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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주기, 분노와 애도 사이에서
세월호 1주기, 분노와 애도 사이에서
  • 이충진 한성대·철학
  • 승인 2015.04.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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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평] 이충진 한성대·철학

이충진 한성대·철학
지난 4월 16일은 세월호 침몰 1주기가 되던 날이었다. 그날 자정 무렵 서울 광화문은 유족과 시민들로 가득 찼다. 경찰의 굯壁이 등장했고, 물대포와 최루액이 사람들을 향해 뿌려졌다. 100여 명이 연행되고 유가족을 포함해 수십 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부상자 중에는 경찰도 있었다.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그곳에는 ‘억울함’, ‘분노’, ‘폭력’ 등의 단어가 어울렸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를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런 것이었다.

같은 날 인터넷에는 세월호와 관련된 내용들이 하루 종일 올라왔다. 정오 무렵 한 포털 사이트에 ‘실시간 이슈’로 올라온 것들은 ‘슬픔’, ‘애도’, ‘공감’ 등이었다. 이 또한 1년 전 참사를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었지만, 정오의 인터넷은 자정의 광화문과 사뭇 달랐다. 분노의 함성과 애도의 경건함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간극이 놓여 있듯이, 자정의 세월호와 정오의 세월호 사이엔 그에 못지않은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1년 전 우리는 세월호 사고가 세월호 참사로 변모되는 과정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세월호의 비명을 하루도 빠짐없이 두 귀로 들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마음은 슬픔과 분노로 가득하다. 1년 후, 과연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세월호를 대하게 될까. 아마도 후회와 무력감이 아닐까. 서해 페리호 침몰 사고나 대구 지하철 참사를 돌이켜보면 분명 그럴 것 같다.

세월호는 여러 면에서 이전의 참사들과 똑같았고 세월호를 대하는 우리 역시 이전의 우리와 다를 바 없다. 20여 년 전처럼, 그리고 10여 년 전처럼 이번에도 슬픔은 컸지만 분노는 금방 사라졌다. 진상규명 요구는 허공을 맴돌기만 하고 재발방지는 시도조차 되지 않는다. 남은 것은 유족의 고통과 다수의 무심한 일상뿐이었다. 남은 슬픔은 억압됐고 남은 분노는 조롱됐다.

다른 점도 있기는 했다. 반복된 학습효과 때문일까. 세월호 침몰 이후 분노가 사라지는 속도가 이전보다 빨랐다. 불과 몇 주 만이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슬픔이 차지했다. 더 커진, 더 이상은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린 슬픔은 보는 사람들에게 고통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것은 공동체 차원의 애도로, 그것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강조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와 함께 분노의 원인이었던 不正義는 잊히고 사라졌다. 1년 전 우리가 느꼈던 분노는 그랬다.

지금 우리가 갖는 분노는 1년 전의 그것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그때는 분노가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게 향했지만, 지금은 원인을 은폐하려는 사람에게 향한다. 결국 지금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선 1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게 됐다. 혹여 분노가 사라지게 되는 날이 온다고 해도 제2의 세월호가 등장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게 됐다. 그렇게 지난 1년 모든 것이 더 나쁘게 돼 버렸다.

슬픔도 달라졌다. 전에는 희생자와 유가족의 슬픔 때문에 슬퍼했지만 이제는 나 자신 때문에 슬프다. 이토록 참담한 일을 그저 보고 있어야만 하는 나의 무력함 때문에 슬프고, 고통의 목소리를 저 벽 너머로 보내지 못하는 나의 허약함 때문에 슬프다. 내 마음 가득한 슬픔과 고통이 나의 강고한 일상을 뒤흔들지 못하는 나의 속물됨 때문에 슬프다.

시간이 지나면 세월호의 슬픔도 세월호의 분노도 사라질 것이다. 그 끝이 열패감과 자괴감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슬픔 때문에 분노를 잊지 않는 것, 분노 때문에 슬픔을 잊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이리라. 분노를 가져왔던 행위들, 사람들, 사회적 관행들로부터 눈길을 거두지 않는 것, 책임자 처벌과 제도의 개선이 자식 잃은 마음을 대신할 수 없음을 깨닫는 것,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당장 나의 몸과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바로 그런 것들이리라.

정녕 앞으로의 일 년은 지난 일 년과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이충진 한성대·철학
독일 마르부르크대에서 칸트 법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칸트의 正義論」, 「헤겔의 絶對知」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이성과 권리』, 『독일 철학자들과의 대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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