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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지금’을 맛보라고 말해주는 오래된 지혜
‘영원한 지금’을 맛보라고 말해주는 오래된 지혜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4.20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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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12강. 오강남 리자이나대 명예교수의‘노자『도덕경』, 장자『장자』’

근래 출판계에 흥미로운 아이콘이 바로 노자와 장자다. 올해 4월까지 노자·장자로‘예스24’에서 검색해보면, 노자와 관련된 책은 4권, 장자와 관련된 책은 8권이 뜰 정도다. 왜 노자, 장자가 이렇게 읽히는 걸까. 지난 18일(토)‘ 문화의 안과 밖’시즌2 고전읽기 12강이 여기에 어떤 답을 줄 수 있을까. 오강남 리자이나대 명예교수(종교학)가 진행한 이번 강연은‘노자『도덕경』, 장자『장자』’읽기에 집중했다.
오강남 교수는 서울대 종교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마치고, 캐나다 맥매스터대에서「華嚴의 法界緣起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대 비교 종교학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강의, 집필, 강연을 하고 있으며, 종교 간의 대화와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단체‘종교너머, 아하’의 이사장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종교란 무엇인가』등이 있고, 노장사상을 풀이한『도덕경』,『 장자』등도 상재했다. 제17회 코리아타임스 한국현대문학 영문번역상(장편소설부문, 1987)을 수상하기도 했다. 비교 종교학자가 전하는『도덕경』과『장자』, 과연 어떤 독법이 가능할까. 강연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사진 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도덕경』

오강남 명예교수

『도덕경』은 본래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를 위한 지침서였지만, 그 가르침의 보편성과 깊이 때문에 통치 지도자들뿐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널리 사랑받았다. 어느 면에서 윤리적이고 현실적인 면을 강조하는 공자의 유가 사상이 陽을 대표한다면, 형이상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는 노자의 사상은 陰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음·양, 이 둘이 동양인의 정신세계에 양대 축을 형성하며 조화를 이뤘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도덕경』은‘道德’이라는 글자 때문에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식의‘도덕’이나‘윤리’를 가르치는 책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은‘도와 덕에 관한 경’이다. 그러면‘道’는 무엇이고‘德’은 무엇인가? 『도덕경』제25장에 보면 도는‘분화되지 않은 무엇(the Undifferentiated)’이다. 제42장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도가‘하나’를 낳고, ‘하나’가‘둘’을 낳고, ‘둘’이‘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습니다.”라고 한다. 이럴 경우 도는 만물의 근원, 존재의 근거, 우주와 그 안의 모든 것이 그러하도록 하는 근본 원리, 흔히 쓰는 말로 하면‘궁극 실재(Ultimate Reality)’라고 할까. 이런 것을 보면『도덕경』의 실재관은 다른 여러 종교 전통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덕이란 무엇인가. 덕은 일차적으로 도에서 나오는 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덕은‘得’과 같은 뜻으로서 도와 더불어 살면 우리에게‘득’이 된다는 의미로 풀 수도 있다. 인간에 있어서 이상적인 삶이란 결국 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 도와 함께 흐르고, 도와 함께 춤추는 것,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새로운 생명으로 새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도의 작용이나 원리를 체득하고 그대로 따르라고 한다.『 도덕경』에서 말하는 도의 원리 몇 가지만 예로 든다.

함이 없음(無爲): ‘함이 없다’고 아무 하는 일 없이 가만히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 함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자발적이고 은은하여 보통의‘함’과 너무도 다른‘함’, 그래서 ‘함이라고 할 수도 없는 함’이다. 도가 이렇게‘함이 아닌 함(無爲之爲)’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므로 우리 인간들도 도와 하나 된 상태에서, 도와 함께 저절로 나오는 함을 하며 살라는 것이다.

하루하루 없애 감(日損):  어떻게 도의 길을 갈 수 있는가? 『도덕경』에 의하면, “학문의 길은 하루하루 쌓아 가는 것,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 가는 것. 없애고 또 없애, 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십시오. 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면 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48장)라고 한다. 우리가 사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선입견이나 지식을 버리면 도와 하나 됨의 경지에 이르고, 이렇게 될 때 모든 인위적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게 된다고 한다.

