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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지식인은 죽었다” 58%→70%
“교육연구 관심 없으면 다른 직종 찾아라”
“대학·지식인은 죽었다” 58%→70%
“교육연구 관심 없으면 다른 직종 찾아라”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5.04.16 0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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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3주년 기념 설문조사_ 지금, 대학교수로 살아간다는 것

‘이대로 가면 누가 대학교수를 하려 하겠나.’ 요즘 구조조정 토론회나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얘기다. 신입생 감소와 정원 감축, 재정 악화….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구조조정은 대학과 교수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사회적 시선은 또 어떤가. 한교수의말마따나, “성추행 사건이나 연구비 유용 등 대학교수에 대한 언론의 무분별한 비판으로 전체 교수들의 이미지가 추락해 자긍심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지금, 대학교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교수신문>은 창간 23주년을 맞아 교수사회의 정체성을 진단해 보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대학교수 생활에 대한 만족도와 신분 불안, 교수 위상을 확인하고 사회적 비판에 대한 생각, 지식인으로서의 역할, 대학교수의 미래 전망 등을 물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환경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오늘을 살아가는 대학교수의 삶과 고민, 미래 전망을 공유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교수신문>은 2013년에도 같은 주제와 문항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 있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사이에 인식 변화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대부분 문항을 그대로 가져왔다. 2013년 설문 문항은 <교수신문>이 2001년 실시했던 ‘한국 지식인 사회의 자기 성찰’ 조사와 손준종 한국교원대 교수가 2005년 했던 ‘한국 대학교수의 생활과 의식에 관한 조사’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조사개요
·조사대상: 전국 4년제 대학 조교수 이상 전임교수 785명(명예교수 포함)
·조사방법: 이메일 온라인 설문조사
·조사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
·진행·분석: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지식인의 죽음.’ ‘대학은 죽었다.’ 이런 사회적 시선을 교수 스스로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교수신문> 설문조사에 70.3%의 교수가 ‘그렇다’라고 동의했다. 2013년 조사 때만 해도 57.9%였으나 12.4% 포인트 증가했다. ‘아니다’는 20.0%에서 13.0%로, ‘보통’이라는 응답은 22.2%에서 16.7%로 줄었다.

전 계열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예체능계열(73.9%) 교수 가운데 ‘대학은 죽었다’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공학계열(68.8%)이나 의약계열(63.3%) 교수도 60% 넘게 이런 생각에 동의했다. 30대(60.0%)나 60대(67.9%)에 비해 한참 대학이나 학계에서 활동할 연령대인 40대(73.5%), 50대(70.2%) 교수가 더 이렇게 생각했다.

논문 표절, 연구비 유용, 성추행…. 최근 들어 교수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이 언론 사회면에 등장하는 빈도가 늘었다. 하지만 교수들이 생각하기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교수사회의 모습 가운데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분별한 정치 참여’(24.6%)다. 2013년에도 ‘무분별한 정치 참여’(24.3%)를 꼽은 교수가 가장 많았지만 ‘논문 표절 등 연구윤리’(23.5%), ‘학위논문 부실 지도 및 심사’(23.3%)를 꼽은 비율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올해는 그 차이가 6~8% 포인트 벌어졌다.

무분별한 정치 참여에 비판적 인식은 특히 50대(25.0%)와 60대(32.1%), 정교수(27.7%)들이 가장 강했다. 부교수는 연구부정 행위(22.4%)를 가장 많이 꼽았다. 30대는 학위논문 부실 지도(30.0%)라고 응답한 교수가 가장 많았다. 최근 잇따른 사건 탓인지 성추행 사건을 언급한 교수가 9.0%에서 17.3%로 늘었다. 특히 40대(28.6%)와 조교수(27.7%)는 성추행 사건을 교수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로 인식했다.

“무분별한 정치 참여 개선해야”

교수들은 지식인으로서 수행해야 할 바람직한 역할을 ‘전문적 기능의 수행’(48.4%)이나 ‘공동체에 대한 책임 확대’(35.3%)라고 본다.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지식인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그것의 실천 방법이 정치 참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정치권의 참여 요청이 와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비율이 2013년 61.6%에서 올해 62.9%로 근소하게나마 늘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현상은,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2013년 18.9%에서 올해 22.8%로 늘었다는 점이다. 지난 2001년 <교수신문>이 창간 9주년 기념으로 실시했던 ‘한국 지식인 사회의 자기 성찰’ 설문조사에서는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12.2%였다. 갈수록 그 비율이 늘고 있다. 정치권의 참여 요청이 올 경우 ‘어느 정도 참여한다’는 응답은 2001년 36.7%에서 27.2%(2013년), 26.5%(2015년)로 줄었다.

한 교수는 “전문분야가 아님에도 정치, 재계, 불필요한 교내외 정치 참여 등을 함으로써 스스로 권위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교육과 연구에 관심 없다면 교수직보다 다른 직종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교수 역시 “교수 스스로 연구자로서 전문성을 강화해야 하며 다른 분야와 소통도 활발하게 해야 한다”면서도 “지나친 정치 참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소통 부재의 대학사회, 개인화해 가는 교수사회의 모습도 엿보인다. 동료 교수의 표절이나 중복게재(자기표절) 행위를 보게 되면 ‘비판은 하지만 조용하게 처리한다’는 답이 54.3%로 가장 많았다. 2013년 62.6%보다 8.3% 포인트 낮아졌다. 낮아진 만큼의 비율이 ‘모른 척 한다’로 옮겨갔다. 2013년 23.7%에서 올해 31.0%로 높아졌다. ‘즉각 비판해 책임을 묻는다’란 입장도 5.7%에서 4.6%로 감소했다.

교수의 사회적 위상은 갈수록 낮아지고, 교수로서의 삶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교수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졌다. 교수 스스로 혁신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주관식 답변에서는 교수 본연의 책무인 교육과 연구, 그리고 사회봉사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가장 많았다. 한 교수는 “지금의 대학은 학문도 없다. 교수만 되면 연구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도 애정을 보이지 않는다. 교수가 교수다워야 대학과 학문이 발전한다”고 말한다. “연구자로서 치열하게 연구하지 않는 교수는 후학을 위해 교수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교수도 있었다.

또 다른 교수의 지적은 더 뼈아프다. “교수는 학문의 전문성 외에 더 중요한 것이 도덕성과 비판정신이다. 이러한 덕목은 대학사회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교수도 그냥 직업인에 불과하다. 혁신을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해관계에 빠져 제 목소리를 죽이고 타협하고 만다. 전통적 딸깍발이 정신이 필요하다.”

교수만 바뀐다고 될 일은 아니다. “대학교수의 위상과 신뢰에 대한 제고는 교수사회의 자기 혁신에 의해서만 가능하지 않다. 지식을 오직 근시안적인 이윤창출의 목적에 이용하려는 사회 전반의 시각이 대학뿐 아니라 교수에 대한 위상과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대학과 학문을 바라보는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학교수 및 대학교육의 위상과 신뢰는 제고될 수 없다.” 한 교수의 지적이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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