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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이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규정하는 존재조건이다”
“그들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이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규정하는 존재조건이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5.27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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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17강. 임철규 연세대 명예교수의‘셰익스피어『로미오와 줄리엣』

‘문화의 안과 밖’시즌2 고전읽기가 3섹션‘전근대’로 진입했다. 3섹션은『로미오와 줄리엣』(5월 23일),『 파우스트』(5월 30일),『 근사록』(6월 6일),『 성학십도』(6월 13일),『 목민심서』(6월 20일) 등을 집중 탐색한다.
지난 23일(토) 진행된 3섹션의 첫 번째 강연인 17강은 임철규 연세대 명예교수(영문학)가 진행했다. 일찍이 노드롭 프라이의『비평의 해부』를 번역, 소개했고,『 왜 유토피아인가』(1984), 『그리스 비극』(2007), 『귀환』(2009), 『죽음』(2012) 등의 빼어난 문학연구·비평서를 상재했던 그는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고전문학으로 석사를, 비교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영문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 비교문학 교수를 거쳐, 현재 연세대 명예교수로 있다.
독창적인 내용도 아니고, 작품으로서도 완성도가 높지 않은 작품인데도 이 작품이 남다른 까닭은 뭘까. 임 교수는 그 이유를“‘사랑과 죽음’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엄격한 의미에서 처음으로 사랑의‘본질’을 본격화고 있다는 점”에서 찾았다. 너무나도 귀에 익숙한『로미오와 줄리엣』을 임 교수는 과연 어떻게 읽어냈을까.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셰익스피어는 작품『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서구 전체를 지배해온‘상승’또는 ‘초월’의 전통을 거부하고 있다. 그는‘초월’이 아니라‘지금 여기’를, 아니‘지금 여기’를 전제로 한‘초월’을, 그리고 또 한편 성적 욕망의 대상인 ‘육체’를 강조하고 있다.


 작품은“줄리엣과 로미오의 이야기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일찍 있어 본적이 없었다 ”
(V.3.309~310)는 베로나 군주의 말과 더불어 끝난다. 그‘슬픈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비극적인 운명은 프롤로그의 코로스의 말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자유의지가 전혀 개입될 수 없는 절대 운명 앞에 이미 서 있었다. 니체는“결국은 우리는 욕망의 대상을 사랑하지 않고, 우리의 욕망을 사랑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과녁을 겨누는 사수는 결국은 대상보다 그 겨눔 자체에 탐닉하듯, 로미오의 사랑의 대상은 로잘린 자체가 아니라 그녀를 낚아채어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 그 자체로 귀결되고 있다.

코로스는 줄리엣을 만난 로미오를 가리켜“이제 이전 욕망은 임종을 맞고 있다”(1.5.pro.144)고 말했다. 과녁의 겨눔 자체에 탐닉하는‘사수’의 욕망은 결코 사랑의 가치를 알 수도, 경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줄리엣을 처음 봤을 때도 로미오는 로잘린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너무 아름답다”(I.5.53)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로잘린의 경우에서와 달리‘눈’이 아니라‘심장’(I.5.51, Heart)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았다고 말했다. 물론 사랑은 눈으로부터 출발한다. 아름다운 육체를 보고 여기서 일어난 성적 욕망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 사랑에 관한 한, 기독교의‘아가페(agape)’와 더불어 2천 년 이상 서구사상 전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플라톤의‘에로스(Eros)’의 핵심 사상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사랑은‘어떤 대상’에 대한 욕망이긴 하지만(플라톤『향연』199e), 궁극적으로 지금‘우리에게 없는 것’을 욕망한다는 점에서 『( 향연』200a),‘ 특별한 종류의 욕망’이라고 말했다. 플라톤에 의하면, 사랑은‘일상적인 욕망’, 즉 그 주된 욕망인 성적 욕망을 제거시키지 않고 이를 창조적으로 승화시켜 우리에게 없는 것 즉‘미, 선, 그리고 진리 자체’, 그‘본질’을 욕망하고, 그것과‘하나가 되는 것’을 궁극적으로 지향한다(『향연』212a). 그는 사랑의‘초월’을 강조했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서‘눈’이 아니라 ‘심장’이라는 말을 등장시킴으로써‘사랑’을 특별한 자리에 올려놓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작품『로미오와 줄리엣』에서‘눈’이 아니라 어떤 거짓도, 위선도, 작란도 없는‘심장’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자유의지가 전혀 개입할 수 없는 절대 운명 앞에서 그들이 펼치는 사랑은 진지하고 고귀할 수밖에 없다. 로미오에게 줄리엣은 티끌만큼도
더럽혀질 수 없는 절대 존재가 되고 있다. 그에게 그녀의 손은‘하찮은 손’으로‘모독’할 수 없는‘거룩한 寺院’이 되고 있고(I.5.92~93), 더 나아가 그녀는 그에게 천상의‘빛나는 천사’(II.2.26)가 되고 있다. 따라서 그녀가 사는 곳이 이 세상 그 어디이든 그곳은 그에게‘천국’이 되고 있다(III.3.29~30). “남자가 더 이상 사랑을 이상화하지 않고 여자를 신격화하지 않으면, 여전히 남자는 계속 남자들을 신격화한다.”셰익스피어는 남성이 신격화돼온 이런 역사를 여기서 배격하고 있다.

