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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관계 개선의 설계사’ … “한국 학계, 統一의 質에 대한 깊은 고민 필요”
‘북미관계 개선의 설계사’ … “한국 학계, 統一의 質에 대한 깊은 고민 필요”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5.26 1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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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평화’를 위한 남북대화 강조하는 박한식 조지아대 석좌교수



통일학이란 말이 한국 학계에 사용되던데, 나는 이게 무엇인지 잘 모른다. 무엇을 연구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북한의 의식구조와 정치문화를 과학적·인식론적으로 이해하고 연구해야 한다. 과학적 이해 없는 통일론은 위험하다.


1939년 하얼빈에서 출생한 박한식 조지아대 석좌교수에게는 늘 ‘북미관계 발전의 설계사’라는 수식이 붙는다. 2003년 11월 북핵위기 해소를 위해 북미 민간전문가들이 참여한 ‘워싱턴-평양 트랙 Ⅱ 포럼’ 등 민간차원의 대화를 수차례 개회하는 등 북미관계 개선에 크게 기여하면서 학자로 평생을 살아왔다.
박 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1963)를 나와 미국 아메리칸대에서 석사를, 미네소타대에서 정치학 박사(1971)를 했으며, 미 국무성 학자 외교역(1974)을 맡기도 했다. 1971년 조지아대에 ‘국제관계학’ 교수로 임용돼 이곳에서 정년을 했다. 지난해 대학에서 그의 이름을 딴 ‘석좌교수직’을 신설키로 해 기금을 모으고 있다. North Korea: The Politics of Unconventional Wisdom(2002). North Korea Demystified(2012). Development as the Crossroads(2015) 등의 저서가 있다.

특히 북핵문제로 국제적 위기가 조성됐던 1994년과 2003년 북미간 전쟁예방과 세계평화를 위해 교량역할을 담당해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이뤄내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2009년 미 여기자 북한 억류사태 당시에도 이들의 석방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평생을 평화유지에 헌신한 공로로 2010년 4월 ‘간디·킹·이케다 평화상’을 수상했다.
“미래 인류는 안보가 아니라 평화라는 화두를 붙들고 살아야 한다. 안보가 있어야 평화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더 높은 차원의 가치관을 모색해야 한다.” 그의 신념이자 그가 그토록 강조해왔던 평화학의 철학이기도 하다. ‘테드 토크(Ted Talk)’에 소개된 12분짜리 그의 강연 동영상(5월 4일 게시, 「A new paradigm for peace」)에는 이런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최근 53번째 방북을 마치고 서울에 체류 중인 박 교수를 숙소 가까운 한 찻집에서 만났다.

“어렸을 때는 의사가 꿈이었다. 6·25전쟁이 인생행로를 뒤바꿨다. 광복 전 선친께서 만주에서 활동하시다가 광복 후 평양에 2년 정도 머무르셨다. 이것이 나중에 문제가 돼 투옥되셨고, 고문도 받으셨다. 당시 같이 투옥된 이들 가운데 정치인을 잘 아는 사람들은 쉽게 풀려나오는 것을 보고, 정치와 정치인을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치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그 무엇이었다. 그래서 정치학을 공부하게 됐다. 내가 관심을 쏟은 평화 역시 이 선상에 놓여 있다. 1980년대 초반 KBS에서 남북이산가족찾기를 진행할 때, 나 역시 미국에서 이산가족 찾기 노력을 전개했다. 나는 평화를 ‘조화(harmony)’라고 생각한다. 조화란 이질적인 것들의 대화이기도 하다.”

그의 이력 가운데 흥미로운 부분인 ‘親北’ 행보가 놓이는 맥락이다. 말이 친북이지 그가 말하는 친북은 知北의 의미가 더 강하다. “나는 요즘 보수 쪽에서 말하는 ‘종북’이 아니다. 오랫동안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늘 강조했던 게 북한 사람과 친하자는 것이다. 친해야 대화도 트게 되고, 결국에는 ‘평화’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북한을 처음 방북한 것은 1981년의 일이다. 당시 주체과학원을 방문했는데, 박 교수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황장엽 비서 탈출 이후 폐쇄됐다. 그는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내부 붕괴를 피하기위해서라도 안정적인 개혁, 개방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은의 북한이 산적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과는 분명하다. 안간힘을 다해서 개혁, 개방에 나설 것이다. 이런 시기에 우리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의 목적이 뭔지 불투명하다는 게 안타깝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의 ‘통일의 질’에 대한 고민이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다니면서 그는 열암 박종홍 교수에게 깊이 끌렸다. 열암은 이후 그의 평생의 사표가 됐는데, 그를 통해 ‘정치철학’에 눈을 떴다고 한다. 그런 그가 보기에 남북 사이에는 힘의 논리(대결논리)만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비쳐졌다. “남북 평화에 기여해야할 학계에서도 통일의 질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남북의 평화, 그리고 평화적 통일은 서로 다른 이질성을 이해할 때 가능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족의 자기 재발견이다.” 박 교수는 유난히 ‘민족’, ‘민족의 자기 재발견’을 강조했다. 50년 이상 미국에서 거주하면서 미국 대학에서 연구하고 가르친 그의 성장 환경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성장은 세계역사상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라는 것이다. “50년 동안 외부에서 본 결과, 한국은 가장 경험이 깊고, 풍부한 나라라고 확신한다.

한민족이 겪어온 식민, 분단, 전쟁, 경제성장은 우리 민족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물론, 정치학계 일부에서는 이러한 민족주의에 경도되는 ‘낭만주의적 경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것은 ‘민족’의 저력이다. 지금의 분단 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지혜를 수많은 경험 속에서 이미 획득했다는 판단이다. 민족을 ‘피’가 아닌 ‘뜻의 공동체’로 이해하는 그는 그래서 더욱 ‘대화와 소통’을 강조한다.

 “통일학이란 말이 한국 학계에 사용되던데, 나는 이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모여서 무엇을 연구하자는 것인지 통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밥만 먹는다고 통일학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나. 북한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의식구조와 정치문화를 과학적·인식론적으로 이해하고 연구해야 한다. 낭만적 접근을 경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북한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인식이 결여된 무지한 통일론이 더 위험하다.”

박 교수는 내년 ‘석좌교수’ 타이틀을 내려놓게 된다. 평소 미국내 흑인 문제에 관심을 보여왔던 그는 2016년부터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모교에서 새로운 역할(스칼라 인 레지던스)을 맡게 된다. 또한 국내에 들어와 다양한 대중강좌도 펼치면서 자신의 평화 철학을 공유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 고민 중이다. 서울 집값이 너무 비싸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건국대 강의 등 일정을 진행하고 이달 말 다시 미국으로 떠난다.

글·사진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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