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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리뷰 제고 등 2016년 겨냥해 ‘획기적 변화’ 준비
“블라인드 리뷰 제고 등 2016년 겨냥해 ‘획기적 변화’ 준비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4.1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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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인터뷰 _ 정민근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에게 듣는다

■ 대담: 이덕환 교수신문 논설위원
■ 일시: 2015년 3월 26일 오후 4시
■ 장소: 한국연구재단 서울청사
■ 사진·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지난달 26일 오후 4시 한국연구재단 서울청사에서 정민근 한국연구재단 이사장(64세)을 만났다. <교수신문> 창간23주년 특집대담 인터뷰를 위해서였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대담 인터뷰에서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는 이덕환 <교수신문> 논설위원(서강대·화학)은 시종일관 학계가 가려워하는 부분을 지적했고, 정민근 이사장은 꼼꼼히 경청하면서 소신 있는 대답을 내놨다.
지난해 1월 취임한 정 이사장은 2016년을 겨냥해 ‘획기적인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올해는 평가에 대해 일단 리더연구자지원사업과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E/SRC) 등 8억~10억 원의 대규모 사업에 대한 2단계 평가의 심층토론평가만이라도 최고로 권위 있는 우수한 실적을 낸 분들로 책임있게 평가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창의적 연구를 위해 논문중심에서 탈피, 현장중심 연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조경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연구가 되려면 창의적인 연구가 돼야 한다. 즉,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이 나올 수 있는 연구지원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논문중심에서 탈피하고 현장중심, 창의적 연구에 도전해야 한다.” 또한 인문학에도 특유의 친화력을 보이고 있는 정 이사장은 인문학에 대해 과학기술과 융합해서 창조경제에 도움이 되는 ‘융합연구’로의 전환을 주문하기도 했다. “인문학의 융합연구화에 대해서는 교육부가 아닌 미래부가 지원해야 한다. 그 가운데 인문사회계열 연구자들이 같이 할 수 있는 예산을 많이 확보하고자 한다. 미래부도 공감을 많이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퇴임 연구자 활용 학문간 명예 걸 수 있는 평가문화 모색”

▲ 정민근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서울대를 졸업한 뒤 미국 미시간대에서 산업공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일리노이대 산업공학과 조교수를 지냈으며 이후 포스텍 전자계산소장, 포스텍 산업공학과 주임교수, 교무처장, 한국학술진흥재단 기초과학지원단장, 대한산업공학회 회장,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주임교수, 포스텍 기술경영대학원 주임교수, 포스텍 공학장,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산업경영공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어느 시스템이나 한쪽으로 치우치면 문제가 생기는데 객관성과 공정성을 중시하다 보니 전문성이 훼손됐다. 제일 좋은 예가 BK21사업이다. 리더연구자지원사업이나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E/SRC)도 그랬다. ‘공정’하게 평가했는데 평가 ‘전문성’에서 오히려 문제가 된 것이다. 많은 지적이 쏟아졌다. 이런 부분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난해 내내 준비를 했다.

▲연구재단이 학술진흥재단과 합쳐져 거대해졌다. 책임이 무거운데 1년 넘어 변화도 있었을 것이고, 학교에 계시면서 보던 연구재단과 실제 1년 동안 경험한 연구재단과 차이가 많이 있을 것 같다. 소감은?
“10년 전 2005년부터 1년 반 동안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비슷한 일을 했다. 크게 새롭진 않다. 다만 말씀하신대로 과학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까지 다 총괄하다보니 업무가 많이 확장됐고, 특히 국책연구본부의 원자력, 항공우주, 원천기술은 크게 알고 있지 못했던 부분이다. 전에는 기초연구분야만 했으니까. 대개 연구소 관련 사업이라 생각했는데 그것까지 관장하다보니 범위가 넓고, 교육부도 여러 사업이 늘었다. 작년엔 대학특성화 및 특성화전문대학 육성사업까지 대교협에서 넘어왔다. 상당히 범위가 넓어졌다.”

▲연구재단에서 관리하는 예산이?
“4조2천억원 규모다. 연구재단 이사장에 부임할 당시 인터뷰할 때 예산이 3조 4천억원이었는데 그 사이에 또 8천억원이 늘었다.”

▲ 현재 연구재단은 미래부 예산도 교육부 예산도 쓰고 있다.
“4조2천억 중 교육부가 1조7천억 정도, 미래부가 2조3천억 정도다.”

