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21:15 (금)
방울과 칼
방울과 칼
  • 석희태 편집인·경기대 명예교수
  • 승인 2015.04.20 11: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정론] 석희태 편집인·경기대 명예교수

▲ 석희태 편집인
대학교수의 사회 위상이 낮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80.2%). ‘지식인은 죽었다’‘대학은 죽었다’는 비판에 동의한다(70.3%). 다시 직업을 선택해도 대학교수가 되겠다(74.9%).

이달 초 우리 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교수들의 응답이다. 부정적 평가와 긍정적 평가가 공히 놀라운 수준이다. 몹시 암울하지만 그래도 교수직 자체가 외면당하지 않을 것이란 희망을 갖게 해 준다. 다행한 것이 또 있다. 교수 신분에 불안을 느낀 이유로‘연구 부담’을 든 응답이 10.9%에 그친 점이다.

교수 위상의 제고와 대학·지식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개선방책은 그동안 많이 연구되고 논의돼 왔다. 매우 원론적인 담론이지만 우리는 먼저 교수 자신의 내재적 요소에 대해서 솔직하고도 냉엄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교수의 교수다움’에 관한 것인데, 대개 교수·지식인의 덕목이라고 거론되는 도덕성·전문성·비판성·실천성·자율성에 대한 자가평가를 내용으로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덕목들의 외연 즉, 작용방향이 모호하거나 광범하고 게다가 흔히 덕목 간의 우선순위가 논의되는데, 그로 인해 대학과 사회 일반에서 교수의 직분과 그 수행평가 규준에 대한 인식혼란이 야기돼 왔다는 것이다. 예컨대‘도덕성’의 경우 그것은 사회생활과 사생활 전반에서의 요구인가 아니면 교수의 고유직분인 교육·연구·봉사 영역에서만의 요구인가, 그리고 그것은 전문성에 우선하는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교수로서 모든 덕목을 갖춘 전인이 될 수 있는가. 청렴고상하고 사회부조리에 통렬한 비판을 가함에는 부족함이 없으나 연구는 부실한 교수라면 그는 교수다운가.

우리의 방책으로서 가장 급하고 실천가능한 것은 전문성의 수호라고 할 것이다. 연구와 교육의 부실은 어떤 요소로도 대체전보가 되지 않으며, 그 충실성이야말로 다른 덕목의 토대가 돼준다고 본다. 청년학생에 대한 敎學을 전업으로 하는 교수의 교학직분을 더욱 치열하게 직시하고 돈독하게 실행해가면 대학과 교수의 위상은 자연 회복될 것으로 믿는다.

물론 교수직분의 구체적 내용 인식도 차제에 정리할 필요가 있다. 대학 밖에서 이뤄지는 봉사라는 이름의 참여활동 실적으로 교학직분을, 우수한 강의 업적으로 연구를 각각 대신한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연구는 분량이 아니라 창의적 품질에 의해 평가돼야한다.

20세기 초 세계대전 패망의 혼란기에 전문가보다는 전인, 교사보다는 지도자를 요망하는 독일 대학사회를 향해 막스 베버는‘직업으로서의 학문’특강에서 놀랍게도 이 점을 힘주어 지적했다. 즉 그는 학자는 전문에 몰두해야 하고 교육자는 지도자를 지향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학문상의 과업완성은 오직 자기 전문분야에 몰입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정열·열중 이런 것이 없는 사람은 학문을 직업으로 삼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은 학문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을 하라!”고 설파했다.

오늘날 한국의 교수는 학문적 창의에서 대학경영 영업직에 이르기까지, 로컬에서 글로벌까지 전천후 멀티플레이어가 될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리고 미래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제정신을 차려 전문인 교학에만 몰두하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뜻을 바르게 하고 심신을 가다듬어 직분을 고수함에 일관하고 서로 위로해야 할 일이다.

16세기 조선 조정과 학계를‘경의사상’으로 훈도한 남명 조식 선생은 삼감과 바름의 상징으로서, 나아가 그 정신과 언행의 파수꾼으로서‘惺惺子’라는 방울과‘敬義劍’이라 불리는 칼을 항시 소지하고 있었다고 전해온다. 오늘 우리 후학들도 직분각성과 용기충전을 위해 방울과 칼 하나씩을 마음속에 품고 있어야 하겠다

석희태 편집인·경기대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