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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딸이 돼서 기뻤다.
나쁜 딸이 돼서 기뻤다.
  • 한귀은 경상대·국어교육과
  • 승인 2015.04.06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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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칼럼] 한귀은 경상대·국어교육과

"SNS에서‘좋아요’라고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듯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나에게도 어서 ‘좋아요’라고 해 주세요”라는 욕망이 깃들어 있다."

며칠 전「강연 100℃」(KBS)라는 프로그램 녹화가 있었다. ‘엄마와 집짓기’를 테마로 강연을 했다. 2013년, 나는 엄마와 함께 집을 지었고, 그 과정을 책으로 펴냈는데 방송국 피디가 그걸 보고 강연을 섭외해 왔던 것이다.

강연하는 도중 청중석에 앉아 있는 엄마를 소개했다. 엄마의 얼굴은 이미 경직돼 있었다. 애써 울음을 참고 계셨는지 눈에, 입에, 볼에까지 힘이 쫙 들어가 있었다.

나도 그만 울컥해지고 말았다.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면 어떤 감정이건 생기지 않을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긴장감은 오히려 그 울컥하는 감정에 가세해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지경에 이르렀다. 나 또한 얼굴과 눈에 힘을 잔뜩 줘야 했다. 서둘러 강연을 이어서 했지만 문장은 이미 머릿속에서 꼬여있었다. 겨우 말을 끼워 맞추고 강연도 끝이났다.

인터뷰가 남아 있었다. 인문학적 집짓기에 관한 강연을 한 소감을 묻는 사회자에게 나는 마치 수상소감이라도 하듯 감사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들먹였다. 빨리 소감을 끝냈으면 하는 사회자의 심정이 읽혀졌다. 그는 연신“네, 네”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엄마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사회자는 이렇게 물었다. “딸과 함께 집짓기를 하셨는데 딸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 있으세요?”엄마의 답변은 대략이랬다. 어렸을 때 딸은 공부도 잘하고 뭐든지 말하지 않아도 혼자서 다 했기 때문에 다른 자식들에 비해 소홀히 한 것 같다. 그게 마음에 걸리고 미안하다……. 그 순간 다시 마음이 찡했다. 그리고 엄마가 그걸 알아줘서 나는 모질게도 기뻤다.

늘 착한 딸이고 싶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착한 딸 콤플렉스를 스스로 다행이라고, 내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가 지금 더 행복하고, 엄마가 행복하기에 나도 편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엄마가 나로 인해 마음이 아팠다는 게 고맙고 기뻤다. 그건 어렸을 때 외로웠던 나로 다시 돌아가서 받는 관심이었다. 아직 채 자라지 못하고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어린 내가 이제 괜찮다며 툴툴 일어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엄마에게 더 기대어 의지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 더불어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에서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 엄마와 나는 버스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응시했다. 엄마가 대뜸“저 아나운서는 어떻게 우리 딸보다 패션 감각이 저렇게 없냐?”하신다. 너무 진지하게 말하시는 바람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의 콩깍지는 정말 두꺼웠던거다. 덧붙여 이런 말씀도 하신다.“ 나는 사실과 다른 말은 못 하잖아. 항상 있는 그대로 말하니까.”그러니까 당신의 관점이 객관적이기에 신뢰할 만하다는 건데, 엄마의 아주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이 나 또한 어쩔 수 없이‘정말 그런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 엄마와 나 사이에서만, 나는 그 아름다웠던 이십대 스포츠 방송 아나운서보다 더 스타일리시한 여자가 되고 말았다.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헤겔에 이어 사람의 인정투쟁에 관해 역설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고 또한 인정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는 거다. 어쩔 수 없이 삶은 타자 지향적이라는 건데, SNS에서 ‘좋아요’라는 말을 기다리고 팔로어 수를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인정투쟁의 한 양상이다. 하지만 이 익명의 인정이 무슨 의미일까.‘ 좋아요’라고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듯 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나에게도 어서 ‘좋아요’라고 해 주세요”라는 욕망이 깃들어 있다. 그보다는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인정이야말로 자신에게 힘이 되고 자존감의 토대가 되지 않을까. 엄마의 매우 극단적으로 주관적인 인정은 어린 나를 다독였고 어른이 된 나를 으쓱하게 했던 것이다.

서울을 다녀온 그 하루 동안의 시간은 그냥 하루가 아니었다. 엄마와 집을 지었던 1년 반 전으로 갔다가, 다시 어린 내가 됐다가, 이제 상처를 치유한 중년으로 되돌아오는 시간이었다.


한귀은 경상대·국어교육과

부산대에서 박사를 했다. 최근의 주요 논문과 저서로 「영화 보기를 통한 윤리적 주체로서의 글쓰기 교육」, 『모든 순간의 인문학』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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