▲ 학술진흥재단이 없어지고 연구재단이 된 것, 이질적인 집단, 크게 나눠 공학부문·기초과학부문·인문사회계열까지 합쳐져 관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짐작한다. 우리 사회는 조급증이 있다. 빨리 시스템 완비되고 이런 걸 기대했던 것 같은데, 오세정 이사장도 바꿔보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이승종 이사장도 비슷한 포부를 밝혔다. 이사장께서는 연구재단이 제 궤도에 올라섰다고 보시는가?
“좋은 지적이다. 이사장 부임 준비하면서 자료 받아보고 놀란 것 중 하나가 덩치 큰 두 곳이 통합했다는 것이다. 학술진흥재단과 과학재단, 미션도 다르고 이질적인 두 곳이 하나가 됐다. 두 곳이 잘 믹스돼 특성에 맞게 새롭게 재탄생되는 그런 과정이 4~5년 사이에 이뤄졌다. 깜짝 놀란 것은 내가 올 때까지 4년 반 정도 짧은 시간에 세 분의 이사장이 자리를 거쳐 가셨다는 점이다. 이 분들의 재직기간이 짧고, 뭔가 일을 다져나가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러다보니 화학적인 화합을 이루기엔 시간이 충분치 못했다. 나는 나름대로 우리가 합쳐졌으면 바뀌어야만 할 부분에 역점을 두고 준비를 했다. 아시다시피 내가 부임한 시점이 하필 1월 초다. 2014년이란 기간은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었다. 그동안 우리가 준비한 내용으로 2015년에 예산은 손댈 수 없고 다만 사업내용 중 몇 가지를 운영방법론적인 면에서 조금, 그리고 2016년을 겨냥해서 획기적인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10년 전 2005년부터 1년 반 동안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비슷한 일을 했다. 크게 새롭진 않다. 다만 말씀하신대로 과학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까지 다 총괄하다보니 업무가 많이 확장됐고, 특히 국책연구본부의 원자력, 항공우주, 원천기술은 크게 알고 있지 못했던 부분이다. 전에는 기초연구분야만 했으니까. 대개 연구소 관련 사업이라 생각했는데 그것까지 관장하다보니 범위가 넓고, 교육부도 여러 사업이 늘었다. 작년엔 대학특성화 및 특성화전문대학 육성사업까지 대교협에서 넘어왔다. 상당히 범위가 넓어졌다.” “4조2천억원 규모다. 연구재단 이사장에 부임할 당시 인터뷰할 때 예산이 3조 4천억원이었는데 그 사이에 또 8천억원이 늘었다.” “4조2천억 중 교육부가 1조7천억 정도, 미래부가 2조3천억 정도다.” “좋은 지적이다. 이사장 부임 준비하면서 자료 받아보고 놀란 것 중 하나가 덩치 큰 두 곳이 통합했다는 것이다. 학술진흥재단과 과학재단, 미션도 다르고 이질적인 두 곳이 하나가 됐다. 두 곳이 잘 믹스돼 특성에 맞게 새롭게 재탄생되는 그런 과정이 4~5년 사이에 이뤄졌다. 깜짝 놀란 것은 내가 올 때까지 4년 반 정도 짧은 시간에 세 분의 이사장이 자리를 거쳐 가셨다는 점이다. 이 분들의 재직기간이 짧고, 뭔가 일을 다져나가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러다보니 화학적인 화합을 이루기엔 시간이 충분치 못했다. 나는 나름대로 우리가 합쳐졌으면 바뀌어야만 할 부분에 역점을 두고 준비를 했다. 아시다시피 내가 부임한 시점이 하필 1월 초다. 2014년이란 기간은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었다. 그동안 우리가 준비한 내용으로 2015년에 예산은 손댈 수 없고 다만 사업내용 중 몇 가지를 운영방법론적인 면에서 조금, 그리고 2016년을 겨냥해서 획기적인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학문후속세대 양성하는 제도적 지원 계속 이뤄지도록 신경쓸 것”

▲ 이덕환 교수신문 논설위원 미국 코넬대에서 박사를 했으며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 등 다수가 있다.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으로 있다.

연구자들은 이념, 사상 등에서 자유로워야 하는데 정부예산으로 틀을 만들어 놓으면 자칫 옥죄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연구자들에게 모든 걸 맡기면서 지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정부돈이 들어가지만 정부의 입김이 차단되는, 연구자율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지원제도가 필요하다.

▲ 밖에서 연구재단을 볼 적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이 방금 말씀하신 이사장이 자주 교체됐다는 점이다. 이사장의 잦은 교체에서 모든 것의 핑계를 찾을 순 없지만 연구재단이 탄생하는 과정에서부터 지켜봐오면서 우리사회가 참 단절이 많구나, 아름답지 못한 형편이라고 느꼈다. 특히 연구계도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문사회 내부도 학문적 특성이나, 분위기, 문화도 많이 다르다. 과학기술계도 기초과학 분야와 공학 분야 등 사분오열돼 있는 상태다. 그런 이질적인 학술진흥재단과 과학재단이 결합했다. 그런데 바로 이 ‘문화적·학문적 이질성’에 대한 고민을 하는 집단이나 이런 것을 보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재단은 기관으로서의 화합도 중요하다. 특히 연구지원사업에서 그런 화합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다. 내가 말한 화학적 화합이란 게 그런 화합을 포함한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 과거 학술진흥재단에서 연구를 지원했을 때, 6천억 예산중에 2천억 정도를 인문사회, 4천억 정도를 과학기술에 배정했다. 과학재단은 과학기술계를 지원했다. 이런 골격이 그대로 연구재단 체제로 이어졌다. 인문사회만 본부로 떼어서 가고, 기초과학은 학술진흥재단과 과학재단에 있던 걸 합쳐서 학문단위로 구성했다. 그런데 예를 들면 의약학 분야는 과거 학술진흥재단에서만 지원받았었는데, (출범 당시) 연구재단에서 기초본부에 7개 학문단을 구성하면서 문제는 의약학 분야를 염두에 두지 않고 각종 지원 프로그램, 사업비 등을 균등하게 나누게 돼서 엄밀히 말하면 생명과학분야가 좀 손해보고 의약학 분야가 이쪽을 일부 차지하고 간 것이다.

