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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파-현대파 사이, 드뷔시가 있었다
낭만파-현대파 사이, 드뷔시가 있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5.12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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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KAIST 교수팀, 빅데이터 이용해 고전음악 창작 원리 밝혀내

▲ 박주용 교수
KAIST(총장 강성모) 문화기술대학원 박주용 교수 연구팀이 빅데이터를 이용해 서양 고전음악의 창작, 협력, 확산의 원리를 밝혀내 화제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 박도흠 씨가 제1 저자로 참여하고 미국 텍사스대 연구팀과 공동으로 진행한 이번 연구는 해외 저널인 <EPJ 데이터 사이언스> 4월 29일자 하이라이트 논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박 교수 연구팀은 아카이브뮤직(ArkivMusic)과 올 뮤직 가이드(All Music Guide)라는 세계 최대 음반 정보 사이트를 첨단 데이터와 모델링 방법을 사용해 분석했다. 아카이브뮤직은 서양 클래식 음반(CD)에 관한 세계 최대 정보를 제공하고, 올 뮤직 가이드는 음악가들의 인적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다. 여기서 약 6만4천 장의 클래식 음반과 그 음반에 음악이 수록된 1만4천 명의 작곡가 데이터를 사용했는데, 이는 현재 ‘문화’의 빅데이터 연구로서는 세계 최대급 규모라고 할 수 있다.
박주용 교수는 이번 연구를 가리켜 “중세 르네상스부터 현대까지 500년이 넘는 서양 클래식 음악 역사를 장식한 1만4천 명의 작곡가로부터 서양 클래식 음악의 창작과 발전의 원리를 데이터 과학으로 규명하고, 미래 클래식 음악 시장의 모습을 예측하는 연구”라고 설명했다.
그간 KAIST 문화기술대학원(CT)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문화’의 창작과 발전을 깊게 이해하고 그에 맞춘 새로운 학문과 기술을 창출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 연구는 그 일환으로 서양 클래식 음악 연구를 통해 SNS나 인터넷 등 기술적인 분야에 집중된 한국 빅데이터 연구의 지평을 문화의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고전음악 작곡가들의 시대와 스타일이 어떤 패턴을 이루는지 탐구해, 수백 년의 차이가 있는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긴밀한 네트워크가 존재함을 발견했다. 특히 소비자들의 음악적 취향이 고전음악 성장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규명했다.
이들의 작업은 올해 초 ‘800만 권의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란 부제를 달고 국내 번역된 『빅데이터의 인문학』(에레즈 에이든·장바티스트 미셸 지음, 김재중 옮김, 사계절刊)을 환기한다.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기록을 디지털화하는 문제는 인문학에서도 거대과학 스타일의 작업을 할 수 있는 전례 없는 기회를 제시한다. 과학자, 인문학자, 기술자가 함께 팀을 이뤄 일하면 놀라운 힘을 가진 공유자료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박주용 교수팀의 고전음악 빅데이터 분석은 그것의 한국적 적용 실사판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박 교수는 “우리가 수행한 빅데이터 분석은 문화에 과학적 방법론을 입힌 융합연구능력의 좋은 예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 연구팀의 서양 고전음악 빅데이터 분석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연구팀은 창작자들의 소통 및 네트워크(연관성)에 주목했다. 클래식 음악과 같은 문화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그 창작자(작곡가 등)가 개인으로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창작자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스타일이 등장하고 발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작자들이 맺고 있는 소통 및 연관성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문화 창조의 원리, 역사와 미래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 그림1. CD 작곡가들의 빅데이터

이를 위해 연구팀은 ‘CD―작곡가들의 빅데이터’로부터 작곡가들이 형성하고 있는 네트워크를 연구했다(그림 1). 즉 CD에 함께 등재된 작곡가들의 연결망을 중요 요소로 파악했던 것이다. 그림 1은 이 네트워크의 핵심적인 일부를 표현한 것으로 하단의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모차르트와, 차이코프스키는 드뷔시와 함께 CD에 등장한 적이 있음을 알게 해준다. 이러한 네트워크로부터 유의미한 패턴을 찾아 네트워크의 발전 원리와 미래를 연구하는 것을 네트워크 과학이라고 하는데, 현재 SNS와 사회과학, 인터넷 등의 연구에 사용되고 있다. 일종의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인 셈이다.
작곡가와 이들이 맺고 있는 네트워크를 분석한 결과, 이 네트워크는 중세 르네상스(1500년대 이전) 작곡가로부터 2000년대 현존하는 작곡가까지 500년이 넘는 서양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담고 있으면서도, 작곡가와 작곡가 간의 평균 거리는 3.5명에 불과한 좁은 세상을 이루고 있음을 발견했다. 직접 연결되지 않는 작곡가들끼리도 평균적으로 3~4명만 건너뛰면 연결돼 서로 가깝게 연관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네트워크 안에서 각 작곡가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곡가에 따라 매우 상이하다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예를 들어,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1천551명의 각기 다른 작곡가와 연결돼있고, 모차르트는 1천86명의 다른 작곡가와 연결돼 있는데, 이는 작곡가 전체 평균 숫자인 15명의 수십, 수백 배에 달한다. 바흐와 베토벤 같은 유명 작곡가들이 전체 작곡가 네트워크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수치적으로 명확히 보여줌으로써 영향력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그림 1에서 작곡자들의 크기로 표현).

▲ 그림2. 빅데이터와 사조구분 방법으로 교차 검증한 모식도

이 네트워크에서 연결돼 있다는 것은 음반 레이블에서 CD를 발매할 때 함께 묶어서 냈다는 뜻이므로 스타일, 주제, 기법 등에 기반한 음악적 유사성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연구팀은 이 점에 주목해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순전히 네트워크 구조로부터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작곡가들의 집단을 유추한 뒤 기존 클래식 음악사 연구에서 사용되는 사조 구분과 교차 검증까지 진행했다(그림 2).
여기에서는 CD 빅데이터에 기반한 네트워크가 서양 클래식 음악의 발전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낭만파(1800년대)와 현대파(1900년대)를 잇는 프랑스의 작곡가 드뷔시의 중간적인 위치, 현대파의 유럽 및 남미파(드뷔시, 라벨, 피아졸라)-미국파(레너드 번스틴, 애론 코플랜드) 분리 등을 관찰할 수가 있다.


CD의 발매일자에 따른 네트워크의 과거 발전 모습을 분석함으로써 미래의 추세 또한 예측 가능하다. 미래의 네트워크는 유명 작곡가들에게 상대적으로 더욱 더 집중되는 모습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에 따른 CD 발매의 용이성에 힘입어 작곡가의 숫자 또한 꾸준히 늘어나는 것으로 관찰돼, 소수에 집중되는 측면과 다양성의 양면을 지닐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팀은 서양 클래식 음악의 창작 원리를 밝혔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창작 원리’라기보다 작곡가의 상호 영향관계, 음악사의 계보학적 영향관계를 읽어냈다고 말하는 게 적확하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빅데이터를 활용한다면 문학이나 역사, 사회사 분야 연구에서도 구체적 성과가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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