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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나무밭에 울려퍼지는 소리 ‘후푸후푸’
뽕나무밭에 울려퍼지는 소리 ‘후푸후푸’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5.06.17 1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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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32. 후투티

▲ 후투티사진출처: 주남저수지(www.junam.net)

지난회 ‘땅강아지’편에서 땅강아지를 즐겨먹는 대표적인 새로 후투티(hoopoe)를 들었다. 후투티(Upupa epops)는 파랑새목 후투티과의 조류이고, 흔치 않은 우리나라 여름철새다. 후투티과 중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새로 세계적으로 아홉 아종이 있다고 한다. 亞種(subspecies)이란 생물분류단위로 종(species)의 아래 단계를 뜻하며, 종으로 독립할 만큼 서로 다르지 않은 종을 이른다. 그래서 보통 후투티의 學名은 Upupa epops로 쓰지만 우리나라에 사는 후투티의 아종명은 U. e. saturata이다. 이 새는 아주 너른 들녘에서 자주 만날 수 있고, 인가 부근의 논이나 밭·과수원·하천 둑에서 발견 된다. 실은 필자도 달팽이채집 하러 서해안 태안반도 쪽에 갔다가 탁 트인 들판에서 그들을 처음보고는 “야, 어쩌면 저리 멋지고 예쁜 새가 있을까!”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땅강아지 잡겠다고 설치고 있었던 게지. 후투티는 우리나라 중부지방에 주로 서식하며, 동 네 가까이 뽕나무밭에 흔히 나타나기 때문에 ‘오디새’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후투티는 체장 25~32cm, 날개길이 44~48cm, 체중 46~89g로 다부지게 생겼고, 부리는 검은 색으로 가늘고 길어서 4~6cm에 달하며 아래로 약간 굽었다. 부리의 모양을 보면 그 새의 식성을 짐작할 수가 있으니 후투티는 먹이를 깊게 파서 잡아먹는 새다. 날개는 넓고 둥글며, 지상 3m 정도로 나직하게 난다. 속도가 느린 편으로 큰 나비가 날듯, 또 물결치듯 할랑거리며 날아간다. 머리와 목·등짝·날개깃·가슴팍은 황색이고, 날개·허리·꼬리는 검은색바탕에 흰색의 넓은 가로 줄무늬가 있으며, 배 바닥은 희다.
머리꼭대기에 뻗은 도가머리(羽冠,crest)는 크고 자유롭게 눕혔다 세웠다 하는데, 땅 위에 내려 앉아 주위를 경계할 때나 놀랐을 때는 바싹 곧추세운다. 후투티는 우관이 인디안 추장의 머리장식(crown)처럼 그럴듯하게 보이는지라 ‘추장새’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끔 머리를 치켜들고, 날개와 꼬리를 쫙 펴서 日光浴(sunbathing), 沙浴(sand bathing)을 즐긴다.


다른 새들과는 달리 스스로 애써 둥지를 틀지 않고, 구새통(나무에 저절로 난 구멍)·돌담·딱따구리 집(나무구멍)들을 쓴다. 그러나 낡고 허름한 둥지를 여러 해 동안 연달아 쓰기도 한다. 번식은 4∼6월이고, 번식하는 동안은 일부일처로 지내며, 4.5g인 5∼8개의 둥근 알을 낳아 암컷 혼자 16∼19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품고, 새끼보살핌은 암수가 함께 한다. 새끼는 부화한 지 20∼27일 만에 보금자리를 떠난다.
주로 곤충이 먹잇감이지만 작은 도마뱀이나 개구리는 물론이고 곡식낟알이나 산딸기를 먹기도 한다. 그들이 잡아먹는 곤충은 파리·거미·벌·귀뚜라미·메뚜기·매미·개미·개미귀신(antlion)들이며, 새끼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영양가 높은 땅강아지와 지렁이를 잡아 먹인다.
그리고 온통 둥지주변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배설물을 치우지 않아 아주 더럽고 구저분하며, 새끼들도 둘레에 일부러 구질구질한 똥을 찍찍 깔긴다. 이렇게 보금자리가 추저분한 것은 나름대로 침입자를 막기 위한 별난 수단이요 작전이다. 그리고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동안에는 어미 몸에서 고기(肉) 썩는 역겹고 쿠린 냄새나는 점액을 분비해 깃털에다 마구 문지른다. 이렇게해서 포식자(predator)를 막을뿐더러 기생충이 꾀는 것도 예방한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새끼가 다 자라 떠나고 나면 분비물 배출이 곧바로 그친다고 한다.


한국·아무르·사할린·중국·러시아 등지에서 번식하는 개체들은 남쪽에서 겨울나고, 중국 남부·베트남·말레이시아·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역시 텃새(resident bird)로 산다. 다시 말해 여름엔 우리나라에 와 번식하고 늦가을에 남으로 간다. 그런데 정녕 이들 새의 본 고향 安胎本은 더운 남녘지방이 아니라 태를 묻은(胎封) 바로 우리나라다. 재언하면 겨울철새들은 단순히 겨울추위를 피하고 서둘러 북으로 되돌아가지만 후투티 같은 여름철새(summer bird)들은 한국이라는 터전에서 새끼치기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사람도 마찬가지로 한곳에 붙박이로 있지 않고 주변 여건 따위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무리를 낮잡아 일러 ‘철새족’이라 불러 대접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철새 후투티들은 이번 여름에도 도처에서 탈없이 새끼치고, 고이고이 머물다가 갔으면 한다. 자네들 이듬해 다시 보세 그려! 그러나 아마도 지금쯤 우리나라에 후투티 씨가 마르지 않았을까 싶은데…. 어디 성한 게 있어야 말이지. 후투티의 서양이름이 후푸(hoopoe)로 불리게 된 것은 울음소리가 3음절로, 후푸-후푸-후푸(hoop-hoop-hoop)하고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이름 ‘후투티’는 어디서 온 것일까? 갖은 짓을 다했으나 내력을 찾을 길 없으니 막막할 뿐이다.


후투티는 2008년에 이스라엘 國鳥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그럼 우리나라 국조는? 한때 모 일간지에서 캠페인을 벌여 ‘까치’로 의견을 모았으나 국가인정을 받지 못했다. 뿐더러 요즘엔 해조취급을 당하는 통에 오히려 총을 맞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여북하면 한때 국민은행을 상징하는 새였으나 그 자리도 잃어버리고 말았을라고……. 나라꽃은 있으나 나라새가 없는 우리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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