생명과학계에서 불평을 많이 듣는다. 그런 것들을 잘 들여다보면서 정리할건 하고,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현재는 자연과학, 생명과학, 의약학, 공학, 요즘엔 융합이라 해 ICT?융합분야가 따로 학문단으로 돼있는데, 학문분야, 학문단위별 여러 여건이 다르다. 사업도 그 여건에 맞게 다르게 가야 하는데, 지금은 사업이 횡적으로 있으면 똑같이 종적으로 나눠가지는 형국이니까 문제가 많다. 학문분야별로 블록펀딩이 돼서 사업별로는 자유롭게 오고가고 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기재부, 국회의원들의 협조와 이해가 필요하다.”


▲ 연구재단의 핵심은 평가일 것이다. 연구지원하기 시작한지 30년 넘었는데 끊임없이 ‘평가 이렇게 하자’ 이야기만 무성했고, 과기부나 혁신본부시절도 그렇고 연구재단도 마찬가지로 여기저기서 평가를 공정하게 하겠다는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주관적인 평가, 정성적인 평가 등 말만 무성했지 사실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다. 30년이 흘렀지만 기본틀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안 바뀌었다. 이사장님은 어떤 복안을 갖고 계신지 궁금하다.
“작년에 부임하고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몇몇 언론사에서 소회도 묻고 하는 가운데 두 가지를 얘기했다. 창조경제에 도움을 주기 위한 연구가 되기 위해선 창의적인 연구가 돼야 한다. 즉,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이 나올 수 있는 연구지원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논문중심에서 탈피하고 현장중심, 창의적 연구에 도전해야 한다.
그 다음 평가와 관련해서 말했다. 사람마다 말도 많고 생각도 다르다. 과학재단이 1990년대 말까지는 전문가 중심의 평가를 했다. 해당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책임감 있는 원로들을 위원으로 모셨다. 예컨대 기계·소재·화공 분야 등에 연심위원을 한분씩 선정해 그분의 책임 하에 주관적 평가를 진행했다. 그게 오래 가다보니 그분의 성향에 따라 진행되는 문제가 나타났다. 그런 폐단이 많아져 공정성, 객관성이 중시됐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블라인드 평가, 누가 평가자인지 추천하는 사람도 알 수 없도록 하는 객관적 평가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상피제도’도 지난 15년간 정착돼 왔다.

어느 시스템이나 한쪽으로 치우치면 문제가 생기는데 객관성과 공정성을 중시하다 보니 전문성이 훼손됐다. 제일 좋은 예가 BK21사업이다. 이른바 좋은 대학원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많게는 분야당 7~8개, 적게는 5개 정도씩 뽑자고 했다. 그럼 거의 200개 대학에서 상위 10개 대학을 추려내기 위한 것이니까 상위권 대학이 다 신청한다. 그 사람들을 상피제도로 배제하고 나니 평가하는 사람들 수준이 신청하는 사람들보다 못한 형국이 일어났다. 그런 것이 리더연구자지원사업이나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E/SRC)에서도 똑같이 발생했다. ‘공정’하게 평가했는데 평가 ‘전문성’에서 오히려 문제가 된 것이다. 많은 지적이 쏟아졌다. 이런 부분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작년 내내 여러 준비를 했다. 올해는 평가에 대해 일단 리더연구자지원사업과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E/SRC) 등 8억~10억 원의 대규모 사업에 대한 2단계 평가의 심층 토론평가만이라도 최고로 권위 있는 우수한 실적을 낸 분들로 책임 있게 평가하고자 한다.”

▲ 객관성을 강조하다보니 전문성 훼손됐다? 다른 시각도 있다. 평가는 기본적으로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이사장님의 말씀에 동의는 한다. 특히 현실적인 면에서 문제가 드러났던 것을 알고 있지만 뒤로 물러서서 보면 평가시스템, 평가제도, 평가방향에서 연구자 스스로가 신뢰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BK21사업, 리더연구자지원사업과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E/SRC) 등을 하면서 덩어리가 커지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과열 됐다. 오히려 처음부터 없었던 신뢰관계가 더 훼손되고 더 망가졌다. 정말 어떤 면에서 보면 복구가 가능할 건가 회의적이다.
“시스템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사람의 문제다. 모든 일에는 사람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우리는 SCI급 국제학술지에 논문이 오르거나, 그 논문 등을 심사하는 위치에 올랐다고 하면 누구나 영예롭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내 논문을 평가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평가위원들의 명단은 공개된다. 신뢰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연구과제 평가는 왜 그렇게 안 되는지, 제대로 된 평가문화를 정착해야 한다. 그런 문화를 만들려면 책임과 권한을 동반하는 사람으로 평가를 진행해야 한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최근 학계에서 퇴임하신 분들 가운데는 아주 훌륭한 분들이 많다. 또 퇴직 3~5년 앞둔 분들은 연구비를 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 분들 가운데 신망 있는 분들을 모시려고 한다. 자기와 친하다고 해서 봐주려고 한다거나 하는 일 등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분들로 운영하면서, 만약 그런 일이 발견됐을 때 그 분야 전체가 한 분에 의해 학문적 명예가 손상돼 동료들 간에 사회적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상당히 성숙된 방향으로 가야 한다. 조금씩 적용해 보자.”

