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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문학의 가능성 재음미 … 기발한 ‘세금’ 특집
80년대 문학의 가능성 재음미 … 기발한 ‘세금’ 특집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6.17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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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계간지 리뷰

“좋은 작품의 선정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문학 활동을 꾸준히 늘려감으로써 문학의 기반을 마련하도록 돕는 것, 이번 기회에 문학이 발의할 일은 이쪽이 아닐까 싶다. 이러지 못할 바에야 문학은 국가와 차라리 결별해서 스스로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평론가 장은수

사계절의 시계가 바뀌고 있다. 혼탁한 공기가 뜨거운 볕을 만들고, 국토 곳곳이 가뭄으로 쩍쩍 갈라지고 있다. 사람도 아프고, 山河도 아파한다. 그런 여름의 문턱을 지나고 있다. 이 계절 계간지는 어떤 고민과 모색을 담았을까.
<문학과사회>110호는 기획으로 ‘예술성과 통치성-검열, 제도, 시장’을 내걸었다. 시장과 제도라는 두 축의 ‘교묘한 공모’로 인해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길들여지고 위축돼 가는지 반성적으로 진단해보는 기획이란 설명이 붙어 있다. 편집자의 말, “한 사회의 예술이 절대적인 다양성을 보장받으며 발전하기 위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무관심의 지원이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2015년 한국사회에서 예술에 대한 여러 제도적 지원들은 묻고 따지며 관여하고, 결국 지지자가 아닌 관리자가 되고자 한다”가 눈에 쏙 들어온다. 이런 전제에서 출판계의 복잡한 사정들과 순문학 출판의 축소 문제, 예술 지원 제도의 맹점과 보이지 않는 검열의 문제,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공유하며 이에 맞서려는 예술계 내부의 다양한 모색들을 포괄적으로 검토해보려는 게 이 기획의 목표다. 그러나 논의는 소폭에다, 특정 분야에 치우쳐 애초 기획 목표에선 멀어졌다.


영화감독 이송희일의 글 「영화, ‘정치’의 복원」, 평론가 장은수의 「문학은 국가와 결별해야 한다」, 인문학 활동가를 자임하는 함돈균의 「공공적 삶과 시민 인문학, 인문정신-대학의 인문학 연구자는 왜 인문 활동가가 되었나」 등 세 편의 글이 기획으로 묶였다. 장은수가 한 말이 곱씹힌다. “국가의 아무런 지원이 없더라도 시인들은 자신의 내적 동기에 의해 시를 쓸 것이고, 소설가들은 자신의 내적 욕망을 좇아서 문장을 작성할 것이다. 이 엄연한 사실이 우리의 무기다.”, “좋은 작품의 선정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문학 활동을 꾸준히 늘려감으로써 문학의 기반을 마련하도록 돕는 것, 이번 기회에 문학이 발의할 일은 이쪽이 아닐까 싶다. 이러지 못할 바에야 문학은 국가와 차라리 결별해서 스스로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올해는 한일 국교정상화 혹은 한일협정 50주년의 해다. <역사비평>111호(2015 여름)가 이 문제를 인식해 특집으로 ‘한일협정 50주년, 탈식민의 미로’를 꾸렸다. ‘탈식민의 미로’라는 제목이 눈길을 끈다. 「독일-폴란드 관계정상화를 위한 ‘감정의 정치’」(이용일), 「에비앙협정 50주년을 넘어서―프랑스-알제리 ‘화해’의 줄다리기」(이용재), 「식민주의 과거, 예외화하거나 왜소화하기―이탈리아와 아프리카 식민지들」(장문석), 「북일 국교정상화와 ‘65년 질서’」(박정진), 「언론을 통해 본 한일협정 인식 50년」(오제연) 등 5편의 논문을 실었다. 타산지석의 묘를 찾는 접근임을 알 수 있다.


