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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주머니로 사라진 연구비…‘不淨’은 누굴 울릴까?
뒷주머니로 사라진 연구비…‘不淨’은 누굴 울릴까?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5.06.02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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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국립대 교수들이 연구비 횡령과 연구원 허위등록 등으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감사원이 최근 서울대를 비롯, 전국 12개 국립대를 대상으로 실시한‘국가연구개발(R&D) 참여연구원 관리실태’ 감사에서 국립대 교수 19명의 연구비 유용 혐의를 포착했다. 감사원은 지난달 26일 연구비리 교수 등 19명에 대해 중징계(파면·해임·정직)할 것을 교육부와 대학에 요청했다.

일러스트 돈기성
경북대 A교수는 연구원들의 인건비 통장을 직접 관리하면서 모은 돈 2억5천만원을 주식 투자에 쓴 사실이 적발됐다. 교육부 등은 이 교수에게 국가연구개발사업비 중 연구원 인건비로만 지난 5년간(2009~2014년) 총 3억8천만원을 지원했다. A교수는 “벤처사업 출자금을 모으기 위해 주식에 투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서울대 B교수는 사촌동생에게 연구원 선발권을 맡기고 석·박사 연구원들의 인건비를 매월 일정금액씩 가로챘다. 이렇게 모은 돈이 무려 9억8천만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7억2천만원을 B교수 어머니 등 가족들이 나눠가졌다.

전북대 C교수는 연구원 48명의 연구비 통장을 일괄적으로 관리했는데 이들 중 11명은 연구에 참여하지 않고 이름만 올려놓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 ‘유령연구원’들에게 지급된 인건비 1억2천만원을 비롯해 총 5억8천만원은 사용처를 알 수 없었다.

부경대는 같은 대학 소속의 부부교수가 장교로 복무 중인 아들을 연구원으로 등록해 연구비(2천300만원)를 빼돌렸다. 이번에 감사원이 적발한 교수들은 ‘교수’라는 절대적 지위를 이용해 지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수억원대 연구비를 불법적으로 가로챘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학문후속세대인 대학원생 연구원들의 통장을 관리하면서 인건비를 유용한 사실까지 밝혀져 동료 교수들마저 부끄럽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 기간은 정부와 대학이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강행하고 있었던 시기다. 수많은 시간강사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교수들은 취업 알선을 하러 기업체에 찾아가 허리를 숙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한쪽에서 이렇게 바가지가 샌 것이다. 물론 교수사회의 부정과 일탈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 최고 지성인 사회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이런 교수들의 부정과 일탈을 어째서 대학의 연구비 중앙관리시스템이 걸러내지 못했냐는 점이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면 이는 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대학 당국의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다른 하나는 교수 부정을 보도하는 미디어의 행태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과 교수는 여전히 ‘좋은 먹잇감’이다. 언론이 그려내는 ‘부정한’ 교수의 모습은 어느 새 교수사회, 대학사회 전체로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든다. 미디어는 대학과 교수사회가 자정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몰아간다. 이런 반복적인 패턴을 접하는 사람들은 마치 모든 교수들이 딴주머니를 차고 부정·비리·횡령 등을 일삼거나 혹은 언제든 그럴 준비를 마친 모럴 해저드 집단 쯤으로 인식하게 된다.

대학의 투명한 연구비 관리와 미디어의 편견 없는 접근이 결여될 때, 희생자는 언제나 善意의 대다수 교수들임을 직시해야 한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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