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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융합 아닌 과학이 어디 있으랴
본디 융합 아닌 과학이 어디 있으랴
  • 김도현 포스텍 석박사통합과정·시스템생명공학부
  • 승인 2015.06.09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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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최근 우리주변에서 익숙하게 들을 수 있는 융합과학은 이 시대에 생겨난 단어인 것 같지만,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알게 모르게 있었던 일이다. 식물학자인 브라운(Robert Brown)이 관찰한 물 위의 꽃잎의 움직임인 브라운 운동(Brownian motion)은 예측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라고 과거 오랫동안 받아들여져 왔지만,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적으로 이를 예측함으로써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위너(Norbert Wiener)는 이것을 확률론적 방정식을 통해 수학적으로 일반화 시켰고, 이후 이또(Kiyoshi Ito)가 이 식을 미적분 할 수 있는 확률미적분학을 창시하게 된다. 새뮤얼슨(Paul Samuelson)은 이를 이용해 경제학에서 효율적인 시장에 대한 개념을 제시하고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위대한 과학자들 뒤에 나오기는 그렇지만, 당장 필자가 연구하고 있는 단일 분자 수준에서의 세포막 단백질의 거동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도 위의 브라운 운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과학엔 참으로 많은 일들이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서로 다른 경계에 있는 학문들을 융합하는 일은 왜 중요할까. 바로 창발성(Emergent property) 때문이다. 창발성은 하위 계층에 없었던 부분이 상위 계층에서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일컫는다. 즉, 융합학문은 학제간 연구를 하면 분명히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발견을 불러올 것이라는 사상에 입각한 것이다. 창발성의 본질에서는 서로 다른 두 지식이 만나면 새로운 지식이 생겨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난 지식이 개인에겐 새로운 지식일 수 있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새로운 것이냐는 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비슷한 배경지식으로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창발해낸 새로운 지식이 이미 선구자들에게는 새롭지 않을 확률이 크다. 하지만 다른 경계에 있는 학문에서 나오는 지식들의 조합이라면 그 확률은 낮아질 것이다. 따라서 각각의 분야가 고도로 발전한 현대 과학 시대에서는 서로 다른 분야를 연계하고자 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노력이 부단히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융합과학단을 통해 국가핵심연구센터(NCRC) 사업 등 과학뿐만이 아닌 인문학까지 포함하는 융합연구를 지원함으로써 국내의 융합과학 발전을 촉진시키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융합과학 분야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당장 기존의 단일 분야의 연구자들이 융합연구를 진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다른 분야의 배경지식이 없다면 개개인이 스스로 창발성을 이끌어낼 수 없고, 이 경우는 대부분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과 같이 연구를 함으로써 보완해 나가게 된다. 하지만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과 과학적 의사소통을 시작하는 것에서부터 갈등을 겪게 된다.

현재는 각 분야의 연구자들이 다른 제반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해에 필요한 배경지식들을 습득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작업인 것 같다. 그렇지만 이것이 궁극적으로 가야할 길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가 있다. 우리 뇌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던 지식과 방금 들어온 정보가 만나 아이디어가 창발되는 순간, 혹은 뉴런(신경세포)과 뉴런이 무의식적으로 이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터넷의 눈부신 발전으로 현대 사회는 과거와 달리 원하는 정보를 매우 빠르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기회비용과 재사회화의 문제로 새로운 것을 배우기 어렵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요즘 세대는 원한다면 여러 분야의 지식을 섭렵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러한 세대의 뉴런의 네트워크에서 나오는 창발성의 잠재력이란 창발성의 정의대로 지금 세대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장기적으로 융합과학의 궁극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이를 위한 후속세대의 체계적인 양성이 중요할 것이다.

미래 과학자는 여러 학문을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이는 새로운 발견을 점점 더 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학제간 연구를 한다고 항상 무언가가 창발되는 것이 아니다. 톱니바퀴처럼 이가 딱 맞는 지식들의 조합만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무수한 조합의 톱니바퀴를 맞출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늘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종종 어떤 학문의 발전이 다른 경계의 학문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 주곤 한다. 바로 위의 브라운 운동처럼 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본래 자연법칙의 일관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문의 경계는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달린 것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과학이라는 건 본래 경계가 없는 것이다. 생물의 신비를 탐구하기 위해서 때로는 수학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미래 융합연구 후속세대 양성을 위해서는 현재 교육체계도 많이 변해야할 것 같다. 미래에는 학문 경계 없는 문제, 예를 들어 하나의 문제를 풀 때 수학·화학, 생물학적 사고능력이 동시에 필요한 문제가 시험에 출제되는, 이런 교육이 가능한 시대가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도현 포스텍 석박사통합과정·시스템생명공학부
포스텍에서 5년간 생명과학, 화학, 수학, 컴퓨터공학과 등 4개의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융합연구로 삼성휴먼테크논문상 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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