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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보릿고개 시절에도 봄나물로 먹지 않아 … 허접스러워 보여도 훌륭한生藥
옛 보릿고개 시절에도 봄나물로 먹지 않아 … 허접스러워 보여도 훌륭한生藥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5.05.18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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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30. 애기똥풀

름대로 금년 봄도 일손이 무척 바빴다. 후미진 비탈밭뙈기의 흙을 삽으로 일일이 파 뒤집었으니 말 그대로 새로 일군 것이나 다름없었다. 근방의 큰 아까시나무들이 막무가내로 온 사방팔방으로 뿌리를 뻗쳐놨으니 그놈들을 중간 중간 잘라주는 일을 겸한 셈이다. 언제도 말했지만 큰 아까시나무 한 그루가 멀게는 500m까지 뿌리를 뻗는다고 한다. 굵고 잔뿌리가 그물처럼 얽혀 있어 애써 귀한 거름을 줘도 놈들이다 가로채버리니 토막을 쳐야 한다. 지겹게도 해마다 뿌리 자르기로 골 빠지는 싸움은 이어간다. 折骨之痛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이제 막 고추·가지·토마토·호박 따위의 모종을 사다 심었다. 이미 남새밭의 새순들이 와락와락 자라 나풀나풀 나비만해지는 이때 즈음이면 이윽고 텃밭은 샛노란 꽃 대궐 속에 갇히고 만다. 진노랑 꽃들을 어울리게 가득 매단 고운 애기똥풀이 도처에 앞 다퉈 우르르 지천으로 핀 탓이다.

애기똥풀(Chelidonium majus)은 쌍떡잎식물 양귀비목 양귀비과(poppy family)의 다년초로 유럽, 서아시아가 원산지이고, 세계적으로 1속 1종이 있는 單型種(monotypic species)이다. 유럽·북미·동아시아 등지에 분포하고, 우리나라 전국에 고루 자생한다.

줄기는 줄잡아 30~120cm로 무릎 위에 차올라올 정도로 곧추선다.‘ 젖풀’,‘ 까치다리’,‘ 씨아똥’이라고도 부르고, 또 흔히 장난삼아‘幼兒便草’라 한다.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은 잎줄기를 자르면 나오는 샛노란 액즙이 젖먹이아기의 대변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마을근처의 반 음지지고 습기 찬 밭가, 길가나 풀밭에서 잘 자란다. 그리고 아주 공격적이라 어쩌다 한 포기가 생기는 날에는 천지사방으로 복닥복닥 퍼져 온통 애기 똥밭을 만들어 놓는다.

한 포기에 줄기가 무더기로 나와서 아주 부피가 나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만 아주 나긋나긋하고 부들부들 한 것이 매우 여리고 뿌리가 깊지 않아 잘 빠진다. 7~11개의 홀수잔잎(小곸)이 붙는 겹잎(複곸)이며, 잎 뒷면은 흰색이고 표면은 녹색이다. 당근 색을 띤 뿌리가 많으며 뿌리도 다치면 역시 노란 즙액을 뿜는다. 줄기에 새하얀 잔털이 다닥다닥 수많이 붙고, 속이 비었다.

애기똥풀(celandine)의 꽃은 5∼10월에 노랗게 피고, 줄기 끝부분에 우산꽃차례(傘形花序, umbelliform: 꽃대의 꼭대기 끝에 여러 개의 꽃이 방사형으로 달린 무한꽃차례)를 이룬다. 약 1cm 크기의 샛노란 꽃잎은 4장으로 긴 달걀모양이고, 수술은 여럿이며, 암술은 가운데 1개로 머리는 굵고, 끝이 2갈래로 얕게 갈라진다. 무르익은 열매는 긴 원통형의 꼬투리로 길이가 3∼4cm이며, 속에는 검은 종자(씨앗)가 여럿 들었다.

이 풀은 구토·설사·신경마비를 일으키는 독성인 이소퀴놀린(isoquinoline)이나 켈리도우닌(chelidonine)을 가진 독초이기 때문에 초식동물들이 싫어하고, 근근이 살았던 옛날 어른들도 아무리 구차한 보릿고개에도 봄나물로 먹지 않았다. 屬名켈리도니움(Chelidonium)에서 이 풀의 서양이름인‘celandine’이 유래했다고 하는데 이는 고대희랍어로 제비(swallow)를 뜻하며, 유럽에서 제비가 올 때에 꽃이 피기 시작해 제비가 떠날 때쯤에 꽃이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리고 잎이나 줄기가 잘려 나온 노란 유액(latex)을 손톱에 바르면 아주 멋진 매니큐어가 된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 식물즙에는 독이 있는지라 자칫 접촉성피부염(짓무름)이나 눈 가려움증을 일으킬 수가 있으니 식물을 만진 다음엔 비누로 손을 씻어야 한다. 그리고 애기똥풀의 샛노란지 즙이 살에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고, 대문에 예로부터 천연염료로 사용해왔고 한다.

또 께름칙한 독도 적당한 양을 잘 쓰면 약이 되니 애기똥풀 즙을 바이러스성인 사마귀(wart)가 난 곳에 바르면 사마귀가 없어진다 하고, 뱀이나 독충에 물린 상처에 풀을 짓찧어 발라줘도 효능이 있으며, 티눈(corn)제거에도 사용된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식물체 전체를 위장염과 위궤양(peptic ulcer)으로 인한 복부통증에 진통제로 쓰고, 이질·황달형간염·결핵·옴·버짐 등에 사용하는 유용한 약초다.

그리고 현대의학에서도 인정하는 약초이다. 잎이나 뿌리에 콥티신(coptisine), 알로크립토핀(allocryptopine) 등 10여 가지의 약 성분이 들어있어 작은 상처를 아물게 하고, 강한 항생제에도 듣지 않는 내성균인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에도 항균작용을 한다. 또한 암이나 에이즈(AIDS) 치료, 담즙과 이자액의 분비를 촉진하는 등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한다. 나름대로 허접스러워 보이는 야생초가 이렇게 훌륭한 생약이 되니 몹시 식물자원보호를 강조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열매 꼬투리 속에는 작은 흑색 씨가 들었다고 했다. 금낭화나제비꽃처럼 애기똥풀의 씨앗에도 개미가 즐겨먹는 푸짐한 지방산과 단백질덩어리인‘엘라이오솜(elaiosome)’이란 미끼를 씨앗에 붙여 놨다. 개미는 서슴없이 씨알을 제집으로 물고가 엘라이오솜만 똑 떼어먹고 집 주위에 버려버리니, 이렇게 개미 덕에 씨앗을 사방 퍼뜨리고 잽싸게 촘촘히 싹을 틔워 새로 살 자리를 잡는다. 세상에 공짜 없는 법이다. 얕볼 수 없는 애기똥풀은 개미에게 먹을 것을 주고, 개미는 종자를 散布(퍼뜨림)해 주니 말이다. 놀랍게도 개미의 도움을 받는 꽃식물이 세계적으로 3천종이 넘는다고 한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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