▲ 평가문화라고 하니까 반갑다. 그 전에 과학재단에서 평가문제가 생길 때마다 행정절차가 아니라 평가문화로서의 ‘평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초연구본부장과 실무를 맡고 있는 분에게 강조하는 게 전 분야를 한꺼번에 적용하려고 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준비된 데부터 실행하자. 잘 운영하고 잘해나가는 분야에 예산할당을 더 하자. 안 되는 분야는 예산을 줄이자. 이렇게 말이다. 당근과 채찍이 있어야 한다. 평가문화를 정착해 가려면 예를 들어 자연과학분야의 수리, 물리, 화학 등 같은 학문분야에서는 서로 다 알 것 아닌가. 그 안에서 유지될 수 있는, 명예를 지켜갈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 조금 우려스러운 부분은 우리가 경쟁이란 말에 알게 모르게 익숙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평가문화를 만들기 위해 경쟁을 시도하겠다는 말씀 같은데, 좀 과격하게 제안을 드리자면 경쟁 안하고도 좋은 연구가 정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줬으면 한다. 분야별로 경쟁하는 게 상당히 피로감을 느낀다.
“경쟁은 이해하기 나름이다. 이 때 경쟁은 선의의 경쟁을 말한다. 그것 때문에 자기 몫이 더 많아지고 적어지는 얘기가 아니다. 그 학문 분야의 명예를 걸고 한다는 의미이다.”

▲ 우리 연구자들 사이에서 여러 이유로 권위와 명예란 말이 사라져버렸다. 그동안 잘하는 사람을 인정해주면 스타 과학자, 스타 학자 생길 거라고 기대해왔지만 결과적으론 한 명도 배출해내지 못했다. 권위라는 게 외형적으로, 형식적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경험했기에 스스로를 존중하고 서로 인정해주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줬으면 한다.
“자연과학이나 생명과학, 공학 등 메이저분야에 대해선 크게 걱정은 안한다.”

▲ 학자로서 성과는 논문과 저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숫자로 바뀌었다. 성과 계량화가 심각하다. 이공계 연구자들은 비교적 오랫동안 경험해 왔으니까 알게 모르게 익숙해졌다. 새로 들어온 인문사회계 연구자들은 낯설어한다. 저서를 단독이냐 공동이냐, 성과 인정 100%냐 200%냐에 당혹스러워한다. 논문과 저서가 어떻게 숫자화 될 수 있나? 이런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연구 성과와 동료들의 연구 성과를 서로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중요한 이슈다. 사실은 지금 BK21의 순기능은 연구자들이 연구중심으로 논문을 많이 쓰도록 하고 공부 열심히 하도록 한 것이다. 양적인 성과도 많이 나오고 SCI논문수도 세계 10위권 안에 든다. 반면 역기능도 많다. 심지어 젊은 교수들 중에는 예전 같으면 1편의 양인데 2~3편으로 쪼개서 낸다고 한다. 연구재단 과제 선정평가에서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일반적인 개인연구 평가에서 논문 개수가 평가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중견연구자지원사업(핵심연구)의 경우, 지난 5년간 SCI논문 2편 이상 썼는지 자격만 확인한다.”

 


▲ 인문사회계열 연구자들은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인문사회계열은 논문도 논문이지만 저술을 성과로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요즘엔 예술체육분야의 경우 작품, 공연 등을 인정하며 많이 다양화되고 있다. 결국 질적인 평가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다. 지금 같은 방식보다는 탄력적인 평가가 돼야 하고 그것이 정착되려면 장기적으로 블라인드 리뷰부터 없어져야 한다. 연구를 하겠다고 신청한 연구자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하느냐가 제일 중요한데, 그걸 가리고 제안서 내용만 보고 평가한다는 건 재고해야 한다.”

▲ 질적인 평가를 정착시키는 방법으로 연구자들이 내놓은 성과들을 제대로 된 성과물로 인정해주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평가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나타난 현상 중에 하나가 국내 학술지, 특히 한글로 쓴 학술지, 우리말로 쓴 저술이 폄하되는 것이다.
“BK21플러스 2단계로 가면서 인문사회 분야의 경우에는 국내저널을 인정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연구재단 등재학술지에 대해서도 퀄리티를 높여가고 있다. 특히 인문학분야의 경우 국내 학술지도 우수 학술지의 경우 국제학술지와 동등하게 인정하는 등 변화가 있다.”

