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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의 궁극적 지향은連帶의 사회’다
한반도 평화의 궁극적 지향은連帶의 사회’다
  • 김학재 베를린 자유대 동아시아 대학원 전임연구원
  • 승인 2015.04.0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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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판문점 체제의 기원: 한국전쟁과 자유주의 평화기획』김학재 지음|후마니타스|702쪽|27,000원

아시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 유럽연합이 없는가. 왜 아시아 국가들은 평화와 협력을 위한 기구와 제도를 구축하지 못하는가. ‘아시아 패러독스’라는 개념은 이렇게 엄청난 경제적 교류와 통합수준에도 불구하고 적대적인 민족주의와 외교, 안보 문제로 갈등, 경쟁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의 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60여 년간 평화 체제로 전환되지 못하고 전쟁상태 속에서 적대적 대립을 지속하고 있는 남과 북은 그 자체로 아시아 패러독스의 가장 현저한 물질적 증거 중 하나다. 이 모순은 무엇으로부터 기원했는가. 필자는 이 책을 통해서 아시아 패러독스 자체가 한국전쟁이라는 격렬한 전쟁이 아시아 전체에 남긴 후유증이자 경로 의존적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전쟁의 기원’에서‘평화의 기원’으로: 즉, 한국전쟁은 단지 한반도라는 전장에서 발생한 군사적 전투가 아니라, 지구적, 지역적 수준의 크나큰 후유증을 남긴 정치적 충돌이었다. 그런데 기존의 연구들은 한국전쟁을 군사사 혹은‘전쟁연구’로 접근했다. 이 연구는 이러한‘전쟁연구’들이 전쟁의 참혹한 결과와 고통, 상흔을 전쟁 발발의 기원에 있다고 여기고, 전쟁의 결과들을 모두 전쟁을 시작한‘적들의 책임’으로 귀속시키고‘단죄’하고‘처벌’하려는 형법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봤다. 이 연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전쟁의 기원’이라는 문제의식에서‘평화의 기원’이라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그동안 이 전쟁을 종식하고‘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주목하고 더 많은 지혜를 모으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연구의 관심은 판문점과 제네바, 비엔나와 베르사이유, 유엔과 샌프란시스코 협약, 평화적 공존과 중립주의, 반둥회담을 포괄하고 있다.

국제법과 한국전쟁: 사실, 한국전쟁을‘군사적인 것’의 해석 틀로 한정하려는 사고방식 자체가 한국전쟁의 산물이며, 그 배경에는 전쟁의 과정에서 발생한 국제법적 결정과 이를 둘러싼 적나라한 정치투쟁이 있었다. 따라서 필자는 칼 슈미트와 한스 켈젠, 퀸시 라이트, 레오 그로스, 쥴리우스 스톤, 조세프 쿤츠, 라우터파흐트, 맥두걸 등 당대의 국제법 사상가와 법조인들의 한국전쟁에 관해 어떤 해석과 논쟁을 했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전쟁에는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에 관한 수많은 국제법적 원칙들과 국제기구의 기획들이 도입됐다. 필자는 단지 국가간 권력 균형문제만이 아니라 이런 국제법적 논쟁과 제도적 유산들이 바로 한국전쟁 정전체제를 구성하고 있고, 따라서 그것의 발전적 극복 없이는 새로운 평화 질서를 위한 정당한 권위와 제도를 구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평화를 지향해야하는가. 이 연구는 이러한 판문점 체제의 근본적 한계들을 극복하기 위해, 자유주의 평화관을 넘어서 사회적 연대로서의 평화를 궁극적 지향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네가지 평화의 이념형과 자유주의적 평화: 특히 이 연구는 한국전쟁 정전체제의 형성에 자유주의적 사상과 관점이 반영된 국제법과 정치적 기획들이 도입됐다고 보고 있다. 자유주의라는 사상은 어떠한 평화를 지향하고 있는가. 필자는 이 책에서 자유주의 평화의 특성을 식별하기 위해 크게 네 가지 평화의 이념형을 분류했다.

