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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없는 철학과는 구조조정 해법 될 수 있을까?
학생 없는 철학과는 구조조정 해법 될 수 있을까?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5.05.06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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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대, 교양학부대학 해체하고 리버럴아츠칼리지 신설

소속된 학생은 없고 교수만 있는 철학과는 대학 구조조정 시대에 기초학문 분야를 살릴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을까? 대전대가 올해 신설한 ‘혜화 리버럴아츠 칼리지’(Hyehwa Liberal Arts College, 이하 H-LAC)에 대학가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산업수요와 대학교육 간의 간극을 줄이면서도 기초학문 분야 교육과 연구를 동시에 살릴 수 있는, 이를테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좇는 시도에 나섰다는 점에서다.

대전대는 올해부터 기존의 교양학부대학을 해체하고 H-LAC를 신설했다. 먼저 눈에 띄는 점은 교육구조의 변화다. 단과대학 형태이지만 대개 소속 학과가 따로 없고 기초교양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들만 소속된 다른 대학의 교양대학과는 차이가 난다. 인문·사회·자연과학 등 단과대학마다 흩어져 있던 기초학문 분야의 학과들을 H-LAC에 한데 모았다. 경영학과는 경영대학 소속이지만 경제학과는 H-LAC에 속한 식이다. 사회과학대학에는 법학과, 행정학과, 사회복지학과 등 응용분야 학과들만 남았다.

심지어 전공하는 학생이 없는 학과도 있다. 철학과는 2013학년도부터 학생 모집이 중단되면서 학과가 없어졌지만 H-LAC를 신설하면서 새로 생겼다. 수학과, 물리학과, 화학과, 지구과학과도 소속 학생은 없고 교수만 있는 학과다. 기존의 학과 개념과는 다르다. 교수가 소속된 행정단위 개념의 학과인 셈이다. 염명숙 H-LAC 학장은 “대전대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기초학문분야 교육을 균형 있게 해야 하기 때문에 전공 학생이 없는 학문 분야라도 주관하는 학과와 교수진은 갖춰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LAC를 만드는 데 일조한 손동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설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원장(대전대 석좌교수)이 강조하는 대목도 바로 이 점이다. 지금까지는 교수가 소속된 학과와 학생들의 학업 트랙, 신입생 모집단위가 하나로 통합돼 있었는데 이를 별개로 취급해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특정 학과에 ‘전속’돼 그 학문을 ‘전공’으로 공부하는 학생은 없어도 교수가 속한 학과는 존재할 수 있다.

손 원장은 “학령인구 감소로 정원을 줄여야 하는데, 교수 소속 학과와 학업 트랙, 모집단위를 일치시키려고만 하면 기초학문 분야는 다 죽을 수밖에 없다”며 “전공 학생이 없더라도 전교생을 상대로 기초학문분야의 교육을 해야 한다면 교수진은 오히려 더 확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산업수요도 무시하지 않고 학문기반도 무너지지 않게 해 ‘투 트랙’을 다 살리는 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교양교육을 한층 강화한 측면도 있다. 대전대는 HLAC를 출범하면서 기존의 교양과목 외에 기초학문 분야 심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기초학문 공통과정’을 새로 만들었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세 영역에서 각각 20과목(60학점)을 개설했다. H-LAC에 속해 있는 학과의 학생은 이 가운데 24학점을 추가로 이수해야 하고, 다른 단과대학 학생도 추가로 12학점을 들어야 졸업할 수 있다. 다른 학생들이 전공과목을 71학점 이수해야 하는 데 비해 H-LAC 소속 학생의 전공 이수 학점은 53학점으로 낮다. 손 원장은 “기초학문 분야에서는 전공교육과 교양교육을 점차 통합해 그 구별 자체를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3일 열린 H-LAC 창립 기념 심포지엄에서도 기초학문 교육 강화라는 측면에서 큰 기대를 받았다. 윤우섭 한국교양교육학회장(경희대)은 “많은 대학이 최근 교양과정을 개편, 강화하고 있지만 대전대 H-LAC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학교 체제를 개편한 것이라 더 돋보이는 것”이라며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순수·기초학문 교육을 강화하고 인성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의지가 투영돼 있다고 본다”라고 평가했다.

기초학문과 직업능력 교육이라는 두 측면을 모두 충족하기 위한 첫 시도인 만큼 우려도 있다. 이날 기조발제를 한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은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학생에게 철학을 가르치고자 한다면 별도의 교과목 개발과 교육과정 개편 노력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H-LAC로 모집했을 때 과연 학생들이 올 것이냐는 문제도 남는다. 취지대로라면 H-LAC로 학생을 모집해야 하지만 아직은 H-LAC에 속해 있는 학과 단위로 학생을 모집한다. 기초학문 분야 학과를 모았다는 설명과 달리 학과 명칭은 ‘정치미디어학과’, ‘비즈니스정보통계학과’처럼 응용분야 냄새를 풍긴다. 입시 지원율과 신입생 충원율을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대전대 내에서조차 “기존 학과들을 모아 이름만 H-LAC으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우섭 회장 역시 “H-LAC 소속 학생들은 전공 선택에서 제한이 없어야 하는데 H-LAC에 합류한 과들로만 선택의 범위가 제한된다면 과거의 광역모집단위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윤 회장은 “많은 단과대학 또는 전공이 합류하지 않아 나타난 현상인 동시에 과를 유지하고픈 구성원들과의 타협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라며 “H-LAC가 더 유연하게, 더 많은 과의 이해를 구하고 궁극적으로 참여의 폭이 확대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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