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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 50돌과 반출 문화재
한일협정 50돌과 반출 문화재
  • 강희정 서강대·미술사
  • 승인 2015.05.1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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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칼럼] 강희정 서강대·미술사

"문화재 환수라는 복잡한 문제를 푼다며 손에 망치 하나만 달랑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민족주의와 애국심으로 목청 높인다고 될 일만은 아니다."

1818년 인도네시아에서 아름다운 조각상이 온전한 상태로 발견됐다.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회 사의 장교였던 모네로(D.Monnereau)가 자바 동부의 말랑이라는 곳에 있는 어느 사원 유적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사원은 폐허나 다름없었지만 조각상은 파손된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보존이 잘 돼 있어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그가 발견한 조각은 불교의 반야바라밀 보살상이다. 12세기에 만들어진 인도네시아의 걸작을 네덜란드 장교가 발견한 것이다.

이 조각이 완벽에 가깝게 멀쩡한 상태로 보존된 것은 현지인들이 이 보살상을 유명한 껀 데데스(Ken Dedes) 왕비의 조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껀 데데스는 그 무렵 자바 동부에 싱아사리 왕국을 세운 껀 아록(Ken Arok)의 부인을 가리킨다. 그녀의 자손들이 자바 동부 왕국들의 혈통으로 이어지면서 후대 사람들은 그녀를 신격화했다.

이 조각상은 1820년 모네로에게서 라인 왈트라는 이에게 넘겨지면서 네덜란드로 반출됐다. 이때부터 오랜 세월 자바의 반야바라밀 보살상은 네덜란드 라이덴의 국립민족학박물관에 소장돼 있었다.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이 반야바라밀 보살상을 비롯한 문화재를 반환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한 건 1968년부터였다. 반환협상 10년만인 1978년 네덜란드는 이 보살상의 인도네시아 양도에 최종 합의했다. 반야바라밀 보살상, 혹은 껀 데데스의 조각은 160년 만에 본디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이 아름다운 조각은 이렇게 식민지배와 약탈과 반환의 슬픈 인간사를 지켜봐야 했다.

제국주의 열강은 식민지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지배했다. 식민지 사람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재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배국은 약탈하거나, 불법적으로 빼돌리거나, 합법적인 거래를 통하거나, 인류 문명의 보존이란 구실을 달거나 다양한 이유로 식민지의 문화유산을 본디 있던 곳에서 유배시켰다. 겉으로는 식민지의 종교를 존중한다면서 뒤로는 불상이나 불화, 각종 불구 등의 문화재를 사고파는 골동품으로 변질시켰다. 합법·불법을 떠나 문화재가 원래 지니고 있던 기능과 맥락을 발라낸 채 한낱 상품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국외로 반출된 문화재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근래 각지에서 일어나는 시민단체의 문화재 반환 운동은 문화유산이라는 형태로 표출된 우리의 과거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얼마 전 일본 도쿄의 오쿠라호텔은 일제강점기에 반출한 이천 향교 앞 오층석탑을 되돌려달라는 우리 시민단체의 요구를 잠재우기 위해 석탑을 해체해 창고로 옮겼다. 박물관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해체한다는 이유를 댔지만, 계속되는 반환 요구가 편치 않았을 것이다. 이 석탑은 총독부의 묵인 아래 일본으로 반출된 것이므로 반출은 불법이었다.

오는 6월 22일은 한일협정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표면적으로 한일협정은 제국과 식민지였던 일본과 한국이 단절됐던 국교를 정상화하는 조약이었다. 한일협정 당시 일본이 자의적으로 반환한 문화재 목록에는 미술품 439점, 도서 852책 등이 포함됐다. 우리가 요구한 반환 목록에 턱없이 모자랄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부족하다. 국외의 모든 문화재를 반환받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 정신의 고갱이가 될 옥석을 가리는 일이 시급하다. 문화재는 공동체의 정신이고 역사이며, 바로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준 흔적들이다. 민관 협력과 국제 공조의 내실 있는 문화재 반환 전략이 절실해지고 있다.

마크 트웨인은“손에 망치만 들려있다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화재환수라는 복잡한 문제를 푼다며 손에 망치 하나만 달랑 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한다. 민족주의와 애국심으로 목청 높인다고 될 일만은 아니며, 소송도 능사는 아니다. 국제법이나 국제기구를 통한 협약에만 기댈 일도 못된다.

인도네시아 사례처럼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들의 동병상련을 공조 체제로 바꿔 실효를 거두려는 외교적 노력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관련국의 민과 관이 허심탄회하게 둘러앉아 실마리를 찾는 진지함이 우선일터다. 한일협정 50주년은 반출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강희정 서강대·미술사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 문화재위원, <중국사연구> 편집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서강대 대학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에서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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