첫째, 중세 유럽의 평화관은 작은 공동체와 인간관계에서의 평화를 의미했다. 중세적 평화관은 종교적 세계관에 따라‘평화’라는 가치 그 자체 보다는‘정의’라는 가치를 보다 상위에 두고 있었다. 둘째, 홉스의 평화관은‘국가의 평화’였다. 즉 국가가 강력한 권위와 물리력을 확보해 국가 내부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의미였다. 홉스는 전쟁과 국가간 협약, 무력을 통한 전쟁 억제를 통해 국가간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봤다. 셋째, 칸트의 평화는 공화주의적 평화였다. 즉, 국내적 차원에서는 절대주의 국가와 시민사회의 대결을 통해 민주적 헌법을 가진 공화주의를 수립하고, 국제적 차원에서는 국제법과 국가간 연합을 통해 영구 평화를 이루자는 것이었다. 그는 무역과 교류를 통해 협력이 이어지면 자연스럽게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사고도 갖고 있었다.

넷째, 뒤르켐의 평화는 사회적 평화였다. 이는 국가를 특권화하는 홉스적 관점에 반대하면서, 개인으로 구성된‘사회’와 노동분업의 전개로 형성되는‘연대’를 중시했다. 개별 국가들의 권위를 넘어 세계연방을 통해 사회·연대적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연구는 특히 두 번째와 세 번째 평화개념이 20세기 후반 전세계로 확산되며, 한국전쟁 시기에 유엔과 국제적십자, 국제사회를 통해 전면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분석했다.

‘판문점 체제’를 넘어서: 그렇다면 이 자유주의 평화기획이 한국에 적용된 결과는 무엇인가. 이 책은 그 결과 한반도에 형성된 냉전의 유물이자 아시아 패러독스의 핵심 기반인 한국전쟁 군사정전 체제를‘판문점 체제’라고 명명했다. 홉스나 칸트적 평화 개념에 근거해 이 체제를 평가해보자면 다음 다섯가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첫째, 판문점 체제는 칸트가 꿈꿨던 영구 평화체제도 아니고, 홉스가 말한 국가 간 평화 협약체제도 아니다. 사실 판문점 체제는 이 두 가지 기획의 지향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존 질서유지에 대한 주변 강대국들의 강박에 의존해 60여 년간 지속된 불안하고 유동적인 군사 정전 체제이다. 둘째, 판문점 체제는 칸트식 국제 연방 체제에 속한 체제도 아니고, 홉스적인 세계국가의 힘이 수립한 체제도 아니며, 그 권위와 힘이 모두 실패하고, 보편성마저 심각하게 결여된 협소한 군사 동맹체제이다. 셋째, 판문점 체제는 개인의 자유와 대의제 원리에 기반해 구성된 공화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 이념인 자유주의가 스스로를 우월한 문명론으로 격상시켜 다른 모든 대항·대안 이념들을 문명/야만의 이분법으로 배제한 냉전적 자유주의 체제이다. 넷째, 판문점 체제는 탈식민과 전후 처리 같은 동아시아 사회의 요구를 회피하고 유예시킨 탈정치적 군사·경제 질서다. 마지막으로 판문점 체제는 보편적 평화와 보편적 정의가 아니라, 양자 군사동맹 체제라는 분리된 평화, 그리고 특수한 발전주의 기획의 상징이다. 결국 판문점 체제는 자유주의의 보편적 원칙들을 군사력으로 강제로 관철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코 안정적인 영구 평화를 창출하지 못한 실패 사례라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평화를 지향해야하는가. 이 연구는 이러한 판문점 체제의 근본적 한계들을 극복하기 위해, 자유주의 평화관을 넘어서 사회적 연대로서의 평화를 궁극적 지향으로 삼아야한다고 제안한다. 한반도 평화의 출발점과 궁극적 지향은 민족 통일, 안정된 국가가 아니라, 동아시아와 세계 속에서 남북이 서로 분업 관계로 연결되고 함께 일하며 연대가 흘러넘치는‘사회’여야 한다.


김학재 베를린 자유대 동아시아 대학원 전임연구원

지구사적 관점에서 전쟁과 평화에 대한 국제법과 동아시아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표 저서와 논문으로는『전장과 사람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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