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가 펴낸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창작과비평사 刊)는 이 세 철학자들을 ‘아리아드네의 실’ 삼아 근대와 탈근대의 미궁을 조심스럽게 헤쳐나가고 있다. 서구철학, 그 중에서도 프랑스 철학이라는 두터운 사유의 숲은 김 교수의 시선을 따라 복잡한 얼개를 드러내면서 그 내부를 활짝 보여주기 시작한다.
철학자 김상환에게 이 책은 20년 철학공부의 정체성을 건 모험이었다. 철학적 모험이라 하면 심산수도하듯 인내하는 오랜 고군분투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이번 작업은 두달 동안의 집중적 사유의 침잠을 거쳐 초고속으로 완성되었다. 서구 현대철학이 단 60일 동안 한 젊은 철학자의 머리 속에서 요리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학생들 수업 시작에 맞춰 급하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원래 몇 년 후를 기약한 저서였는데, 어쨌든 빨리 빛을 본 셈입니다. 발표됐던 글들이 많지만, 각 장마다 서론에 해당하는 논문은 두달 동안 쓴 겁니다. 그 짧은 시간에 비전이나 그림을 한번 그려보자는 것이었는데, 순전히 그 동안 쌓인 내공을 믿고 덤빈 겁니다. 내 머리에 뭔가 큰 게 있지 않겠느냐, 그 안에서 짜내면 과연 무엇이, 얼마나 나올 것인가 하는 모험심리도 있었고요.”
김 교수가 볼 때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는 주체와 의식의 ‘허구성’을 폭로함으로써 탈근대를 근대성의 구조 안에서 노출시킨 최초의 인물들이다. 니체는 플라톤 이래의 형이상학을 물신화된 반동적 가치에 대한 숭배로,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는 신대륙의 발견을 통해 데카르트적 주체를 편집증적 환자로 묘사했다. 마르크스가 분석하고자 한 것도 특수한 상품이 교환가치의 일반 척도로 설정될 때 발생하는 배타적 특권과 어떤 착시현상이었다. 그 전까지는 자명하고 단단했던 사물의 관계가 이들의 손을 거치면서 느슨해졌으며, 사상누각처럼 그 토대가 쓸려나갔다. 김 교수는 이들이 개척한 사유의 여정을 굵직하게 정리하는 가운데 이들이 과거의 사상에 미친 해체론적 효과를 실감나게 보여주고자 했다. 그로써 탈근대담론의 이론적 기초인 현대 프랑스 철학의 일반적 특징과 쟁점들도 하나하나 짚어나가고 있다.
서구의 풍성한 사유전통을 단순, 축소, 왜곡없이 촘촘히 엮어가는 데 중점을 뒀죠. 한국에서 자생적 담론이 싹트기 위해선 전통사상 계승 못지않게 서양사상사의 핵심을 내면화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보편성과 미래성을 갖춘 사상, 역사적 현실에 부합하는 이념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전지구적 지배력을 획득한 서양문화의 원천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한편, 이 책이 독특한 점은 끈의 비유를 통해 철학사를 이해한 데 있다. 프로이트는 생명충동과 죽음충동을 각각 묶고 풀리는 끈운동으로 파악했으며, 베르그송은 수축과 이완을 되풀이하는 기억의 끈운동을 통해 정신과 물질이 태어난다고 설명해왔다. 헤겔은 존재의 신비에 침묵했던 칸트철학을 비판하고 논리적 계사와 존재론적 계사를 다시 하나로 묶었으며, 데리다의 이데올로기론과 맑스의 자본론 또한 헤겔의 계사적 사유의 재전유라고 볼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견해다. 그는 이것을 ‘太極圖說’의 “무극이면서 태극이다”는 언명과 연결시키고 있는데, 그의 ‘계사존재론’은 동서의 존재론을 서로 만나게 하는 작업이다.
“앞으로는 동양문헌을 통해 서구의 끈 사상과 만나는 지점을 구체화시키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끈의 비유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데, 끈은 저에게 시대를 뛰어넘어서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은유적 연락망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김 교수는 요즘 들뢰즈 철학의 집대성이라 평가되는 ‘차이와 반복’을 번역중이다. “차라리 데리다는 쉬운 편”이라고 말하는 그는 세 학기에 걸쳐 이 책으로 대학원 수업 강독을 했는데, 이제야 자유자재로 읽힌다고 그 난해함에 혀를 내두른다. 한 학기 더 읽고 번역을 마무리 지을 생각인데, 이것이 가져다준 수확 중의 하나는 들뢰즈가 데리다와 많은 점에서 상극에 놓인 철학자라는 점. 앞으로 김 교수는 그 둘을 비교하는 논문을 많이 발표할 계획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