▲ 한동안 이공계가 위기라고 하다가 요즘은 인문학 위기라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에 인문사회 출신 학생들 취업에도 문제가 생겼다. 취업 문제 해소와 인문학 위기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 어느 정도 깊이 관여돼 있나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다. 정말 우리 사회의 인문학 위기의 본질이 무엇이냐 고민이 없는 것 아니냐, 겉으로 드러난 알맹이 없는 속 빈 인문학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그렇더라도 4조가 넘는 예산 중 인문학 관련 예산은 너무 적은 것 아닌가. 그동안 연구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신 분들 전부 이공계출신이라서 인문사회계열이 보기엔 더 불편할 것이다.
“다행히 산업공학을 해서 조금 인문사회에 가까운 편이다. 산업공학은 경영학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고 특히 인간공학이 전공이라서 심리학자와의 공동연구도 많이 해봤다. 이점에서 나도 인문사회 분야에 관심이 많다. 인문사회 관련된 예산을 늘리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그런 노력을 많이 했다. 교육부에서 연구비 예산을 늘리긴 어렵다는 게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교육부는 챙겨야 할 다른 현안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미래부다. 이번 정부에서 창조경제를 강조하고 있는데, 작년에 부임하면서부터 주장한 게 ‘창조경제의 핵심은 인문학이다’ 라는 것이다. 물건 팔고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은 인문학과 관련된다. 제품의 기능개발에는 과학기술이 활용되지만 상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물건을 갖고 싶도록 하는 과정에서도 사람과 관련되므로, 인간을 이해하는 인문학이 중요하다. 어느 나라에 상품을 팔려면 그 나라의 정치, 사회와 문화를 알아야 하지 않나. 인문학이 과학기술과 융합해서 창조경제에 도움이 되는 형태, 즉 융합연구를 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교육부가 아닌 미래부가 지원해야 한다. 그 가운데 인문사회계열 연구자들이 같이 할 수 있는 예산을 많이 확보하고자 한다. 미래부도 공감을 많이 하고 있다.”

▲ 우리 사회에서 고민을 전혀 안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미국의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도 인문사회과학을 부분적으로 한다. 연구재단을 만들 때도 미국 NSF도 사회과학을 한다고 했는데 사실은 NSF에서 지원하는 사회과학은 과학기술과 직접 관계가 있는 데 한정된 것이다. 진짜 인문학, 사람의 생각, 정체성을 고민하는 핵심 인문학 분야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정부가 지원하는 게 옳으냐는 의견도 있다. 연구자들은 이념, 사상 등이 자유로워야 하는 분야인데 정부의 예산으로 틀을 만들어놓으면 잘못하면 옥죄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실제 그런 역사도 있다. 연구자들에게 모든 걸 맡기면서 지원해줄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은 민간지원이 활발하지만 우리는 그런 여건이 안 돼 있어 어쩔 수 없이 정부예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부 돈이 들어가면서 특정분야에 대해선 정부의 입김이 차단될 수 있는, 연구자의 자유를 보장해줄 수 있는 지원제도가 필요하지 않겠나.
“현재 연구재단 지원 사업은 상당히 자유로운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그런 이슈보다는 제가 요즘 인문학을 바라보면서 생각하는 것 하나가 있다. 현재 인문학 관련 교수는, 인문사회 통틀어 3만4천명쯤 된다. 그중 인문학이 7~8천명이라고 한다. 학생 정원 대비 인문학 전공자의 수는 얼마나 될까. 그중 대학원 석?박사 과정의 학생은 얼마나 되며, 현재 학문후속세대로서 박사까지 했는데 포스트닥 형태로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인원 등은 또 어느 정도인지 통계조사 중이다. 문학·사학·철학 등 인문학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학문적으로 탐구하고 연구하는 분들은 어느 규모인지, 또 이러한 학문을 유지하고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연구자는 얼마인지 통계가 필요하다. 얼마만큼의 후속세대가 있어야 하는지, 관련 분야의 교수들이 퇴임 후 얼마나 채워지고 있는지 등을 들여다봐야 한다. ‘순수 학문’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 인원을 유지하고, 나머지 인문학을 하신 분들이 인문학을 실생활에 접목시키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 예를 들면 러시아어를 전공했다고 하면, 약 30%는 러시아어(문학)를 연구하고, 70%는 러시아에 한국 상품을 팔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부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러시아어 하는 사람은 일부 필요할지 몰라도 특정 상품을 러시아에 팔기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력은 많지 않다. 그런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


▲ 사회에서 인문학 전공자를 ‘실제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인가.
“상당부분은 실용적인 부분으로 이끌어야 한다. 인문학 진흥 종합 심포지엄에서도 그런 주장이 있었다. 융합을 위해 인문학 전공자들이 이제는 복수전공도 한다.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이 구조조정하면서 제일 먼저 인문학을 통폐합하니까 죽게 생겼다고 말하는데, 국가 전체적인 측면에서 인문학의 중흥과 지속을 위해 유지해야 하는 범위를 정해놓고 지원해야 한다. 그 이외에는 인문학을 이공계 학생을 포함한 모든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서비스하는 쪽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취업도 인문학을 중흥시켜줄 것이라고 본다.”

▲ 그건 비단 인문학에만 한정돼 있는 건 아니잖나.
“그렇다. 수학, 물리, 화학도 마찬가지이다.”

