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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인간’이 된 교수들
‘잉여인간’이 된 교수들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서울여대·현대철학
  • 승인 2015.04.16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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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정체성 설문조사에 대한 소회

<교수신문>이 창간 23주년을 맞아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지금 대학교수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교수들의 입장을 묻는 조사였다. 그 결과가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교수들이 일종의 ‘잉여인간’처럼 되고 말았다는 자괴감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잉여인간이란 현실에서 무익한 존재로 취급받고, 그 때문에 스스로도 자율성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면 말이다.

한 사회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라 할 수 있는 교수사회에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대학 구조조정이 올해부터 시작된다. 일부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은 정원을 감축해야 하고, 또 어떤 대학은 폐교될지도 모른다. 학생이 줄어드니 대학도 줄어야 하고, 등록금도 줄어드니 대학재정이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의 대응은 없고, 그 대신 교육부는 구조조정의 칼자루만을 쥐겠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산업수요에 맞는 학제 개편 주장마저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산업수요에 맞지 않는 학문과 학과들은 대체 어디로 가란 말인가?

대부분의 교수들은 대학 구조조정을 우려하고 있다. 설문조사 참여 교수들의 75.8%가 대학 구조조정이 학문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고 예측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인지 70.3%는 오늘날 ‘대학이 죽었다’는 극단적인 평가에 동조한다. 과연 이런 참담한 상황 앞에 서있는 교수들의 심정은 어떨까?

설문조사 참여 교수들의 49.8%가 자신들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본다. 또한 교수들의 48.1%는 연구와 교육 이외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호소하고 있으며, 48.6%는 열악한 연구 환경에 불만을 표시한다. 더구나 교수들의 위상이 실추됐다고 생각하는 교수들은 80.2%에 이른다.

분명 교수들의 위상 실추가 잇따른 성추문 사건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구조조정 대상으로 전락한 교수들, 학교를 살리자고 지표 높이기에 앞장 선 교수들, 열악한 연구 환경 속에서 업적 경쟁에 매달린 교수들, 더구나 산업 수요에 맞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교수들. 이렇게 교수들의 자존감을 해치고 자율성을 없애는 상황에서 과연 누군들 교수를 높게 평가할 것이며, 교수 자신인들 또한 어떻겠는가?

교수들이 자신을 대학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한다면 교수는 진리의 탐구자이자 교육자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어떤 압력이나 권위로부터 독립해 자유로운 정신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학 내에서 이 모든 활동이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대학 구성원 상호 간의 토론과 소통이다. 대학은 등장 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래야 한다. 대학이 자율성을 갖지 못한다면 누가 권력을 비판할 것이며, 대학 내에서 토론과 소통이 사라진다면 인간이 추구해야할 보편적 이상과 삶의 가치를 어떻게 논할 수 있겠는가?

잉여인간으로 취급받는 사람들에겐 자율성도 사라지고 이상과 가치도 의미를 잃는다. 대학교수들이 잉여인간이 되고 만다면, 진리도, 사회의 이상도, 삶의 가치도 사라진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대학교수들이 잉여인간이 되고 만다면 이런 물음도, 이에 대한 대답도 불가능하다. 잉여인간이 된 교수들은 잉여인간이 된 학생들을 낳고, 잉여인간이 된 학생들이 사회로 확산되면 결국 우리 사회에서는 자유로운 정신 또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서울여대·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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