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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는 왜?
루소는 왜?
  •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승인 2015.05.0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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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정한 나이에 이르거나 삶의 전환기가 되면 자신이 지내온 삶을 되돌아보고 그 시간들을 중요 사건별로 기록해 정리하고 싶은 욕구가 들기 마련이다. 과거를 기록하려는 행위는 지난 삶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잊히지 않고 남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바람에서 혹은 과거의 잘못이나 후회되는 일을 솔직히 말하려는 고백의 목적으로 시작된다. 지난 삶을 기록하는 방식은 유명인들의 회고록이나 자서전부터 보통 사람들의 에세이나 자서전적 기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자서전 쓰기나 엔딩 노트 작성이 이른바 죽음준비교육에서 자주 활용되고 있는 것도 살아온 시간을 정리하고 남은 삶을 계획하는데 글쓰기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다는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250여 년 전 제네바 출신의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스스로를 상노인으로 생각한 52세에 이르러‘고백’이라는 이름의 자서전을 쓸 결심을 한다. 루소의『고백(Les Confessions)』은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기록임에도 불구하고『에밀』,『 사회계약론』과 같은 그의 주요 저서가 어떤 계기로, 어떤 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왔는지 말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또한 디드로와 볼테르, 데이비드 흄 등 당대의 사상가들과의 개인적인 친분관계부터 사상적 교류까지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록이다. 문학사적으로도 루소의『고백』은 자서전 문학의 典範이자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루소가 800페이지가 넘는『고백』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고백의 진실성’이었다. 그는 작품의 서두에서 책을 읽게 될 독자에게‘오직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엄숙한 선서를 한다. 『고백』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는 그의 고백을 듣고서도 자신을 정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생각한다면“그자는 죽어 마땅한 인간이다”라고 다소 과격한 말로 선과 악을 숨김없이 고백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서전이 지나온 삶에 대한 진실한 기록이어야 한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하는 바이고, 저자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하는 것은 오직 독자의 몫인데 저자가 나서서 저렇게까지 진실을 강조하니 고백의 진실성에 대해 오히려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루소가 진실을 담보하면서 꼭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루소는 왜 자서전을 쓴 것일까. 그는 왜 과거의 부끄러운 일을 자발적으로 고백했을까. 『고백』1권에서 이뤄진 고백은 30세가 되기 전에 있었던 어린 시절의 잘못에 대한 사실이 대부분이다. 어린 시절의 변태적 성적 취향과 좀도둑질, 타인에게 누명을 씌운 일 등이 고백의 주된 내용이다. 이 시기의 잘못은 이후에 저지르게 될 잘못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이며 죄를 고백함으로써 마음의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가 컸다고 보인다.

『고백』2권에서 이뤄진 가장 중요한 고백은‘아이 유기’에 대한 해명 혹은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루소는 한번이 아니라 그것도 다섯 번씩이나 자기 아이를 고아원에 보냈으니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는 아이 유기에 대해 아이를 직접 기를 수 없을 때는 공교육에 맡기는 것이 차선책이며 후원자에게 아이를 맡기게 되면 아이가 자라서 부모를 증오할 수도 있으니 차라리 부모의 얼굴을 모르고 자라게 하는 것이 좋다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내세운다. 루소의 마지막 고백은 그에게 가해진 세상의 박해와 오해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이뤄졌다. 즉 그가 세상을 등지고 시골에서 은둔해 산다는 비난에 대해, 그리고 길거리에서 돌팔매질을 당할 정도로 비난과 박해의 대상이 된『에밀』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해명을 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루소가 자서전에서 행한 고백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잘못과 아이 유기에 대한 입장, 세상의 비난에 대한 해명 등으로 나타난다. 그는 자신은 진실만을 말했으니 그 고백을 무조건 믿으라고 했다가 진실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루소의『고백』은 모순으로 가득 찬 기록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루소의『고백』이 작가의 가장 중요한 기록이자 자서전의 모범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감추지 않고 타인들과의 소통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시작된‘자서전 쓰기 열풍’은 자서전이 지나온 삶에 대한 성찰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현재의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좋은 현상이다. 반면 대개 폭로를 하거나 과시를 하려는 글은 필연적으로 왜곡이나 과장, 미화가 따르기 마련이다. 루소의『고백』이 참회록은 아닐지는 몰라도, 그는 기억의 오류 가능성을 두려워할 정도로 있는 그대로의 삶을 기록하고자 했기 때문에 진실을 말하려는 의지만큼은 의심할 수 없는 자서전을 쓸 수 있었다. 자서전을 쓰고자 한다면 의도적인 거짓말뿐이 아니라 사실을 숨기는 것도 진실에 대한 왜곡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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