▲ 전국 200여개 4년제 대학 중 물리학과와 화학과가 40개 정도 남아 있다고 한다. 나머지는 수식어를 붙여 학과명을 바꿨다. 학과명을 바꾸면 원래 추구하는 방향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것을 걱정하는 사람도 꽤 많다.
“개인적으로는 물리, 화학 등 기초학문을 대표하는 학과명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관련 학문 분야에 있는 분들이 결정할 문제이다.”

▲ 자정작업, 피드백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것들이 작동해서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면 바람직할 것이다.
“200개 대학 중 40개 학과가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는 너무 학과 정원수가 정해져 있어 문제다. 예컨대 화학과가 50개로 30명씩이면 1천500명인데, 학과수가 문제가 아니라, 과연 화학과에 2천명이 필요하냐, 3천명이 필요하냐 그것이 중요하다. 그 필요는 교수들이 정할 게 아니라 수요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 인문학이나 자연과학 등 핵심기초학문분야가 축소되고 있는 게 이사장 말씀처럼 사회적 여건들이 어울러져 피드백되고 자정적인 기능을 하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한 상황 아닌가. 올해부터 교육부가 대학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면서 대학에서는 상당히 긴장감이 감돈다. 연구재단에서 그런 쪽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나도 교육부 관계를 만나서 개인적인 생각도 전달하고 하지만, 정부의 고충 등 상황을 듣다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문제는 산업과 사회구조의 지속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대학의 입학 정원의 유연성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고, 더 큰 문제는 학령인구 감소 등 대학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자율적 개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안타까운 부분이다. 환경 변화에 따른 사회적 요구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대학도 어느 정도 이해하리라 본다. 대학 현장에서는 지원금만 주면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라고 하지만 대학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행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구조조정과 관련된 대학 재정지원사업을 재단이 담당한지 이제 1년 정도 되는데, 향후 대학 현장의 목소리를 계속적으로 듣고 의견을 수렴해 교육부와 개선 방향 협의시 상생할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 또한 우리 재단은 대학 학부 수준에서 기초학문분야 정원이 줄더라도 대학부설연구소 등에 대한 지원은 계속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학문후속세대 양성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계속 이뤄지도록 신경 쓸 것이다.”

▲ 일방적이고 현실과 매치가 안 되는 구조조정을 강요당하는 게 문제다.
“재단에서 수행하는 재정지원 사업은 구조조정이라기보다는 대학이 강점분야 위주로 인적?물적 자원을 집중하라는 방향이다. 전반적으로 대학 스스로 계획을 수립하고 자신 있는 분야, 다른 대학과 비교해서 강점이 있다고 판단한 분야 위주로 집중하라는 의미가 아니겠나? 그런 후에 정원이 채워지고 안 채워지는 것은 시장원리에 그 대학 하기나름이다. 그런데 그것이 일방적으로 정원 감축하고 구조조정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 인문학 문제로 다시 돌아가겠다. 이사장께선 인문학의 응용분야를 확대하자고 제안하셨는데.
“앞서 말했듯이, 문학, 사학, 철학의 학문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학문탐구를 위한 연구자와 실용적인 인문학으로 키워나갈 연구자를 2분화해 역할분담이 돼야 한다. 기업에서는 인문학 전공자들이 필요하다. 물건 팔려고 하는데 대학에서 배출된 인원은 써먹을 만한 내용을 배우지 못했다. 다만, 우리나라의 인문학적 기초체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작은 학문분야만 생각해서 지원할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큰 그림을 그려야 하고, 교육과정 속에서 순수 인문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학문후속세대로서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지원 방안이 수립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인문학 위기와 관련, 연구재단에서도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해 왔다. 인문학 지원, 문화융성사업 등 다양한 사업이 있다. 그런데 외양은 화려하지만 알맹이는 없고 거품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인문석학강좌를 예로 들면 작년에 서초구청으로 강좌 장소를 옮겼다. 강단도 크고 넓어 인원도 늘었다. 참여 시민 30%가 늘었다고 해서 몇 번 갔다 왔다. 인원은 늘었지만 토요일에 듣고 있는 95%가 고령자분들이었다. 나이 든 분을 위한 교양강좌가 필요하긴 하지만, 시민강좌가 이분들만의 잔치로 끝나서는 곤란하지 않겠나. 2015년 시민강좌는 좀 더 젊은 층들에게 다가가라고 주문했다. 인문학 전파를 과학기술계·이공계 사람에게 들려주는 쪽으로 하라고 말했다. 그런 쪽을 증진시켜 실질적인 인문학과 과학의 만남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 인문학의 사회적 활용을 적극적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한 사업은 무엇이 있나.
“인문학대중화사업으로 인문브릿지, 디지털인문학 등이 있고, HK사업은 예산의 3% 이상을 사회적 확산을 위한 강좌 또는 체험활동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융복합 단위로, 주로 예술체육분야지만 거기서 주관하는 사업이 인문학과 과학기술을 같이 해야 지원해 주는 사업도 있다.”

