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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확신은 당대 현실에서는 실패했지만 역사적으로는 승리했다”
“그의 확신은 당대 현실에서는 실패했지만 역사적으로는 승리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4.28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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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13강. 장현근 용인대 교수의 ‘『맹자』: 도덕의 정치학’

맹자는 도덕정치를 통한 구세라는 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패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창조해냄으로써 역사적으로도 존재했고 현실에도 존재하는 ‘힘의 정치’를 부정했다. 그리고 정치가들을 德政 즉 ‘덕의 정치’로 지향하게 만듦으로써 공자 유학의 계승자로서 선명한 자기정체성을 확립했다.

동양사상에서 맹자의 위치는 어떻게 될까. 그의 『孟子』는 서구 정치사상에 즐겨 견줘지면서 이해돼 왔다. 지난 25일(토)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 13강은 바로 그 ‘맹자’를 조명했다. 장현근 용인대 교수(중국학과)가 진행한 ‘『맹자』: 도덕의 정치학’이 그것이다.


장 교수는 경희대를 마치고 대만 중국문화대에서 ‘상군서’ 연구로 석사학위를, ‘순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유가사상의 현대화, 동양 경전의 재해석, 자유자본민주에 대한 동양사상적 대안 모색에 몰두해 왔다. 저서로는 『맹자』(2013), 『중국사상의 뿌리』(2004, 2013), 『민의와 의론』(공저?2012), 『성왕: 동양 리더십의 원형』(2012), 『맹자 : 바른 정치가 인간을 바로 세운다』 등이 있다.
이날 강연에서 『맹자』를 ‘정치학 교과서로 읽고자 한다’고 밝힌 장 교수는 인의, 심성, 왕패, 군자 등의 주요 키워드를 통해 『맹자』에 나타난 도덕의 정치학을 강조했다. 그는 “인의도덕의 정치를 통한 왕도의 구현이라는 맹자의 구세의식은 그가 죽은 후에,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시퍼렇게 살아서 살아있는 권력을 겨냥한다. 도덕이 결국 승리하리라는 그의 확신이 당대의 현실에서는 실패했지만 역사적으로는 승리한 것이다.”라고 맹자를 평가했다. 눈 밝은 독자라면 그의 ‘군주’ 독법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타난 ‘군주’ 상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맹가(孟軻, Mencius, 이하 맹자)는 사람만이 갖고 있는 마음을 발견했다. 이것으로 천하의 군주들을 설득하러 다녔다. 전쟁과 경쟁과 이익이 지배하는 세상을 인의와 도덕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꾸고 싶었다. 그러나 ‘정치를 통한 구세’라는 그의 강렬한 소망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이상주의자라는 비판만 받았다. 그가 고단한 유세길에서 돌아와 말년에 제자들과 함께 쓴 책이 『맹자』다. 독백 또는 제자들과의 대화 또는 다른 사람들과의 논쟁으로 이뤄진 『맹자』는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이 책이 가진 풍부하고 다양한 가치만큼이나 주석서와 연구서도 매우 많다. 그러나 『맹자』를 읽으면 공통적으로 도덕적인 세상에 대한 열망이 솟구치고 정치와 사회와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는 『맹자』를 정치학 교과서로 읽고자 한다. 인의, 심성, 왕패, 군자 네 가지 큰 항목으로 압축해 『맹자』의 정치학을 소개하겠다.

仁義: 『맹자』 첫 편인 「양혜왕 상」의 첫 장은 맹자 사상 전체의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맹자』에 등장하는 인의는 크게 다음 몇 가지 뜻을 함축하고 있다. 첫째는 세상의 중심 가치로서 인의다. 맹자의 인의는 가족 내의 사랑을 사회로 확장하는 논리의 연장선에 있다. 맹자의 언어로는 推恩이다(「양혜왕 상」·7).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이해타산 없는 사랑이 인이고 형과 아우 사이(또는 군주와 신하 사이)의 따뜻한 공경이 의이다. 둘째는 생활의 덕목으로서 인의이다. 「양혜왕 상」·1에서 맹자는 “어질면서[仁] 자기 부모를 버리는 사람은 없으며, 의로우면서[義] 자기 군주를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한다. 부모를 잘 모시고 군주를 먼저 생각하는 태도는 인의에서 비롯되지 이익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는 정치의 원리로서 인의이다. 부모에 대한 친애로서 인과 형에 대한 공경으로서 의를 전체 사회로 넓혀가도록 만드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맹자에게 정치는 인의의 사회적 구현인 셈이다.
『맹자』의 상당 부분은 백성들을 감동시키기 위해 군주가 해야 할 행위와 여러 가지 정책적 구상으로 가득하다. 몇 가지만 예로 들면, 「양혜왕 하」·1에서는 혼자만 즐기지 말고 백성들과 더불어 음악을 들으라 하고, 「양혜왕 하」·2에서는 철책을 치지 말고 백성들에게 사냥터를 공개하라고 한다. 與民同樂하라는 주문이다. 「양혜왕 하」·7에는 “일반 백성들은 일정한 생업[恒産]이 없으면 일정한 도덕심[恒心]도 갖지 못한다”면서 최저생계의 유지와 일자리 마련을 주문한다. 「양혜왕 하」·5에는 9분의 1 세금제도의 도입과 폭넓은 사회복지 정책을 제안한다. 「등문공 상」·3에는 학교의 설립과 井田制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세금의 감면, 형벌의 감경, 관세 폐지 등 다양한 정책을 제안한다.

