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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다오
우리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다오
  • 이영수 발행인
  • 승인 2002.11.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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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인간 생활의 세 가지 요소인 의식주 중에서 ‘住’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됐다.

사회불평등의 증후로, 상대적 박탈감의 요인으로, 경제불안의 해악으로 급기야는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도시생활에서 주거지 문제를 해결하면 일상생활의 절반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안도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교수신문사의 경우 창간 준비와 그후 3개월간 당산동 더부살이의 7개월여를 시작으로 학교연구실에서 2개월간의 와신상담의 무망의 휴간기간, 그리고 광화문에서 새둥지를 틀고 10여년의 셋방살이를 거쳐 서교동 시대를 맞게 됐다. 지난 10월 26일 서교동 새 사옥으로 이전하면서, 명실공히 재도약의 계기를 만든 셈이다.

10여년간 많은 교수들과 열띤 논쟁을 벌이고 고뇌를 함께 하던 방, 젊은 기자들의 삶의 터전이자 배움의 자리였던 광화문을 떠난다고 하니 남다른 감회와 새로운 꿈과 각오가 교차하는 착잡한 심경에 이른다. 새로운 모험의 시간, 도전의 시간이기도 하기때문이다. 늘 처음처럼 교수사회, 대학사회와 더불어 지성의 횃불을 밝힐 것이라 자임하지만 두려움도 앞선다.

소설가 조성기 씨는 ‘가시둥지’라는 소설 제목을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키우고 훈련시키는 장면의 환상으로 떠올렸다고 한다. 그 환상의 내용인 즉 이렇다. 독수리는 가시들을 물고 와서 둥지를 지었다. 그리고 그 위에다 짐승의 가죽과 털을 물어와 부드럽고 포근하게 만들어 새끼들을 키웠다. 자식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나는 훈련을 시키기 위해 독수리는 이들을 둥지 밖으로 불러내어 자신의 날개 위에 태우려 했지만 새끼는 그냥 편안한 보금자리 안에만 있으려 했다. 아비 독수리는 그 날카로운 부리로 둥지를 둘러싼 짐승의 가죽을 찢어 버려야 했다.

가시둥지 속에 그대로 있을 수 없었던 새끼는 용기를 내어 둥지에서 빠져나와 아비 독수리의 날개 위에 올라탔다. 아비 독수리는 날개 위에 새끼를 싣고 하늘높이 올라가 새끼를 사정없이 떨어뜨렸다. 바로 그 때 어미 독수리가 떨어지는 새끼를 자기 날개로 받아 올렸다. 새끼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이 독수리는 이와 같은 일을 몇 번이나 계속했다. 이런 반복훈련을 통해 새끼는 혼쭐이 나면서 자기에게도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 날개로 나는 법을 익히게 됐다.

이제 우리는 서교동 사옥을 아늑한 보금자리가 아닌 가시둥지로 삼아 혼쭐이 나면서 나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이 사회의 지성인, 특히 대학에서 남다른 경륜을 쌓고 있는 교수님들의 충고와 비판을 가시둥지로 삼아 새로운 시작을 시도하려 하며 교수님들의 사랑과 관심과 협조로 나는 법을 배우려 한다.

가시둥지 같은 이 사회여, 인생이여, 대학이여, 우리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다오!

철학자 김용석의 책 ‘깊이와 넓이’의 글을 인용함으로써 서교동 시대를 시작하려 한다. “공부하기와 글쓰기에는 깊이 가는 법과 넓게 가는 법이 있다고 한다. 깊이 가는 법은 명상과 고뇌의 연속으로 이루어지고 독창적으로 주제를 풀어가는 길일 터이고 넓게 가는 법은 정보와 지식의 교환으로 이루어지고 협조적으로 소재를 얻고 문제를 풀어가는 길일 것이다.”

끝 간 데 없이 깊고 좁은 동굴 속으로는 혼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한발 한발 내딛는 긴장과 정신집중의 쾌감을 만끽할 수 있다. 끝 간 데 없이 좌우로 넓게 펼쳐진 푸른 초원의 지평선을 향해 갈 때는 누군가와 손잡고 가야 한다. 그래야 동행의 즐거움과 나눔의 기쁨이 있다. 그러나 깊이와 넓이를 한 사람이 모두 갖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무모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오늘의 현실은 우리에게 깊이와 넓이를 함께 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교수신문은 이제 깊이 가는 길의 탐구와 창조의 결실을, 넓게 가는 길의 즐거움과 나눔의 기쁨을 나타내는 아고라(Agora)이기를 원한다. 깊이 가는 길과 넓게 가는 길을 아우르면서 신비로운 유혹에 빠지게 하는 사이렌(Siren)이고 싶다.

신비로운 유혹에 동참하시기를!

2002년 10월 28일 발행인 이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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