▲ 말씀하신 사업에는 저도 관련이 있다. 유쾌하지 않은 경우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문사회 과학기술 융합 연구지원 사업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하고 교과부 생기고 그 사업꼭지를 만들었다. 그걸 시작하는 시점에 연구재단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 사업을 기획하는 입장에 있었다. 연구재단이 생기면서 어느 본부에 갖고 갈 것인지 선택하는 시점이 있었다. 너무 순진했다. 많은 분들이 기초과학분야로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인문사회로 가져갔다. 많은 사람들이 왜 이공계 사람이 인문사회 본부에 와서 연구사업을 하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결국 2~3년하고 그만뒀다. 이름이 바뀌고 규모가 커지고 처음엔 책임자를 과학기술이나 인문에서나 아무나 할 수 있었는데 2~3년 후엔 바뀌었다. 융합을 이야기하기 시작한지가 벌써 10여년이 넘었다. 융합 이야기 들을 때마다 불편하다. 칸막이가 확실히 존재한다. 전문가로서 지녀야 할 학문적 전문성을 보완해주는 것을 융합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고등학생부터 문·이과로 나눈다. 문과니까 과학기술을 몰라도 된다는 식으로 이렇게 교육받는다. 그걸 무너뜨리기가 쉽지 않다. 인문학·문화융성사업이 거품이 많다고 했는데, 융합도 알맹이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건 이런 경험적 배경에서다. 10여 년 동안 융합해왔지만 실질적인 융합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융합연구는 좀 실질적으로 문과·이과의 벽, 학문분야 간의 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좋은 지적이다. 작년엔 기초연구본부와 인문사회연구본부 쪽을 파악하느라 시간을 많이 썼다. 올해는 국제연구본부와 학술진흥본부를 챙기는 편인데 문화융복합 부분도 더 챙겨보겠다.”

▲ 과학기술부문 안에서도 기초연구, 응용분야 간에 굉장히 벽이 많다. 그것을 좀 확실하게 깰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연구현장, 특히 이공계 젊은 연구자들의 불만이 많다. 전체 규모에 비해 연구사업의 규모가 큰 거 아니냐. 상대적으로 상당히 많은 사람이 시스템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특히 기초과학연구원이 생기고 우주항공, 거대과학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그런 불평이 증폭되고 있다. 순화가 안 되면 위험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어떤 대안이 있나.
“기초연구와 선도연구센터(SRC, ERC, MRC) 등 집단연구는 지금의 형태와 배분이 적당한다고 본다. 다만 지적하신대로 그런 얘기들이 부각됐던 원인은 기초과학연구원(IBS) 때문에 그렇다. 새로 오신 김두철 원장과 의견을 많이 나누고 있다. 사업단이 100억씩 가져가면 그 100억이 나눠지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많은데 과정을 오픈하고, 그 중 얼마는 풀어줘라, IBS의 과제도 일부는 개인연구들이 들어가서 할 수 있게 풀어줘라, 그런 것을 논의하려고 한다. 국책연구 중에서도 ‘바텀업 방식’으로 개별 연구자들이 뭔가 하고 싶어서 들어올 수 있도록 문호 개방을 생각하고 있다. 개인연구자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참여정부 말기에 기초과학 중 풀뿌리연구를 두껍게 해달라고 해서 상당히 진행되다가 결국 흐지부지됐다.
“그렇지 않다. 풀뿌리연구에 전체적인 지원, 금액은 거의 같다. 이공계 인력만 보면 이공계 교수가 4만명쯤 된다. 지난 3년 통계를 보니 그중 매해 수혜를 받는 교수가 1만명 안팎이다. 신청한 분 대비 선정율이 34~37%로 꽤 높은 편이다. 물론 사업에 따라 어떤 것은 9%밖에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논문, 논문 하니까 많은 교수들이 대학 내부에서 논문 안 쓰면 안 되는 압박감이 있다. 자꾸 연구과제가 필요한 것이다. 일단 그 부분부터 바뀌어서 많은 분들이 꼭 연구비 신청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실용교육이 강조되는 환경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내가 개선하고 싶은 부분은 신진교수의 경우, 지원받은 사람이 3년 연구수행하고, 또 새로운 주제를 내야 그 다음을 지원 받을 수 있다. 비슷한 주제를 내면 중복됐다고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이런 제도는 많이 잘못됐다. 왜 토픽을 바꿔야 하나. 연구비 한 번도 받지 않은 교수보다 한번 받고는 계속 못 받는 분들의 불만이 더 크다. 현재는 후속과제지원을 20% 범위 안에서 하고 있다. 연구를 진행하던 교수 중 20%밖에 후속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더 늘여가겠다. 후속과제 점검할 때 기본적으로 약속한 부분을 했는지 체크하고, 연구내용이 정말 후속작업에서 더 진전될 것이 있는지, 성과가 나올만한 것이 있는지만 체크하면 된다. 엿가락처럼 늘려서 지원 받으려는 연구는 중단시키고, 지원해서 뭔가 나올 수 있는 연구라면 계속 지원해야 한다. 한우물 파기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확대해야 한다. 특히 신진연구를 늘릴 것이다. 3년 받고 지원 끊기니까 아무것도 안 된다. 연구지원을 받던 분들이 계속 연구할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추겠다.”

