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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견딜 수 없는 뒤틀림은 日帝 지배의 파생물이다”
“사상의 견딜 수 없는 뒤틀림은 日帝 지배의 파생물이다”
  • 교수신문
  • 승인 2015.06.1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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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식민지적 전향: 식민지와 문학』 정창석 지음|소명출판|448쪽|31,000원


‘식민지적 전향’을 논할 때 중요한 시점의 하나는 사상의 진위 문제보다도 시대 상황 즉 식민지 지배 권력의 강제력인 통치 논리와 ‘전향자’의 대응 논리 즉 오도된 점진론, 그 중에서도 근대화 우선주의의 사상적 취약성과 일본 제국주의라는 강함의 정신에 대한 추수성의 파악이 긴요하다.


이 책은 1930년대 후반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 한국의 ‘총동원 통치’를 위해 ‘신체제 운동’을 전개했을 때, 이를 실천한 ‘신체제 문학’을 조명해 한국 문학자들이 보여준 ‘식민지적 전향’의 사상과 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그것을 위해 이 책에서는 문학자에 대한 작가론이나 작품론 혹은 개별적이고 분산적인 전향론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절대주의 천황제에서 유출된 식민지 지배 논리와 문학자의 역사의식과 대응 논리를 규명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 체제 아래, 이에 반하는 일체의 사상과 활동이 금압된 한국에서 지식인에게 그나마 열려 있던 통로는 문화 활동이었다. 그 대표적인 무대를 문학이 담당해 시대성과 사상성을 표출했다. 이러한 성격은 이른바 ‘신체제 문학’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 한국의 영토화와 한국인의 동화를 노려 지배 이념인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강력하게 추진했을 때, 이를 수용한 ‘신체제 문학’에는 위기에 직면한 민족과 문학의 미래에 대한 모색이 사명 의식의 형태로 나타나 있다. 그러한 ‘신체제 문학’이 일본 제국주의를 위한 ‘전쟁 문학’으로부터 ‘국민 문학’ 나아가 ‘받드는 문학’에까지 이르는 과정에는 망국민의 비원임에 틀림없는 강력한 국가 의식과 국민 의식에 대한 동경심이 스며들어 있다. 그것이 결국 그들을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수용하는 민족 반역의 길로 접어들게 해, 문학은 물론 민족적 정체성마저 상실하는 ‘식민지적 전향’으로 흘러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식민지적 전향’의 사상 속에는 일본적 근대 문명 지상주의가 한국인의 민족적 국가주의를 말살해가는 궤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 궤적이 민족 해방 투쟁이라는 시대적 명제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가를 증명해 주고 있다.