心性: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한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人性에 대한 논의가 『맹자』 전체의 주제는 아니다. 인의와 心이 훨씬 더 많이 등장하는 논제다. 물론 맹자의 인성론은 인의의 정치를 위한 중요한 사상적 기초임은 틀림없다. 동물과 달리 사람만이 갖고 있는 특징인 심을 설명하려면 선한 본성에 대한 논의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맹자』의 곳곳에는 사람과 짐승을 비교하는 장면이 많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특성을 드러내기 위한 맹자의 전략일 것이다. 맹자의 성선설은 다른 존재와 달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위대성에 대한 확신이다. 이렇듯 사람이 누구나 선한 본성과 도덕심을 가지고 있다면 선하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자는 환경 때문이라고 한다. 나쁜 환경을 만나 본성이 악하게 바뀐다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선함이 환경 때문에 가려져서 드러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한다. 이 점에서 맹자도 다른 유학자들처럼 후천적 교육을 매우 중시했다. 맹자의 발상은 불선을 막아 선하게 되라고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다. 본래 선한 인간의 본성과 마음을 회복하는 교육을 중시한다. 맹자는 예의를 선을 회복하는 중요한 교육적 수단으로 생각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중심 원리

王覇: 모든 사람이 선한 심성 그대로 살아가는 세상이 왕도사회이다. 왕도사회는 이익이 아니라 인의가 세상을 움직이는 중심 원리이고,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친애와 공경이 자연스럽게 세상에 넘치는 사회이고, 그 어떠한 외부적 강제력도 개입되지 않는 자율이 이뤄지는 곳이다. 선한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선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세상이다. 맹자는 도덕정치를 통한 구세라는 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패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창조해냄으로써 역사적으로도 존재했고 현실에도 존재하는 ‘힘의 정치’를 부정했다. 그리고 정치가들을 德政 즉 ‘덕의 정치’로 지향하게 만듦으로써 공자 유학의 계승자로서 선명한 자기정체성을 확립했다. 「공손추 상」·3에서 맹자는 새로운 주장을 한다. “힘으로 仁을 가장하는 정치가 覇다. 패도는 반드시 큰 나라를 필요로 한다. 덕으로 인을 실행하는 정치가 王이다. 왕도는 큰 나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구성원들을 힘이나 이익이 아닌 마음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정치라는 얘기다. 맹자가 왕도정치를 통해 백성들의 즐거운 삶을 보장하라고 군주에게 요구한 것은 민중들의 고난을 직접 목도했기 때문이다. 『맹자』에 등장하는 군주에 대한 많은 비판은 대부분 전제군주의 포악성에 대한 질타다. 백성들이 기뻐하는 정치는 인의도덕의 정치다. 그러니까 도덕의 정치를 위해선 포악한 군주를 죽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선한 심성에 기초한 정치와 마찬가지로 폭군에 대한 방벌 또한 민심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맹자의 왕도는 민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민은 곧 천이고 민심은 곧 천명이다. 민심의 이동은 천명의 이동이다. 민심이 폭군을 죽이라 하면 죽임으로써 천명을 받아 왕이 되고, 민심이 선양을 원하면 천명으로 새로운 왕이 되며, 민심이 세습을 원하면 천명을 받아 세습하는 것이다.