▲ 그동안 ‘성실실패’란 시스템을 만들자는 얘기가 많았다. 뚜렷하게 제도변화가 있나.
“2011년 오세정 이사장 재임 때 ‘성실실패’를 시작한다고 언급하고, 당시 그렇게 가야겠다는 방향에서 모험연구를 시작했다. 일반연구가 5천만 원이면 경우에 따라 1억5천만 원까지 지원하는 모험연구를 했는데,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도전적인 것을 시도하면 실패하더라도 용인하자는 목적에서였다. 성실하게 했으면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책임을 묻지 말자고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는 도전적인 것보다 하던 것을 조금만 바꿔서 내놓은 게 많아 지난해 그 부분을 없앴다. 같은 맥락에서 작년에 ‘소규모 탐색연구(SGER - Small Grant for Exploratory Research)이라고 해서 이공학개인기초연구지원사업(기본연구) 신규과제의 5% 규모(69과제)를 지원했다. 무조건 50%는 탈락시키고 그중 계속 할만한 50%만 골라서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과제를 내게 했다. 같은 주제를 갖고 3년간 1억씩 줘서 계속 지원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후속으로 선정되지 못한 과제는 다시 신규과제든 다른 데 낼 수 있도록 열어줬다. 그 부분을 작년에 처음 시도했고, 올해는 10%규모(176과제)로 확대하려고 한다. 그중 성공적으로 잘될만한 것들은 계속 지원할 수 있게끔 하려고 한다. 1년만 보고 판단하기 어려우니까 처음에 2년 주고, 다음에 3년 주는 식으로 다양하게 하려고 한다.”

▲ 대학 구조조정 등으로 인문사회 분야 교수들의 자긍심에 손상이 갔다. 인문사회분야 교수들에게 좋은 말씀 부탁드린다.
“나의 전공 분야는 산업공학 중 한 분야인 인간공학이다. 우리나라는 인간공학이 공학에 들어가지만 미국에선 심리학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유니버설 디자인, 고령자를 위한 디자인에 관심을 가졌다. 이런 쪽에 관심을 갖다보니 자연스레 사회복지 연구자들과도 같이 만나곤 했다. 비록 전공은 공학이었지만 인문사회계열과도 접촉이 많았다. 내가 단편적으로 본 것으로 가늠할 순 없지만, 외국과 비교했을 때 국내에서 인문학 하는 분들이 상당히 상아탑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성 있는 연구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아는 분은 미국에서 巫俗신앙 전공으로 박사를 했다. 나는 이것도 ‘돈이 될 수 있는’ 학문이라 생각한다. 무속학이란 것을 꼭 학문적 접근만 강조하지 말자는 것이다. 무속학이 생긴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무속에 관심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니까 그 원리에는 경제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방향을 틀면 그 부분에서 ‘일자리’도 얻을 수 있다. 특히 외국에는 그런 것을 많이 한다. 인문학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자연과학 하신 분들까지도 너무 실험실에 갇혀 있다. 인문학자도 너무 연구실에 갇혀 있지 말고 내 연구가 사회에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적용시켜주면 본인도 제자도 살 길이 열릴 거라고 생각한다.”

▲ 1992년 창간한 교수신문이 올해로 창간23주년을 맞는다. 교수신문은 바람직한 대학 발전과 대학 문화 창달에 앞장서 왔다. 교수신문에 거는 기대와 당부가 있다면
“1992년 4월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민주화, 학술정보 제공과 대학문화 창달, 교권옹호와 전문적 권위 향상’을 기치로 전국 국·공·사립대 교수협의회 등이 한마음 한뜻으로 창간해 한국 대학을 대표하는 언론으로서 바람직한 대학의 발전과 대학 문화 창달에 앞장 서왔던 <교수신문> 창간 23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대학사회와 대학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正論紙가 절실히 필요했던 시점에 무엇 하나 풍족하지 않던 척박한 여건 속에서도 시대정신을 모색하는 다양한 심포지엄 개최, 깊이 있는 학술담론을 이끌어낸 기획연재 및 한국 지성사회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올해의 사자성어’ 진행 등 <교수신문>은 지난 23년간 우리 대학과 대학인을 대변하는 대표 대학전문지로서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왔다. 특히 우리나라가 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 눈부시게 성장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자임한 우리나라 대학의 지적·창의적 성과와 노력을 우리 사회와 국민에게 성실히 전달하고 소통했다는 점에서 <교수신문> 관계자 여러분들의 노고를 진심으로 치하드린다.


그러나 <교수신문>의 역할과 기대감은 여전히 크다. 지식과 정보가 국가발전에 핵심인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대학 등 연구기관과 한국연구재단 등 연구지원기관이 더욱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신성장동력 창출도, 선진일류국가 진입도 기대할 수 없다. <교수신문>이 대학사회의 크고 작은 일들을 냉정하고 신속하게 보도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국가 고등교육과 연구지원 전반의 이슈와 쟁점들을 면밀히 분석해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여론을 리드하는 우리나라 대학의 진정한 언관으로 우뚝 서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한국연구재단도 우리나라 전 학문분야의 기초?원천연구를 지원하는 국가대표 연구지원 전문기관으로서, <교수신문>과 함께 우리나라 학술 및 과학기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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