이 특집에 대해 <역사비평>측은 “한일협정 50주년을 맞이해 식민지배국과 피지배국이 2차대전이 끝나고 어떻게 관계정상화의 길을 걸어왔는지, 모색했는지 살펴보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세계사적 차원에서의 자립 경로를 모색한 것은 흥미롭지만, ‘탈식민’ 특히 ‘탈식민의 미로’라고 설정한다면, ‘한일협정 50주년’의 시간 궤적에 그려진 식민지 경험의 소산물 ‘이중의식’을 따져보는 작업도 응당 포함했어야 한다. 우리 학계의 일본 연구 現狀을 짚어내는 것도 가능했으리라.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 준교수의 서평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1965년 체제의 재심판―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이 더 신선하게 읽힌다.
<창작과비평> 168호(2015 여름)는 지난 봄호에 이어 ‘한국문학’의 언저리를 계속 맴돌고 있다. 특집 ‘세월호 이후, 다시 생각하는 한국문학’을 내세운 게 그렇다. <창작과비평> 여름호는 대화 「탈북인의 자리를 돌아보다」(고경빈, 설송아, 이향규, 한기욱), 논단과 현장 「사드와 한반도 군비경쟁의 질적 전환」(서재정), 「국가범죄와 법의 책무」(박성철) 등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문학 쪽에 비중을 뒀다. 그렇다면 <창작과비평>이 고민한 ‘세월호 이후, 다시 생각하는 한국문학’은 어떤 것일까.


여기에는 「‘가능한 미래’를 성찰하는 문학」(백지연), 「부모의 자리에 서서―최근 소설이 ‘세월호’를 사유하는 방식」. 「더 넓어지고 깊어지자―80년대 문학의 어떤 풍요와 결여에 대하여」(권성우), 「3·11 이후 일본문학과 ‘이후’의 상상력」(남상욱) 등의 글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창비측은 이 특집에 대해 “우리 시대의 근심어린 사건들에서 시작해 새로운 미래를 우리 가까이로 끌어당기려는 문학적 분투를 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문학적 분투를 통해 ‘시대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생각인데, 1980년대 문학이 사유의 토대다.
권성우는 ‘문학의 창조적 역할’(백낙청)을 좀 더 고민한다. “그것은 고도의 인간학으로서의 문학, 즉 감정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깊게 이해하면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전달하는 문학, 계몽의 그늘과 진보의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인식하면서도 더 깊은 시선으로 역사를 응시하는 문학, 세상의 깊은 허무와 환멸을 마주하면서도 섣부른 절망에 빠지지 않고 각자의 마음의 바다에 통렬한 도끼 자국을 남기는 문학을 의미한다.”


<황해문화>87호(2015 여름)는 앞의 계간지들과 달리 좀 더 직접적이다. ‘돌직구’를 준비했다. 특집 ‘세금 공부합시다’가 그렇게 읽힌다. 이 특집을 제외하고도 베네딕트 앤더슨과 백원담의 대담 ‘아시아 혹은 아시아라는 정체’나 다양한 문화비평 목록도 즐겁다. 먼저, 김진방 편집위원(인하대·경제학)의 말을 들어보자. “요즘 우리 사회는 공무원연금에 이어 국민연금을 두고 시끄럽다. 박근혜 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을 가리켜 ‘세대간 도적질’ 운운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 장관에게 복지를 위한 증세에 대해 물으면 ‘계층간 강도질’이라며 소리칠 지도 모르겠다. 이런 정부를 가진 우리지만 이제라도 복지와 세금에 대해 공부한다면 더 좋은 선택을 해서 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 특집에는 「세금의 원칙과 현실」(우명동), 「우리나라 세금제도의 특징」(강병구), 「세금의 기억」(전강수), 「세금과 복지 사이에서」(이태수), 「법인세 논쟁」(김유찬) 등의 글이 필력을 펼친다. 우명동이 18세기와 19세기, 그리고 20세기에 각각 제시된 대표적 조세 원칙을 소개하고, 그것들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강조했다면, 전강수는 박정희 정부의 부가가치세와 노무현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두 사례를 들면서 ‘증세의 저주’가 허구임을 밝힌다. 이태수는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증세가 필수적이지만 부자 증세를 통한 조세정의를 확립하는 게 1차 전략이 돼야 하며, ‘보편적 증세’는 적절한 조건과 상황이 도래한 시점에서 선택할 2차 전략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유찬은 법인세를 소득세의 원천징수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법인세율이 소득세율보다 훨씬 낮아서 법인이 대주주의 조세도피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게 그의 비판이다. ‘세금 공부’ 이만큼 쉽게 할 수 있는 데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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