지식을 없앰(無知): ‘하루하루 없애 감’이란 어느 면에서‘지식을 없앰’을 뜻한다. 『도덕경』전체를 두고 보면 여기서 말하는 무지란 우리의 奸智, 꼼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잔꾀 같은 것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라고 보아도 좋고, 더욱 근본적으로는 도에 대한 우리의 分別智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장자』

『장자』는 이래라 저래라 하는 교훈적인 가르침이 거의 없다.『 장자』는 거의 전부가 이야기나 우화로 꾸려져 있어 읽는 이가 거기서 자기에게 필요한 깨우침을 얻도록 돼 있다.『 장자』는 한 가지 체계적인 ‘인식 내용’을 제공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우리에게‘일깨움(evocativeness)’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책이라 할 수 있다.『 장자』가 주려는 메시지를 총체적으로 말하라고 한다면,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또는 변화된 의식 상태에서 볼 때 얻을 수 있는 초월과 자유를 얻으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장자』에 일관되게 흐르는 몇 가지 구체적 주제를 잡아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道: 『장자』의 도는『도덕경』에 나오는 도의 개념과 기본적으로 같다고 볼 수 있다. 단『도덕경』이 도를 주로 만물의 생성 변화의‘근원’으로 파악하고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 할 대상이나 결국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궁극적 귀착점으로 강조한 데 반해, 『장자』는 도를 무궁한 생성 변화 그 자체로 파악하고, 그 근원으로 돌아가기보다는 그냥 그 변화에 몸을 맡겨 그대로 흘러가는 삶을 더욱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도덕경』은 주로 도의‘生’하는 측면을 말하고 있는데,『 장자』는 도의‘化’하는 기능을 부각한다.

초월과 자유: ‘자유롭게 노닐다(逍遙遊)’라는 제목이 붙은 제1편 첫머리는 鯤이라는 물고기 한 마리가 변해 鵬이라는 새가 되고, 그 붕새가 남쪽 깊은 바다로 날아간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여기서 붕새는 이런 엄청난 변화의 가능성을 실현한 사람을, 그리고 그 거침없는 飛翔은 이런 변화나 변혁을 이룬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超越을 상징한다. 이것은 인간이 생래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실존의 한계에서 벗어나 얻을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이 어떠함을 보여 주는 사례로, 『장자』의 전체 사상을 집약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장자』는 어느 면에서 인간 해방과 거기에 따르는 자유를 선언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자연적 본성을 따름: 장자에게 있어서 행복은 주어진 천성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학의 다리가 길면 거기 맞추어 긴 대로 살고, 오리의 다리가 짧으면 거기 맞춰 짧은 대로 사는 것이 행복이다. 장자는 모든 정치 제도나 법률, 윤리 같은 것도 기본적으로 모두 인위적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고 배격했다(8편). 일종의 자연주의자 혹은 좋은 의미의 아나키스트적 입장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의식의 변화: 『장자』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특히 이 의식의 변화인데, 여기서는‘吾喪我’와‘坐忘’, ‘心齋’를 살펴볼 수 있다.

어떻게 해야 사물을 더욱 깊이, 그리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결국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상식적이고 인습적인 이분법적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즉, 吾喪我는『장자』의 핵심 개념 중 하나다. 다음은 좌망이다. 의식의 변화를 더욱 직접적으로 말해 주는 이야기는 제6편「大宗師」에 나오는 공자와 안회의 대화다. 의식의 변화를 얻어 도에 깊이 이르는 길은 우선 인의나 예악 같은 主知主義나 괲理至上主義같은 의식 구조를 잊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의식의 변화는 사회 참여 내지 정치 참여에도 관련이 있다. 장자가 사회나 정치에 상관없이 현실 도피나 은둔주의의 삶을 살 것을 강요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무조건 사회를 등지라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가 있기 전에 사회를 위해 일한다고 설치지 말라는 것이다. 옛날의 내가 죽고 새로운 내가 태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의식의 변화가 이뤄져 이런 마음가짐이 갖춰진 사람이라야 사회를 위해 일을 하더라도 진정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心齋가 이를 말해준다.

죽음마저도 이렇게‘의식의 변화’가 있게 되면 죽음과 삶마저도 초월하게 된다. 장자 스스로 자기 부인이 죽었을 때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 것과 같다.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죽음을 극복한 셈이다. 죽음과 삶이 문제 되지 않는 절대 자유의 경지다. 이런 安命의 태도는 철학자 니체가 말하는‘아모르파티(amor fati, 숙명을 사랑함)’를 연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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