君子: 왕도정치의 담당자는 군자이다. 군자는 사람만의 위대한 특질인 도덕적 심성을 잘 보존하는 사람이다. 군자는 맹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정치가였다. “군자는 인의예지가 그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므로 그의 본성은 맑고 밝게 생색이 나서 얼굴에 드러나고, 등 뒤에 비치고, 사지에 퍼지게 된다. 사지에 행동으로 드러나므로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이 깨닫게 된다.”(「진심 상」·21) 눈이나 귀 같은 몸의 작은 부분을 따르는 사람은 소인이다. 대인 정치가는 깊은 사유를 하며 감각기관의 욕망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하늘이 부여해준 마음을 지킬 따름이다. 그렇게 不動心 즉,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진정으로 용기 있는 정치가다.
맹자가 바라는 정치가는 군자, 대인, 대장부로서 높은 차원의 용기를 지닌 사람이다. 이들은 선한 심성을 지니고 인의에 입각한 왕도정치를 시행한다. 맹자는 공자가 만들어낸 추상화된 이미지의 군자관념을 잘 추종하면서 ‘사람다운 마음의 소유자’라는 한 가지 덕목을 추가했다. “군자가 보통 사람과 다른 까닭은 그가 사람다운 마음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자는 인으로써 그 마음을 지키고, 예로써 그 마음을 지킨다. 어진 사람은 백성들을 사랑하고, 예의를 갖춘 사람은 백성들을 공경한다. 백성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백성들도 항상 그를 사랑할 것이며, 백성들을 공경하는 사람은 백성들도 항상 그를 공경할 것이다.”(「이루 하」·28)


군자는 보통 사람과 다르며 어진 마음과 예의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 도덕정치를 펼칠 수 있다. 군자는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있으므로 백성들이 불행해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한다. 맹자는 힘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상에 맞섰으나 큰 나라의 군주를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대장부는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함께 그 길을 가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위대한 원칙을 실천하는 사람이다(「등문공 하」·2). 맹자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선비로서 빈궁해도 의를 잃지 않는 삶을 살면서 제자들과 『맹자』를 저술했다. “빈궁해도 의를 잃지 않으니 선비들은 자신을 완성할 수 있고, 영달해도 도를 잃지 않으니 백성들이 희망을 잃지 않게 된다. 옛 사람들은 뜻을 얻으면 그 혜택이 백성들에게 더해졌고, 뜻을 얻지 못하면 몸을 닦아 세상에 드러내 보여줬다. 빈궁하면 홀로 제 몸을 선하게 하고, 영달하면 두루 천하를 선하게 하는 것이다.”(「진심 상」·9). 兼善天下든 獨善其身이든 모두 정치의 다른 방법일 수 있다.

도덕이 승리하리라는 맹자의 믿음

나가며: 맹자는 군주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새 세상을 열 수 있기를 “감히 청하지는 못하나 몹시 바라던 바였다(不敢請, 固所願).”(「공손추 하」·19). 왕의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곁으로 달려가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 대장부 정치가로서 자신에 대한 집착을 넘어, 권력과 이익을 넘어, 부귀영화와 안위의 추구를 넘어 오직 천하 백성들의 안녕과 이익과 올바름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고 싶어 했다. 힘과 이익이 경쟁하는 시대에 덕의 정치를 통해 물에 빠진 천하를 구원하겠다고 나섰으니 맹자는 이상주의자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인의도덕의 정치를 통한 왕도의 구현이라는 맹자의 구세의식은 그가 죽은 후에,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시퍼렇게 살아서 살아있는 권력을 겨냥한다. 도덕이 결국 승리하리라는 그의 확신이 당대의 현실에서는 실패했지만 역사적으로는 승리한 것이다. 군주의 태도를 바꾸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천하를 구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도덕의 정치 또한 추상적이다. 누구나 동의하는 도덕의 명확한 기준이 없으며 많은 경우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인은 도덕으로 자신을 잘 포장한다. 심지어는 도덕을 앞세워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도 한다. 사실상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왕도정치는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이상을 포기할 것인가. 이상이야말로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잣대다. 정치는 현실권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보다 나은 세상을 제시하는 미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만의 특질인 마음을 발견한 맹자는 이를 바탕으로 왕도사회의 구현이라는 위대한 정치 이념을 설파하러 천하를 주유했다. 맹자는 지극히 세속적인 현실정치의 질곡을 보면서 마음속 스승 공자의 선명한 메시아적 의식을 계승했다. 갈등하는 정치세계에서 최고 지도자가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는 궁극적으로 그 추종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의 행동기준이 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경제와 안보 등 시급한 현실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도덕의 잣대를 판단기준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결국 원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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