식민지 지배 사상으로 서양 제국주의는 그들이 ‘미개’와 ‘야만’으로 부른 서양 이외의 지역을 식민지로 지배하며 백인종 우월주의를 날조해 ‘백인종의 負荷(whiteman’s burden)’라는 시혜 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냈다(orientalism). 이에 비해 일본 제국주의는 서양을 모방한 ‘일본인의 부하(Japanese burden)’를 내세워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하며 일본 민족의 우월성을 날조해 한국 민족에 대한 시혜 의식인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강요했고, 나아가 ‘동양의 평화’와 ‘아시아의 해방’을 선전했다(Japanese orientalism). 서양 제국주의가 식민지 지배를 인종과 인종의 관계로 설정해 지배와 착취로 일관한 데 비해,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지 지배를 민족과 민족의 관계로 설정해 지배와 착취에 더해 동화 정책을 펴 식민지 한국의 영토화와 민족 말살을 획책했다. 이러한 서양 제국주의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의 유사성과 차이점으로부터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한국에서 ‘식민지적 전향’이 출현했다. 거기에는 근대 문명을 매개로 서양 제국주의와 일본 제국주의의 유사성에서 오는 일본에 대한 수혜 의식과 차이점에서 오는 동일시 현상이 맞물려, 강력한 국가 의식을 선망하며 ‘강한 나라의 국민’이 되려 했던 열망이 얽혀 있다. 또한 거기에는 사상과 정신의 상관관계로 지배자 ‘식민(colonial)’과 피지배자 ‘원주민(native)’ 사이에 ‘선동(demagogy)’의 ‘주입(injection)’과 ‘감염(infection)’이 일어나 ‘동화(assimilation)’에 이르는 폐쇄 회로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식민지 한국에서 나타난 ‘식민지적 전향’은 ‘전향’이 갖는 일반적인 의미 즉 사상 혹은 신념의 성숙 과정에서 일어나는 시행착오 또는 회심 혹은 발전과 각성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식민지 지배와 피지배라는 시대 상황을 전제로 한 사상의 견딜 수 없는 뒤틀림이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 일본 지식인의 전향은 ‘국가 권력 아래 일어나는 사상의 변화’로 정의되고 있다. 이에 대해 같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 아래 일어난 한국 지식인의 ‘식민지적 전향’은 ‘식민지 지식인이 식민지 지배 권력의 통치 방침과 이념에 강제적이고도 몰주체적으로 타협해 일어나는 사상의 변화이며, 드디어는 민족적 정체성(identity)마저 상실하는 특수 정신 현상’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식민지 한국의 ‘식민지적 전향’은 일본 제국주의 이민족 지배의 파생물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식민지적 전향’을 논할 때 중요한 시점의 하나는 사상의 진위 문제보다도 시대 상황 즉 식민지 지배 권력의 강제력인 통치 논리와 ‘전향자’의 대응 논리 즉 오도된 점진론, 그 중에서도 근대화 우선주의의 사상적 취약성과 일본 제국주의라는 강함의 정신에 대한 추수성의 파악이 긴요하다. 그리하여 그것을 천착해 가는 과정은 한민족의 비원이었음에 틀림없는 민족 해방의 국가주의가 일본 체험의 파행성과 맹목적 향학열의 사대주의에서 나온 근대 문명 맹신의 근대주의에 얼마나 허무하게 함몰해갔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일본 제국주의의 파생물로 전향을 논하더라도, 한국의 지식인과 일본의 지식인의 전향에는 엄격한 차이가 있다. 일본인의 전향을 ‘국가 권력 아래 일어나는 사상의 변화’라고 할 때, 일본의 지식인에게는 그것이 강제적이든 자발적이든, 그 사상의 사이비성은 덮어두더라도 그 행위 자체가 그들의 천황에 대한 충군애국의 제스처일 수 있었으며, 국가주의와 조국에의 귀의라는 합리화가 가능했다. 그러나 한국의 지식인에게 국가 권력이란 식민지 지배 권력이었고 전향해 돌아갈 조국은 식민지였다. 따라서 그들의 전향은 문자 그대로 ‘식민지적 전향’이었고, 식민지 지배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이외의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식민지 한국의 ‘식민지적 전향’은 민족 반역의 폐쇄회로였던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식민지적 전향’의 양상은 일본 근대 문학자들이 주동이 돼 그 야만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대동아문학자대회에서 드러나듯, 일본 제국주의의 다른 식민지와 침략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식민지 한국의 ‘식민지적 전향’에는 당연히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력과 ‘전향자’의 자발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 경우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를 위한 식민지 통치를 펼칠 리가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식민지 지배에서 지배국의 강제력은 필수적인 요소다.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력이 식민지 한국의 모든 지식인을 굴복시킨 것도 아니며 사실상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들 ‘전향자’에게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력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강제력을 전제해 전향을 논할 경우, ‘전향자’의 행동은 모든 것이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생명욕의 표현으로 귀착돼 이윽고는 순환 논리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식민지 한국에는 형극의 세월에도 ‘비전향의 축’으로 생명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한국의 역사에서 이들 ‘전향자’들은 해방 후의 혼란을 틈타 자신들의 행각을 생명욕과 처세술로 둔갑시켜 오히려 근대 문명의 체험자로 자리 잡았다. 그러므로 ‘식민지적 전향’은 정치 문제와 이념 문제로 호도할 것이 아니라, 역사의식과 민족의식 문제로 정화해 오늘날까지도 횡행하고 있는 식민지적 정신 풍토를 청산하는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창석 동덕여대·일본어과
필자는 일본 쓰쿠바대학(筑波大學) 대학원 역사 인류학 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 전공 분야는 사상사와 한일 비교문학이다. 지은 책으로 『만들어진 신의 나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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