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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전쟁에 반대하는 독일-미국 지식인, 예술인들의 연대 촉발
독일: 전쟁에 반대하는 독일-미국 지식인, 예술인들의 연대 촉발
  • 교수신문
  • 승인 2002.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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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행동’ 결의문으로 부시 압박
당신은 행동하는 지식인인가. 이것은 치열했던 1980년대의 우리 역사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지식인들에게 제기돼 왔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적 위기에 직면할 경우 지식인의 모호한 계층론적 존재기반은 기득권의 수호와 역사적 실천을 쟁점으로 여러 입장으로 갈리기 때문이다. 때마침 이러한 질문에 응답하듯 독일의 저명한 학자, 예술가, 그리고 지식인 1백20명은 아프가니스탄에 폭격이 자행된 지 1년째인 2002년 10월 6일, 부시정부의 보복성 반테러전에 대해 강력히 경고를 가하는 행동 결의문을 선포했다.

우선 슈피겔 온라인 2002년 10월 4일, 6일자에 따르면, 이 행동 결의문은 ‘우리의 이름에는 없다(Nicht in unserem Namen)’라는 표제와 함께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행동(Aktion fur mehr Demokratie)’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됐다. 이 결의문의 서명작업에는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를 비롯해 위르겐 하버마스 작가 페터 륌코프, 발터 옌스, 카롤라 슈테른, 프리드리히 쇼얼렘머 목사, 학자로서는 한스 몸젠, 칼 오토 콘라디 등이 참여했다.

독일 지식인 1백20명 테러 반대 서명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선언이 나오기 사흘 전, 부시 미국 대통령은 통독 12주년을 맞아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에게 축하메시지를 보내 “미국은 통일 독일의 자유 수호라는 공동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 독일 국민들과 함께 확고하게 서있다”라고 밝히면서, 공산주의 종식과 베를린 장벽 붕괴는 두 나라에 큰 성공이었고 전후 양국 국민 간에 이뤄진 긴밀한 우의는 향후 새 도전에 맞설 튼튼한 기반이라고 강조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정부의 대 테러 전쟁에 대한 비판과 탄핵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결의자들은 전쟁은 국제적인 권리 조문과 정신에 반하는 것이고, 특히 미 대통령이 공공연하게 꾀하고 있는 “대 이라크 예방전쟁의 선포”는 왜곡된 도덕 관념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입장 속에서 이 서명에 참여한 독일 지식인들은 “우리는 미국의 동료들과 연대할 것”이라는 점에 의견을 모았다.

이에 화답하듯이 미국의 각계 인사들 역시 이라크 전에 대한 반대입장을 약속했다. 10월 20일자 슈피겔 온라인에 따르면, 미국 영화배우 수잔 서랜든, 올리버 스톤 감독, 마틴 루터 킹 3세, 그리고 고어 비달 등은 부시 정부의 전쟁 전략에 반대입장을 선언했다. 그들은 ‘뉴욕 타임즈’의 전면 광고에 “신제국주의 정치”와 “억압의 장막”이라는 문구를 실어 부시정부의 대 테러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고, 4천명의 미국 시민들은 독일 지식인들이 앞장 서서 행동한 결의문의 ‘우리의 이름에는 없다’는 표제 아래 서명했다.

“이것은 세대를 불문한 광범위한 연대”라고 이 운동의 주창자인 클라크 키신져는 강조했다. 16일 ‘뉴욕타임즈’의 15면에 비판광고가 실리기 시작하면서 주류 언론에서도 이례적으로 부시 대통령을 공격하는 강도 높은 글들이 실렸다. 예컨대 “서명자들은 2001년 9월 11일 이래 진행된 정치적 경향에 반대하기 위해 미합중국의 시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라는 입장 전달 기사와 함께 “미국의 가장 높은 지도자들”이 “복수의 정신”을 확산시키고 있고, “새롭게 열린 제국주의 정치”를 세계적으로 추구하면서 미국 시민의 두려움을 “조작하고 있다”라고 비판한 논조는 1년 전 9·11테러 직후 언론이 보여준 모습과 많이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 각계 인사들도 동참

이러한 주요 언론의 비판적 흐름 속에서, 계획된 대 이라크전에 대한 풍자와 지원 사격도 이뤄졌다. 가령, “미 정부가 특별명령권, 살인, 그리고 폭격을 자행하기 위한 백지수표를 받고 그것을 허락하도록 하는 이곳은 어떠한 세계인가” 하는 등의 날카로운 비판이 단적인 예이다. 결국 독일-미국 지식인 및 예술가들의 연대 행동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이러한 “백지수표”를 회수, 폐기처분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테러주의에 효과적으로 싸우려 한다면, 국제연합이 강해져야 하고 “무력으로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연합의 감시 아래 국제적인 폭력의 독점 경향을 제어하도록 해야 한다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테러주의에 대해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일단 테러가 발생했던 사회적 원인에 대해 면밀히 포착해야 한다. 지정학적, 사회적 위상에 대한 이라크 사회의 이해 없이 단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석유 등의 풍부한 자원을 부정하게 분배하려 하거나 서구 중심의 오만과 편견으로 외국문화에 대해 경시함으로써 빚어지는 결과는 폐허의 세계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진숙 독일통신원/라이프치히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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