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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재발견, 그 행복하고 기분좋은 순간의 기록들
새의 재발견, 그 행복하고 기분좋은 순간의 기록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5.07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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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사진가 이종렬의 사진전 ‘바람을 먹고 이슬에 잠자다: 풍찬노숙’

▲ 꿈속의 백조 ⓒ이종렬

“風餐露宿은 내가 오랫동안 미련하고 고집스럽게 지켜온, 단순하지만 확실한 취재방법이다. 자연생태를 접하면서 따뜻한 숙소에서 잠을 자고 맛난 음식으로 배를 불리며 촬영한 사진들에선 그들의 처지와 감정을 담아낼 수 없음을 깨닫고부터 자연스럽게 자연에서 이들과 함께 자고 먹고 생활하며 취재하게 됐다. 이런 믿음에서 나는 아직도 찾아가 하늘을 지붕 삼고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同宿의 정을 나누고 있다.”
프리랜서로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서 야생동물을 사진으로 담고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자연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종렬(51세)의 말이다. 지난달 22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두 번째 개인전 「바람을 먹고 이슬에 잠자다: 풍찬노숙」전을 열어 그간 10여년 동안 신념처럼 고수해온 취재방법론을 충실하게 따른 사진 작품 17점을 새로 소개했다. 이번 전시는 그가 지난해 4월 발표한 사진에세이 『바람을 먹고 이슬에 잠자다: 풍찬노숙』(필드가이드 刊)에 많이 빚진 것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부분은, 그가 피사체인 야생동물들 가까이서 위장막으로 자신을 가리고 대포(망원렌즈)로 이들을 담아내던 접근법을 과감히 털어냈다는 것. 그는 며칠이고 이들 주변을 돌면서 자신의 존재를 활짝 드러낸 채 새들과 대화하려 했다고 말한다. 물론 이것은 그의 또 하나의 지론인 “사진을 찍기 전에는 자연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신념의 확장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소통’이란 게 말처럼 그리 쉬운 게 아니다. 더구나 야생의 동물과 대화하려면 더 많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꼬마물떼새(사진 아래)를 담은 작품 옆에 이종렬은 이렇게 설명의 말을 덧붙였다. “생태작업 초기에는 야생동물에게 나의 존재가 드러나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위장막을 사용해 이들의 눈을 피해보려 했지만 실상 이들은 위장막에 숨어 있는 나를 쉽게 인지하곤 했다.” 그는 새들에게 이 위장막은 언제 사람이 튀어나와 자신에게 돌을 던지고 괴성을 질러댈지 모를 괴물이라고 지적한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잇는다. “최근 나의 작업은 나의 존재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나에게 신뢰를 줄 때까지 시간을 들여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방법이 있음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내가 촬영한 사진 중 가장 행복하고 기분 좋은 순간을 기록한 사진이다. 위장막도 없이 이놈과 서너 시간 동안 서로를 의식하며 각자의 일에 열중했기 때문이다. 꼬마물떼새가 나에게 선물한 믿음과 신뢰에 감사하고 함께한 봄의 정취와 교감이 있었기에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늘 행복하다.”
그렇다. 자신의 생태사진, 새 사진을 보면서 행복을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값진 게 있을까. 이번 전시에 내놓은 17점의 작품들은 대부분 170㎝×113㎝ 크기의 대형 사진들이다. 또한 촬영자의 시점이 아닌 피사체의 시점을 고수했는데, 이것은 이종렬이 까다롭게 고수했던 ‘소통과 대화’의 방식이 도달한 사진미학의 한 성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종렬에게 피사체는 더 이상 낡은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同宿하며 살아가는 생명의 일부라는 성찰적 共生으로 거듭났다는 의미다.


“지난 20여 년 동안 나는 전국의 철새 도래지를 찾아다니며 새들의 생활사를 사진으로 담는 일을 해왔다. 그 이유는 내가 워낙 새들의 아름다운 자태에 푹 빠져 있기도 하거니와 새들의 평화로운 서식지로 이름난 서산 간척지나 도요새의 쉼터인 새만금 갯벌과 옥구염전처럼 새들에게 꼭 필요한 습지와 갯벌이 환경오염과 무분별한 개발로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들을 더 이상 우리 곁에서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들의 생태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이 새의 아름다움과 소중한 생태적 가치를 깨닫게 하는 것이야말로 최소한의 의무요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무감과 윤리에서 출발한 생태사진이다 보니 그의 말대로 ‘기록성’의 의미가 무엇보다 앞서 있긴 하지만, 전시된 작품 하나하나는 ‘사진미학’의 쾌감을 보여주는 데도 실패하지 않았다. 대형 인화로 재탄생한 순간순간은 비록 ‘결정적인 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새들과 우리의 삶이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 생명의 아름다운 호흡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는 것을 눈앞에서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이종렬의 이번 사진전은 다시 한 번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필드에서 야생 동물들과 함께 했는지를 잘 보여줬다. 어떻게 하면 생태사진, 새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해왔음을 기억하자. 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촬영하라! “대부분의 애호가들은 야생동물 사진을 촬영하면서 자신이 사진작업에 들인 노력과 시간은 생각지 않고 좋은 사진이 찍히지 않았다고 푸념한다. 좋은 장면을 촬영한 사진가들의 행운을 부러워하며 자신에게는 좀처럼 그런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기껏 2박3일 혹은 3박4일을 촬영하고 나서 품을 꽤 많이 들인 것처럼 말이다.”

▲ 춘정교감-꼬마물떼새 ⓒ이종렬

그러나 무작정 시간을 투입한다고 좋은 사진을 담아낼 수는 없다. 결정적인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 종의 새를 만나면 그 새의 생태와 처지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마음속에 그 새가 자리 잡고 애정이 깃들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그리고 그 새의 느낌이 그림으로 완성되면 사진작업을 시작하고, 그 새의 아름다움이 제대로 표현될 때까지 많은 시간을 들여 작업한다.”
아쉬운 점 한 가지. 그가 생태사진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을 환기한다면, 그리고 작품의 시점이 피사체의 그것이라고 한다면, 이들 새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다양한 미디어로 재현, 사진과 함께 전시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황지우의 시에 등장하는 을숙도의 새들이 끼룩거리며 비상하는 바로 그런 소리까지를 말이다. 그의 사진들에서 더 많은 바람소리가 들려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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