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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이 치매환자들 보는 것 같다
정치판이 치매환자들 보는 것 같다
  • 송기숙 소설가
  • 승인 2002.11.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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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송기숙 / 소설가·전남대 명예교수

요사이 정치판을 보면 치매환자들을 보는 것 같다. 치매환자의 증상 가운데 한가지는 자기 주장만 하고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는 것이다. 무슨 일에 비위가 상하면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있는 일 없는 일 다 끌어대 자기 주장을 합리화한다. 상대의 말은 아예 듣지도 않거나 모두 거짓말이라고 몰아친다.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모친이 치매에 걸려 곤욕 치른 이가 있다. 그 모친이 터무니없는 소리로 며느리를 몰아치자 셋인가 넷인가 되는 딸들도 어머니 편이 돼 그 며느리는 아주 몹쓸 사람이 되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시누이들은 모두 사리나 처신이 반듯한 사람들이었으나 그런 연기력에는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삼십 년 전 웬만한 사람들은 치매라는 병을 잘 모를 때였다.

치매환자와 비슷한 행태를 보인 사람이 히틀러다. 그는 자기가 관철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사실을 엉뚱하게 왜곡해 자기 자신부터 철저하게 믿어버렸다. 자기 최면을 건 것이다. 거짓을 사실로 주장하려면 누구나 자의식이 발동하기 마련이라 그래 가지고는 대중을 설득시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 히틀러의 현란한 웅변술도 웅변술이었지만 그는 그런 비법으로 독일 사람들을 광기에 가깝게 열광시켜 독일 국민 거의 전부를 집단 편집증(Paranoia)에 몰아 넣어 나라를 망치고 유태인을 육백만 명이나 학살했다.

치매환자와 히틀러가 다른 점은 치매환자는 그런 행동이 의식적이 아니지만 히틀러는 의식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범상한 눈으로는 그걸 쉽게 가려낼 수가 없다. 우리 정치가들은 치매환자라면 중증이고 히틀러라면 연기력이 그만큼 완벽하다. 문제는 치매환자는 자기 집안만 파괴하지만 정치가는 나라를 망친다는 점이다.

지난 월드컵 때 젊은이들이 모두 빨간 응원복을 입고 한 덩어리로 열광하는 것을 보고 국가주의적 ‘광기’라고 한마디로 단정하는 외국인이 있었다. 나도 경기에만 매몰됐다가 일제 식민지 통치이래 계속됐던 우리의 국가주의적 통치가 떠올라 그의 통찰에 등골이 서늘했다.

지금 정치가들의 치매적이거나 히틀러적인 작태도 이 국가주의적 통치의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제시대부터 군사정부 때까지 통치자들은 우선 모든 것을 획일화시키고 명령과 지시 일변도로 다스렸다. 특히 교육이 그랬다. 학생들을 교복, 교모, 배지 등 외모부터 획일화시키고, 한때는 거의 날마다 애국조회니 반공조회니 하여 반듯하게 열을 지어 군대식으로 집단화시켰다. 통치자들이나 선생들은 지시하는 입만 있고 들을 귀는 없었으며 국민들이나 학생들은 들을 귀만 있고 말할 입은 없었다. 학생들은 시험답안지도 앵무새처럼 선생이 가르쳐 준 대로만 쓰고, 일반인들도 ‘말이 많으면 빨갱이’라는 식으로 개인의 의견은 금기였다. 어느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더니 자기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16년 동안 출석부를 때 ‘예’ 소리 밖에는 수업시간에 말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웃는 사람이 있었다.

한마디로 남의 말을 듣고 자기 의견을 말하고 이견을 조정하여 서로 승복하는 토론이 없었다. 심지어 교육부에서 주관하는 대학총장회의라는 자리도 토론이 없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지시를 더 강하게 하려고 총장들을 한자리에 ‘집합’시켰을 뿐이다.

그렇게 지시만 하던 사람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리면 목소리만 높아지거나 뒷구멍으로 야합을 하기 마련이다. 악다구니로 난장판이 되거나 너 좋고 나 좋자는 가락으로 귓속말을 속닥이며 히히닥거리는 것이다. 그 전형적인 예가 국회라는 곳인 것 같다.

1957년 소련이 최초로 우주선 스푸트니크를 쏘아올려 과학 발전을 만천하에 과시하자 기가 죽은 미국은 자기들의 기술이 뒤떨어진 원인을 여러 분야에서 검토했다. 교육에서는 수학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해 초등학교 일학년 수학교과서부터 개편했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국회의 행태로 상징되는 우리나라 정치·사회의 난맥상은 말이 아니지만 그 원인에 고민하는 문제의식 자체가 없는 게 아닌가 싶다. 교육의 경우 교육 내용이나 방법 같은 근본적인 문제는 뒷전이고 대학 입시나 학교 평준화 같은 문제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교육이 국가 백년대계라는 말은 교육의 영향은 그만큼 오래간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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