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8:25 (금)
100세 시대, 晩學의 磨斧爲針
100세 시대, 晩學의 磨斧爲針
  • 이복자 서울시립대 연구교수·행정학
  • 승인 2015.06.15 11: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이복자 서울시립대 연구교수·행정학

며칠 전, 발표를 위해 참여한 학회의 춘계학술대회에서는 신노년에 대한 담론이 열기를 띠며 100세 시대 노년의 삶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었는데 노인복지정책을 중점으로 연구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공감되는 논의들이었다.

그런데 마침 등굣길에 접한 라디오 뉴스는 ‘노인 기준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상향 조정하는 안건을 대한노인회 정기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는 내용이 전해졌다. 무섭게 달려드는 고령사회의 위세를 떠올린다면 대한노인회의 이번 공론화는 실로 100세 시대에 매우 의미 있는 결단이 아닐 수 없지만 노인복지문제 등 여러 측면과 맞물려 있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서 풀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100세 시대, 과연 축복일까 아니면 재앙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건강이 유지되는 100세의 삶은 축복이요, 건강하지 않은 100세의 삶은 재앙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우리 가족은 매일 수시로 걸려오는 아버지의 전화와 씨름하며 하루를 힘겹게 마무리 하는 날이 많다. 10여년을 치매로 삶의 모든 것을 빼앗기신 아버지의 병환으로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살얼음을 걷는 듯 조심스럽다.

“출근해야 하는데 저 ×들이 못나가게 해. 돈 만원만 가져와. 목발 사고 염색하게. 내 돈을 왜 안 줘 ××….”

매일 반복되는 레퍼토리,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밤이 되면 더욱 난폭해지는 아버지는 시설의 선생님들께 요주의 인물로 찍힌 지 이미 오래다. 그러니 우리 가족의 제1의 관심사는 치매예방이 되는 음식, 이름도 생소한 많은 건강보조제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그런데 이런 서글픔 속에서도 아버지를 만날 때면 한 가지 참 좋은 게 있다. 아버지는 필자를 아직까지도 아주 예쁘고 젊은 30대로 봐준다. 나이는 많아지고 해놓은 일보다 해야할 일이 많아 늘 조급한 필자에게 잠깐이나마 위안을 주시는데 이상하게도 중독이 되는 듯 의기양양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필자는 ‘만학도’라는 닉네임이 낯설지 않다. 불혹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그토록 원했던 분야의 학업을 시작할 수 있었고 중도에 포기하지 않으려고 정진하다 보니 2011년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를 거쳐 지난해 박사후연구를 2년 동안 원없이 할 수 있는 기회를 또 얻었다.

비록 혼자와의 싸움에서 스스로를 KO승 시키고 때로는 KO패 시키면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빌려 ‘지금’을 잊고자 애쓰는 날이 어디 하루이틀이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필자는 안다. 바로 만학도이기 때문에.

흔히 말한다. 외국에서 학위를 취득 못한 자, 국내 일류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지 못한 자, 40세를 넘은 자들은 웬만해선 갈 곳이 없다고. ‘학문후속세대’는 이러한 의미에서 필자에게 ‘도약의 디딤돌, 쉬어갈 곳’을 만들어준 고마운 기회의 장이다. 긴 터널을 헤쳐나가면 밝은 평지가 곧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을 언제나 품을 수 있게 한 용기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만이 평온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100세 시대, 그러나 필자에게는 이 또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꿈꾸게 하는 傲氣 같은 것이 꿈틀거린다. 만학도의 끈기란, 아무리 힘겨운 리얼리티일지라도 언제나 현실을 뛰어넘는 비전을 재생산하는 힘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다소 늦은 출발에 숨차하는 만학도 분들께 이야기하고 싶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인내심으로! 결코 포기하지 않는 연륜의 패기로! 서서히 정진한다면 그 노력 자체만으로도 분명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이복자 서울시립대 연구교수·행정학
연구분야는 복지행정·노인복지정책 등으로, 논문은「지역의 유형별 특성과 노인의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의 관계성 연구(2013)」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