이 남다르다. 술탄은 또 승자에 대한 배상금으로 황제에게 금 덩어리 천 만개를 요구했다가 황제가 너무 과하다고 하자 1차로 150만 개를 선지급하고 매년 36만개의 금 덩어리를 바치는 것으로 조건을 변경한다. 자신의 아들과 황제의 딸의 결혼동맹도 맺는다. 그리고 황제가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갈 때, 온갖 선물에 두 명의 장군과 백 명의 맘룩(Mamluks: 노예군인)을 붙여 호위를 한다. 무슬림 역사에서 그에게 가장 위대한 명성을 가져다준 역사적 사건이다. 서방에서는 ‘무식한 야만인’이라고 얕잡아봤던 유목민 술탄이 고용한 재상 니잠 울 물크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다. 본명이 아부 알리 핫산 이븐 알리 투시(Abu Ali Hasan ibn Ali Tusi: 1018~1092년)인 이 사람은 비록 야만족이 세운 제국의 재상으로 봉직했지만 투르크인이 아니라 페르시아인이었다. 그를 가리키는 경칭 니잠 알 물크(Nizam al-Mulk)는 페르시아어로 ‘Order of the Realm’ 혹은 ‘System of the Kingdom’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1064년 알프 아르슬란 술탄에 의해 재상으로 임명된 후 1072년 술탄이 암살되고 나서부터 아들 말릭 샤 1세(Malik Shah I)의 치세까지 만 28년을 셀주크 제국을 위해 헌신한 이 인물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일이겠다.


아무튼 복잡하고 이채로운 역사가 전개된 중앙아시아 지역에 또 다른 상황이 전개된 건 순전히 외세의 알력에 의한 것이다. 앞서 영국과 러시아 간 ‘그레이트 게임’을 거론했다. 영국의 입장에서 보면 제정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향해 영토를 확장해 나가는 것은 대영제국이라는 ‘왕관 속에 박힌 보석(the jewel in the crown)’인 인도를 파괴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국은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각지의 汗國들인 히바, 부하라, 코칸드 등을 차례로 손아귀에 넣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게 되면 자칫 아프가니스탄 토후국이 러시아의 인도 침략을 위한 전진 기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 제국은 자신들의 국가 이기주의의 관점에서 중앙아시아를 바라보았다.
이 무렵 ‘샴페인의 여왕’이라 불리는 세계적 명품 샴페인이 만들어진다. 프랑스 루이 뢰더러(Louis Roederer)社의 ‘크리스탈(Cristal)’이 바로 그것이다. 병을 크리스탈로 만들었고 금장 라벨이 붙은 이 샴페인의 가격은 묻지 말자. 나는 리차드 기어,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귀여운 여인」을 보다가 쓸데없는 경쟁심이 발동해 한 병 사서 마실까 하고 구매처를 알아보다가 소심하게 마음을 접은 아픈 기억이 있다. 물론 언젠가 마시고 말겠다는 의지를 접은 건 아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수요가 高價에 비례하는 베블렌 제품(Veblen goods)이니 베블렌 효과(Veblen effect)와는 상관없이 이 그림 속의 떡에 해당하는 샴페인은 제정 러시아 황실에 공납하는 독점품으로 생산됐다. 베블렌 제품 따위의 용어가 만들어진 건 19세기 말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이 자신의 저서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1899)에서 신분 추구의 양태로서 ‘호화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를 규정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맞다. 사람에게는 그런 속성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사치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격에 맞지 않는데도 내가 폰티악이나 사볼까 하는 심정도 내 나름의 호화 소비의 욕구를 반영하는 것일 터. 그러니 황제와 황실 및 귀족들이 왜 사치를 마다하겠는가. 1876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2세를 위해 만들어진 이 샴페인은 최초의 프레스티지 뀌베(prestige cuv´ee or cuv´ee de prestige)로 간주된다. 최상품 샴페인에 붙이는 호칭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황제의 특별 주문에 의해 이 샴페인이 만들어진 당시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은 좋지 않았다. 짜르(Tsar, 황제. Caesar에서 비롯된 러시아말)는 암살을 두려워했다. 그는 1867년 6월 7일 프랑스 파리의 ‘앙글레 카페(Caf´e Anglais: ‘영국 카페’)‘에서 열리는 세 황제 만찬(D^lner des trois empereurs: ‘Three Emperors Dinner’)이라는 연회에 사용될 샴페인 병을 투명하게 만들도록 요구했다. 그래야 샴페인 버블을 볼 수 있고 혹시 병 안에 폭약을 숨기는 걸 방지할 수 있으니까. 루이 뢰더러社는 플랑드르(Flanders: 현재의 벨기에 서부·네덜란드 남서부·프랑스 북부를 포함한 북해에 면한 중세 국가)의 유리제조인에게 의뢰해 투명한 납유리로 만든 샴페인 병을 제작하게 했고, 그 때문에 샴페인의 이름이 ‘Cristal’로 알려지게 됐다.

연호택 가톨릭관동대·영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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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호크 2015-06-30 13:16:14
중앙아시아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야기해주는 드문 아티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