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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논어』 해설서 펴낸 배병삼 영산대 교수
[인터뷰]『논어』 해설서 펴낸 배병삼 영산대 교수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2.11.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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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세대를 위한 논어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학)가 ‘한글세대가 본 논어(전2권)(문학동네 刊)’를 펴냈다. 두권으로 두툼하게 나온 이 책은 덩치는 크지만 별다른 위압감이 없다. 경전 ‘논어’를 맘 편히 읽을 수 있는 고전으로 쉽게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보듯 큰 특징은 현대 한국어로 ‘논어’와 논어학 2천5백년을 번역했다는 것. 그 실현성 여부를 떠나 이는 그동안 ‘논어’ 역주본과의 확연한 구별 짓기다. 이 책은 또 정치학자인 배 교수가 ‘논어’를 일관된 정치학적 텍스트로 읽어낸 것이라는 점에서 ‘한글’ 옮기기는 해석의 전략이기도 하다. 춘추시대의 정치교과서인 이 책이 왜 그동안 철학서로만 받아들여졌을까. 배 교수가 가장 큰 의문을 품었던 점이다.

“정치학자가 ‘논어’를 다루는 것이 남의 떡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도리어 한국의 정치학자들이 ‘논어’를 방기한 것이 문제라고 봐야지요. 일제에 의한 학과체제로 말미암아 ‘논어’는 인문학, 특히 철학의 소유가 돼버린 감이 있는데, 실은 이 때문에 철학과 정치학이 함께 할 수 있는 길이 막혀버렸죠. 인문학은 생기를 잃고 골방에서 창백해졌고, 현실 정치는 방만하고 천박한 행태를 연출해왔습니다.”

배 교수는 ‘논어’가 말에 관한 책이라고 말한다. 정치도 언어의 정치학이 가장 기본이다. 그런 점에서 ‘논어’엔 정치학자들이 귀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 많다.

“공자는 당대를 헛소리와 침묵의 시대로 읽었습니다. 헛소리를 유포하는 통치자들에 대한 공자의 처방은 ‘이름을 바로잡는 것’[正名]이었지요. 또 세상을 광정해야 할 지식인들의 은둔에 대한 처방은 앙가주망의 권유였습니다. 폭력에 상심해 앵돌아앉은 은둔자들을 설득하긴 힘들었지만, 공자의 발언이 당대 정치적 현실을 개선시키려는 언설이었음은 인식해야죠.”

남을 겨누는 비평의 칼날이 날카로운 요즘, ‘논어’를 통해 “남의 말 듣는 연습 좀 하자”는 것이 배 교수의 말걸기 방식이다. 그렇지만 ‘공자 가로되’가 오늘날에도 통하는 것은 아닐 테다. 배 교수는 ‘논어’를 통함으로써,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상식이 ‘낯설게’ 보인다는 점을 주목한다. 우리 일상의 ‘非常한 기원’을 ‘논어’로 들여다보자는 것. 그는 책의 중간 중간 논평자로 개입해 차별애의 바탕을 엿보거나, ‘효도와 충성의 항등식’이 결코 ‘논어’적 연원을 갖지 않는다는 점을 강변한다.

“근래 플라톤의 저작을 다시 읽고 있는데요, 공자와 소크라테스는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酷似라는 표현을 쓸 만큼이요. 뿐만 아니라 ‘논어’ 입장에서 하이데거나 아렌트에 대해 할말이 있게 마련이고요. 그 역도 물론 가능하죠. ‘논어’ 읽기가 오늘날 서양학문을 공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만….”

서구의 고전적 인문주의를 바탕에 깔고 동양의 지혜를 톱았다는 것은 이 책의 숨겨진 차원이다. 동서양사상사를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점은 책의 풍요성을 높이고, 논어의 부정적 선입견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번역의 적실성 여부다. 배 교수는 번역 내내 “한 글자도 빠뜨리지 말고, 한마디 말도 섞지 말라”는 홍찬유 선생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이해의 정밀은 북돋고 해석의 남발을 경계했지만, 불가항력인 면도 많았다.

“‘논어’ 속의 본문이라는 것이 줄기나 잎은 빼두고 꽃송이만을 따놓은 것이어서, 그 깊은 맥락은 스쳐지나가기 쉽습니다. “子曰”로 시작되는 장절은 모두 제자의 질문이 생략된 것인데, 이걸 되살려내는 게 큰일이었죠. 仁과 賢 같은 ‘논어’의 키워드도 구분이 필요하지만 우리말이 부족해 ‘어질다’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어가 흡수할 수 없는 문맥은 고사하고 단어에서부터 언어간 마찰이 심각했습니다.”

이 부분은 배 교수를 포함해 주석 작업의 운명적 난제이고, 이번 ‘논어’의 사활이 걸린 부분도 바로 여기다. 그리고 논어학에서 있어온 해석의 논란 부분은 각 장절 아래 ‘참고’ 난을 둬서 처리했다. 여러 학자들의 엇갈린 견해가 하도 많아서 혼란을 줄 것 같기도 하지만, 배 교수에게 ‘논어’에 대한 선인들의 연구는 오히려 많은 도움을 줬다. 그는 지난 6년간 ‘논어’를 공부하고 가르치며 주자의 ‘논어집주’, 다산의 ‘논어고금주’, 진사이의 ‘논어고의’, 오규 소라이의 ‘논어징’을 거쳐 다시 주자에게로 돌아오는 논어학의 순례를 거듭했다.

“전통 주석가들은 당대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사를 바탕으로 풍부한 전거를 갖고 예리한 질문을 했습니다. 또 그에 대해 넉넉한 식견과 합리적 판단을 통해 답하는 수준 높은 논쟁을 형성하고 있더군요. 대단히 감동적이었습니다.”

‘논어’에 대한 기존의 해석학적 지평을 딛고 올라서면서도, 전통의 부피를 느끼고자 하는 배 교수는 이번 번역과 해석의 작업을 마무리 짓고, 곧 분석과 해체의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현재 2/3 정도 진척됐는데 ‘‘논어’의 해석학; 孔門의 제자열전’을 가제로 잡아뒀다. 배 교수는 “나의 도마 위에 ‘논어’를 얹어놓고 내 식으로 포를 떠보겠다는 심산이죠. 여태 ‘논어’나 유교에 대한 접근이 공자를 중심으로 한 것이라면, 제 작업은 ‘논어’에 출현하는 제자들, 이를테면 자공, 자로, 염유, 안연 등을 주인공으로 삼아 공자와 대립적으로 포치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공자의 뒷모습을 드러내려는 것이 바로 배 교수의 의도인 셈이다. 그는 수천년 전 ‘공자와 그의 시대’가 점잖은 강론장이 아니라 스승이 제자의 정강이를 차서 쓰러뜨리고, 또 제자는 앙앙불락 스승의 뒤통수를 치려고 덤비는 그런 전쟁터였음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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