그들이 하나가 된 이상 그들에게는 더 이상‘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죽음의 표적’(I.1.prol.9)이 되는 그들에게는‘미래’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오직‘현재’만 있을 뿐이다. 그들이 지금 사랑을 펼치는‘현재’의 이‘순간’만이 그들에게 전부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헬레네를 만나고 있는‘아름다운 순간’인‘현재만이 우리의 행복’, 우리의‘보물’이라고 인식했듯, 그녀와 함께 사랑을 펼치는‘현재’, 이‘순간’만이 로미오에게는‘천국’이고, ‘현재’의 이‘순간’만이 그들의‘행복’, 그들의‘보물’이다.‘ 과거’를, 그리고‘미래’를 통째로 찢어버리는, 아니 시간자체를‘초월해’오로지‘지금’의‘현재’만을 시간의 전부로 만드는 그런 사랑의‘순간’을 일컬어 옥타비오 파스는 일찍이 ‘우리들의 낙원의 몫’, 우리들의‘천국’이라 했다.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에서‘운명’또는‘운명의 여신(Fortuna)’을 빈번하게 언급하고 있다. 인간의 삶이‘운명’에 의해 지배된다는 믿음이 당시 적지 않게 퍼져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의 지식이론은 점성학적인 결정론과 자유의지 간의 특유의 긴장이 그 특징이 됐다.”이미지가 흔히 돌고 도는 둥근 수레바퀴로 등장하듯, 운명의 여신은 변덕스러운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로미오는 운명에 대항 할 수 있는 유일한‘방법’(V.1.35)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하는‘자살’밖에 없음을 즉각 느꼈다. 셰익스피어는 존재론적으로 사랑은, 그것도 진정한 사랑은 죽음을 죽음으로 답하는 비극적이라는 것을 로미오와 줄리엣의‘슬픈 이야기’(V.3.309)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사랑의 비용’을‘죽음으로 향하는 競走’에 쏟고 있다.

작품『로미오와 줄리엣』은‘죽음이 사랑을 삼킨 것’이 아니라‘사랑이 죽음을 삼킨 것’이라는, 말하자면‘아름다운 사랑’의 승리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흔히 일컬어져 왔다. 과연 그렇게 일컬어질 수 있는가. 플라톤은『향연』에서 이른바‘아리스토파네스의 신화’를 소개하면서 인간은 원래‘결핍’의 존재가 아니라‘전체’의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플라톤은 아리스토파네스의 입을 통해“전체의 욕망과 전체의 추구가 사랑이라고 일컬어진다”(『향연』192e)라고 규정했다. 말하자면 그 나뉘어짐으로 인한‘결핍’을 극복하기 위해‘전체’, 즉 지금‘우리에게 없는 것’을 욕망하고, 이를 추구하는 것이‘사랑’이라고 규정했다.

플라톤,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사랑’을 이야기해온 그의 추종자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는 지금‘우리에게 없는’ ‘그 무엇’이 사랑의 궁극적인 대상이기 때문에‘지금 여기’는, 그리고‘지금 여기’와 연관되는 성적 욕망의 대상인‘육체’는 사랑의 궁극적인 고향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작품『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서구 전체를 지배해온 이런‘상승’또는‘초월’의 전통을 거부하고 있다. 그는‘초월’이 아니라‘지금 여기’를, 아니‘지금 여기’를 전제로 한‘초월’을, 그리고 또 한편 성적 욕망의 대상인‘육체’를 강조하고 있다.

 ‘죽음’은 호메로스에서 현대 미국시인 스티븐스(Wallace Stevens)에 이르기까지 문학가와 철학자들에 의해 흔히‘소름끼치는’공포의 존재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일체의 고통을 잠재우는‘구원자’로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작품『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죽음은 전혀 다른 이미지로 떠오르고 있다. 줄리엣이‘밤’과 마찬가지로‘죽음’도 ‘소름 끼치는’것이라고 말했듯, 로미오에 의해서도 죽음은 혐오스러운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그가 줄리엣의 손가락에서‘귀한 반지’(V.3.31)를 빼내기 위해‘죽음의 침대’(V.3.28), 즉 무덤의 뚜껑을 열면서 그 무덤을 가리켜‘죽음의 자궁’(V.3.45), 가장 소중한 것을 삼키는‘가증스러운 아가리’(V.3.45)라고 일컫는 것에서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에서 그들의 사랑을 끝까지 지켜주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이다. 라캉의 용어를 따온다면, 그들에게‘대타자(the Other)’는 없다. 결정을 내리는 것도, 그
들의 사랑과 죽음에 책임을 지는 것도 그들 자신이므로,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행위의 주체는 없다. 로미오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줄리엣을 지금도 여전히 천상의‘빛나는 천사’(II.2.26)로 여기고 있다. 줄리엣은 결혼한 날 밤 자신의 침실을 찾아올 로미오를 기다리면서 밤을 향해, 자기가 이다음에 죽으면 로미오를 하늘을‘아름답게’비추는 천상의‘별’로 만들어줄 것을 호소했다(III.2.2). 그들의 사랑은 그들을 서로 ‘빛나는 별’,‘ 아름다운 천사’로 만들고 있다. 그들‘두 사랑의 聖者’는 그들의 사랑을 서로 절대화하고, 그들의 존재를 서로 신격화한다. 진정한 사랑은 여기에 있다.

로미오는 결국 그의 이름을 포기하지 않았다. 앞서 우리는 ‘이름’은 존재 조건, 아니 존재 자체라고 말했다. ‘로미오’라는 이름, 그리고‘줄리엣’이라는 이름은 그 이름들 때문에 그들은‘가치’로서 저만큼 높이 존재한다. 그들의 이름은 그들 존재 자체가 돼 우리의 존재 조건, 즉 우리가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를 규정하는, 우리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규정하는 우리의 존재 조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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