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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 허물 벗는 메뚜기목 곤충의 悲哀
네 번 허물 벗는 메뚜기목 곤충의 悲哀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5.06.02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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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31. 땅강아지

땅강아지는 땅굴에 살면서 야행성이라 자주 보기 어렵다. 그러나 초여름에 벼를 심기 위해 쟁기로 척척 논의 흙살을 갈아엎으면 논바닥 땅굴에 들었던 놈들이 어리둥절 놀라 논두렁으로 슬금슬금 기어 나올 적에 자주 만났다. 이때는 언제나 까치가 땅강아지 잡아먹겠다고 가만가만 모여든다. 필자도 더럭 겁이 나지만 사로잡아보겠다고 덤비다가 깨물리기도 했다(특별히 해가 없다함). 사람한테 들키면 오락가락 바동거리던 놈이 몸을 구부려 순식간에 고물고물 땅속으로 파고드는 솜씨는 가히 놀랍다.

▲ 땅강아지사진 출처= bugstories.tistory.com231

땅강아지(Gryllotalpa orientalis)는 메뚜기목(直翅目) 땅강아짓과의 곤충으로 메뚜기나 귀뚜라미와 흡사하다. 우리말로는 땅개·땅개비·개밥통이라 하며, 한자로는 땅강아지 ‘누’와 ‘고’를 써 螻蛄·天螻·石鼠·土狗·地狗라 하니, 土狗나 地狗가 땅강아지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한국·러시아·일본·중국·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오스트랄라시아(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서남태평양제도를 포함하는 지역)에 분포한다. 땅강아지는 본래 습기를 좋아하는지라 논이나 연못, 잔디밭, 골프장 등 축축한 곳에 산다.

아무튼 ‘강아지’라 하면 어린 자식이나 손주를 귀엽게 이르는 말 아니겠는가. 흙 밭에 놀다 개흙을 뒤집어쓰고 집에 드는 날엔 어머니께서 ‘땅강아지가 됐다’고 지청구하셨지. 서양 사람들은 땅강아지를 mole cricket라 부르니, mole은 두더지, cricket은 귀뚜라미로 ‘귀뚜라미 닮은 것이 두더지처럼 땅 속에 산다’는 뜻일 것이다. 한편 ‘키가 몹시 작은 강아지’를 땅강아지라 부른다.

땅강아지는 몸이 원통형이고, 아주 근육질로 포동포동, 토실토실한 것이 다부지게 생겼다. 체장은 30~35mm이고, 몸빛은 황갈색 또는 흑갈색이며, 온몸에 짧고 부드러우면서 반들반들한 털이 다붓이 나있다. 그래서 땅 속에 지내면서도 몸뚱이에 흙이 묻어나지 않는다. 머리는 원뿔형에 가깝고 검은색이고, 아주 작은 홑눈은 큰 타원형이며, 겹눈은 비교적 작은 알 모양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몸길이에 비해 짜름하고 가는 더듬이 한 쌍을 가진다.

뭣보다 앞다리가 산지사방으로 땅굴을 파는 데 알맞도록 강하고 넓적하다. 더구나 발달한 앞다리는 꼭 두더지의 앞발처럼 땅을 쉽게 파도록 쇠스랑(pitchfork)을 닮았다. 뒷다리는 더할나위 없이 귀뚜라미의 것과 비슷하나 뛰는 데 쓰지 않고 흙을 후벼 판다. 또 앞다리는 대체로 땅 파는 데 사용하지만 물에서 헤엄칠 때도 쓴다.

이들의 앞다리가 빼닮은 것은 지하에 사는 동물들에서 생겨난 收斂進化 탓이다. 이는 계통적으로 연관이 먼 생물들이 적응의 결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서 곤충인 땅강아지와 포유류인 두더지는 계통적으로 관련이 적지만 땅을 파는 앞다리가 매우 유사하게 변했다.

앞날개는 작고 뒷날개는 크며, 날지 않을 때는 등허리 위에 접어놓는다. 날개는 정교하지는 않지만 짝이나 영역을 새로 찾고, 또 저녁에 불빛을 향해 난다. 또 해질 무렵에 땅 위로 나와 먹이를 사냥하고, 새벽녘에 집으로 든다. 암수 모두 날개 맥(翅脈)에 발음 돌기가 10여 개 있으며, 수놈이 암놈을 꼬드기기 위해 이른바 구애의 소리(courtship song)를 지른다. 이때 수컷은 날개를 비벼 ‘비이이이-’ 하는 긴 울음소리를 낸다.

4~5월경에 축축한 땅속에서 짝짓기 하고, 암컷은 5~30cm 깊이의 땅 속에다 3~4cm 길이의 방(알자리)을 만들어 200여개의 알을 낳으며, 10여일 후에 부화한다. 무더기로 낳은 회갈색의 알은 3mm정도의 콩(bean) 모양을 한다. 알은 알자리에서 어미의 보호를 받으면서 2~3주를 머문 뒤 부화한다. 부화한 유생은 자기를 싸고 있던 알껍데기를 먹어치우며, 심지어 친구도 잡아먹는 동족살생(cannibalization)을 한다. 네 번 허물을 벗고 성충이 된다. 번데기가 생기지 않는 불완전변태를 하기에 유생은 어미를 빼닮았다.

땅강아지는 잡식성(omnivorous)으로 곤충의 애벌레나 성충, 지렁이 같은 동물성 먹이 말고도 작물의 뿌리나 구근 따위를 닥치는 대로 갉아먹고, 땅을 들쑤셔서 뿌리가 들뜨게 해 말라죽게 하니 속절없는 해충(pest)이다. 그래서 땅강아지를 驅除(해충 따위를 몰아내어 없앰)하기 위해서 농약을 쓴다. 그러나 이들은 지렁이처럼 제대로 흙속을 헤집어 놓아 땅속에 공기를 불어넣어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득 되는 곤충이라 하겠다.

한방에서는 여름에서 가을 사이에 잡아 한소끔 끓인 다음 햇볕에 말린 것을 ‘누고’라 하며, 해독이나 消腫(부은 종기나 상처를 치료함), 방광결석이나 화농에 처방한다. 거참, 지지리도 못 생기고 대수롭지 않은 벌레, 푸나무치고 온통 약되지 않는 것이 없군! ‘무엇이든 하찮은 것이 없다’는 말이 맞다.

땅강아지의 천적은 후투티 같은 새, 들쥐, 스컹크, 도마뱀 등이다. 그리고 먹성 좋은 동남아 사람들은 조금도 꺼리지 않고 튀겨먹는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곤충 먹기(食蟲, entomophagy)를 하니, 정작 1천여 종이 넘는 곤충을 80여 개국에서 즐겨 먹는다고 한다. 우리도 메뚜기, 방아깨비, 번데기를 먹지 않는가.

아무데서나 볼 수 있었던 것이 요새 와서는 농약이나 제초제를 잔뜩 써대어 아주 드물어져서 보호야생동물로 지정됐다고 하니 절통한 일이다. 암튼 야생동물 치고 남아나는 것이 없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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