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이어 나오는 ‘평화를 생각한다’ 기획은 서구적 시각에서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설명해온 문명과 야만의 틀이 역전되는 문명의 역설과 진보의 허구성을 환기시킨다. 이 시대의 폭력은 어떤 것이고, 왜 거기 맞서야 하는지, 폭력의 구조적 차원은 무엇인지 20세기 정치사상의 스펙트럼 속에서 성찰하고 있는 최창모 건국대 교수(히브리학)의 글은 20세기 국가간, 인종간, 세력간에 발생한 갈등의 구조적 측면을 몇가지로 수렴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아울러 평화를 실천하는 단체들(핵무장해체운동, 미과학자연맹 등)의 급진적 문제의식과 활동을 소개하며 안보주의의 허상을 짚어낸 평화학자 이대훈씨의 글은 폭력에 대한 성찰을 완성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지난여름 ‘과거 청산’ 논의들을 되돌아보는 의미에서 상징적인 논문들도 소개되고 있다. 과거 청산의 의미를 역사사회학의 차원에서 분석한 정근식 전남대 교수(사회학)의 글, 친일문학에서 외부억압이 아닌 자발성의 기제를 발견하고 비판한 김재용 원광대 교수(국문학)의 논의는 지금 우리에게 과거 청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정치비평’은 실현성이 불투명하고 정치철학도 부재한 거대 공약들이 대문짝하게 내걸리는 선거철 정치판에 제동을 거는 특집을 마련했다. 조현현 성공회대 교수(정치학) 등이 필자로 나서 6·13 지방선거, 8·8 재보선을 평가하면서 올해 대통령 선거를 전망하는데,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등 보수정당이 아닌, 시민운동, 민주노동당, 사회당의 입장에서 선거의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고 있어 고무적이다.
또 눈에 띄는 점은 이번호부터 새로 마련한 ‘한국의 정치학자’ 시리즈에서 제1호로 윤근식 교수를 조명했다. 현존하는 원로 정치학자들을 인터뷰해 한국 정치학이 걸어온 길을 인터뷰하고 그 성과와 한계를 정리하는 형식이다. 독일의 비판적 사회과학과 제3세계 종속이론을 국내에 소개했던 윤근식 교수의 이력이 저간의 어지러운 정치현실과 에피소드 속에서 생생하게 부각되고 있다. 일반논문 난에서 북한 김정일 정부의 대중동원식 경제 운영이 안고 있는 한계를 지적한 부분도 최근 신의주 특구화 등과 관련해 읽어볼 만하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