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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미술은 비어가는 마음 꽉 채워주는 ‘아이덴티티’”
“음악과 미술은 비어가는 마음 꽉 채워주는 ‘아이덴티티’”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5.06.0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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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예술 초대전 여는 세실리아 서 마이애미대 교수

최근 대학 안팎에서 과학과 인문학을 접목하는 융복합적 시도가 거센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예술계에도 과학과 접점을 찾는 시도가 심심찮게 나온다. 이를 통칭해 ‘디지털 아트(Digital Art)’라는 장르로 묶는다면, 이러한 융복합의 실제 사례를 보여주는 전시가 곧 대학로를 찾을 것이다. 세실리아 서 마이애미대 교수(37세, 사진)가 바로 그다.

종합예술인이라 불러야할지, 교수라 불러야할지 아리송했다. 30대 중반에 미국 마이애미대 정년트랙 전임교수(조교수, 커뮤니케이션전공)가 된 그를 대체 무어라 불러야할지 망설이던 중, 그를 만났다. 오는 10일부터 엿새 동안 서울 대학로 남서울대 아트센터 갤러리 이앙에서 초대전을 여는 세실리아 서(본명 서희선) 마이애미대 교수다. 지난 3일 만난 서 교수는 유쾌하고 발랄했다.

초대전을 주제로 성사된 만남인데 인터뷰의 대부분을 그의 삶에 할애한 건 기자의 순발력이었다고 할까. 인터뷰 시작 전부터 ‘호칭’ 정리가 쉽지 않았던 건 그만큼 서 교수가 그간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지내왔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2010년 「소셜미디어와 음악」으로 럿거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그의 연구성과를 인정한 마이애미대는 그에게 교수자리를 내줬다. 2년 후, 맥아더(MacArthur)파운데이션, Digital Media and Learning 연구소에서 받은 상과 연구비로 ‘아마추어 음악인들의 민주적 참여와 소통이 예술성과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의 연구책임을 맡았다. 이땐 7명의 학자들을 이끌고 『창의성과 예술성 평가』(Routledge Press, 2014)의 편집자 겸 공동저자를 했다. 단독저술 『디지털 음악커뮤니티의 자격과 평가』(MIT Press, 2014)도 출간했다. 학자로서 연구성과를 차곡차곡 쌓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그가 박사과정에 들어갈 때만 해도 학자보단 뮤지션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실제로 서 교수는 중고교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발산하기 위해 스스로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소속없이 홀로 즉흥작곡을 해왔다.

“어릴 때부터 음악가로 커온 게 아니었어요. ‘전공’으로 음악을 택해서 열정을 100% 쏟을 순 없었어요. 어떤 방식이든 ‘음악을 포기하지 않은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뉴욕대로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그의 음악세계가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락밴드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거리공연을 하거나, 화가와 즉흥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땐 피아노에서 바이올린으로 주종목(!)을 바꿨다.

그런 그가 뮤지션의 길을 잠시 내려놓고 돌연 학자의 길로 선회한 건 예술인으로서 품고 있던 자존심 때문이었다. 콜롬비아레코드사를 비롯해 대형음반사를 전전하며 인턴생활을 하면서 현실의 벽을 느꼈다고 한다.

“예술의 목적은 문화를 정화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력만 있으면 인정받을 수 있고, 열심히 하면 된다는 건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실력보단 상업성이 우선이잖아요. 꿈을 꺾지 말고 내 체험을 바탕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 먹었죠.”

‘연주’하던 사람이‘연구’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움트던 예술성까지 변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연구년에 들어간 2012년 우연히 접한 디지털 페인터 프로그램이 그를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음악과 미술을 접목한 실험은 오래지않아 ‘디지털 아트’라는 장르에서 발현됐다. 예술장인이 차지한 미술계에 온전히 ‘자기 세계’ 하나만 믿고 뛰어들었다. 그가 손대는 작품들은 놀라울만큼 빠른 속도로 성과를 냈다.

이렇게 탄생한 첫 작품이 온라인 인터네셔널대회 특별상을 안겨줬다. 다음엔 디지털작품에 질감(텍스처)을 가미한 회화에 도전했다. 이번에도 첫 작품이 마리나 츠베타예바(러시아 시인) 추모문화관에 전시·소장됐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의 한 전시기획사로부터 초대전 제의를 받았다. 단 일이년에 불과한 자신의 작품들을 뒤적였다. 특정 테마를 정하기보다 자신의 작품을 이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 이번 전시회에 소개될 세실리아 서 교수의 디지털아트 작품들. 사진 맨 위부터 △Bird Nest(91.44x121.92cm) △Hiding in the Bush(91.44x121.92cm) △Modern Tree(152.4x213.36cm) △Modern Tree(91.44x121.92cm)
‘Stillness’

이는 고요함, 정적을 뜻하지만 그에겐 ‘멈춤’에 가깝다. 서 교수는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잠시 멈추었을 때 예술적 상상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멈춤의 시간은 흘러온 시간을 되밟아 가는 과정이다. 이 시간 안에서 새로운 영감이 보태어진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홀로 음악을 해오다 학자의 길로 접어든 시간을 되짚어 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즉흥작곡에 매달려온 흔적들을 전시 곳곳에 녹여낸 이유다.

“일관되게 흐르는 시간 속에 모순적으로 ‘멈춤’이 있잖아요. 제가 미디어아트에서 다루는 추상표현주의는 현존하는 공간 안에서 발산하는 영감과 영혼의 만남을 기록하는 저만의 방법입니다.”

일반인이야 작품을 있는 그대로 향유한다고 해도, 일가를 이룬 기존 예술가들은 아마추어나 입문자들이 전시회를 연다고 하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곤 한다. ‘예술’이 ‘배설’로 오인되지 않으려면 명확한 자기 세계가 작품에 일관되게 투영돼야한다는 기준에서다.

지난해 마이애미대 미술학과에서 소속교수 제의를 받았을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곤 있지만, 화풍을 말하기엔 미술에 입문한 기간이 턱없이 짧은 것도 사실이니까. 서 교수는 “창작활동을 하기 위해서 내면을 지켜야 해요”라며 당차게 선을 그었다.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늘 새로운 분야에 자신을 밀어넣는 자신감은 ‘융합 시너지’를 자신의 삶으로 체득해왔기에 가능했다.

“융합이란 한쪽 분야가 열리면서 다른 열린 분야로 이동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힘이 터져나오는 것 아닐까요? 서로 다른 것들이 혼합되면서도 공존할 수 있는 무언가…. 대중문화의 변화를 분석해내는 데도 중요한 열쇠이고요. 특히 음악과 미술은 마음 한켠이 늘 비어가는 저를 꽉 채워주는 ‘identity(독자성)’입니다.”

그는 이번 전시도 심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실험이자 시도라고 덧붙였다. 그 특유의 거침없는 도전에 불이 붙었다.

글·사진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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