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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근대화’의 숨결을 짚어낸 사회과학자의 눈썰미
‘문화적 근대화’의 숨결을 짚어낸 사회과학자의 눈썰미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3.30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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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__『 우리 미학의 거리를 걷다』김형국 지음 | 나남 | 392쪽 | 20,000원

리는 많은 거리를 그저 지나왔을지도 모른다. 근대화와 산업화의 물결이 도달한 길목은 마침내 휘황찬란한 거리로 바뀌었지만, 그 속내는 어두운 심연의 일부처럼 도저한 그 무엇으로 저만큼 떨어져 있다. 시인 김수영은 이런 근대적 도회의 거리를 배회하면서「거리」라는 시를 썼다. 시인의 거리는 이를테면 이런 모습이다.

“오래간만에 거리에 나와보니 / 나의 눈을 흡수하는 모든 물건 / 그 중에도 / 빈 사무실에 놓인 무심한 / 집물 이것저것 // …… // 스으라여 / 너는 이 세상을 點으로 가리켰지만 / 나는 / 나의 눈을 찌르는 이 따가운 가옥과 / 집물과 사람들의 음성과 거리의 소리들을 / 커다란 해양의 한 구석을 차지하는 / 조고마한 물방울로 / 그려보려 하는데 / 차라리 어떠할까 /— 이것은 구차한 선비의 보잘것없는 일일 것인가.”—「거리(一)」(1955.3.10)

그런 김수영으로부터 한참 뒤긴 하지만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1975~2007)로 반평생을 보낸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가나문화재단 이사장)는‘문화적 근대화’에 대한 미적 단상, 좀 더 풀어쓴다면 문화판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예술작품을 좇아, 그네들이 일으켰던 마음의 물결을 정리해『우리 미학의 거리를 걷다: 전승미술 사랑의 토막 현대사』로 묶어 냈다.

사회과학자가 회화, 서각과 도예, 건축과 행정에 이르기까지 지난 40여 년간 문화계 곳곳에서 직접 관계를 맺은‘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자가 보기에 오늘 우리의 근대화라는 우람한 흐름 밑바닥에는‘아름다움에 대한 탐구’도 작은 흐름을 이루고 있다. 그는 이를 가리켜,‘ 문화적 근대화’라고 명명한다. 뭔 말이냐면, 우리 것에 대한 의식이 쌓이고 알려지기 시작한 역사의 이면을 가리키는 ‘김형국 식 용어’라는 뜻이다. 그는 이렇게 자신이 겪어온 시간의 주름들, 문화판 곳곳에서 부딪쳤던 삶의 흔적을 52개의 토막글로 삭혀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문화란 모든 영역을 넘어 미적 자의식을 지닌 존재에게는 해일처럼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대상이라는, 또 하나의 방증인 셈이다.

52개의 토막글로 읽어낸 문화판 삶의 흔적들

저자의 이러한 문화적 시선은 다른 말로 한다면, 문화 견문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저자는 예술작품 감상이란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나무 소반과 무쇠등가, 조각보 등 옛 생활을 이루던 작은 물품 하나하나에서부터 담백한 멋을 품은 달항아리, 佛頭, 木雁, 때로는 건축물 공간사랑이나 출판사 열화당 등에도 그의 시선은 고정되고, 새로운 의미의 옷을 맞춰 입게 된다. 화가와 작가 등 예술가뿐만 아니라 학자와 언론인, 일본인 수집가와 인사동 고미술상의 주인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시공도 훌쩍 건너뛰며, 소재도 다양하다.

이쯤에서 저자의 문제적 목소리를 들어보자. “문화적 근대화는 우리 것에 대한 분명한 自意識의 축적이자 그 의식의 대중화입니다. 이전 식민지 시절, 일본 안목가들이 말해줬던 정체성을 넘어 우리 先覺문화인들이 주체적으로 파악했던 바를 내 반생에 걸친 견문을 통해 되새겨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반생이라 함은 외국으로 유학을 가서 문화충격을 받고는 내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지난 40여 년의 시간대를 말함입니다.”경남 마산 출신 촌놈이 서울대를 나와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에 이르렀을 때, 한순간 깊고 커다란 굉음같은‘문화충격’에 사로잡혀 어찌할지 몰라하는 광경이 이 대목에 깊이 새겨져 있다.

저자가 밝혔듯이 자신이 직접 만나고 느꼈던‘生’감동이 이 책의 기조가 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전승미술판 주인공들의 행각과 그 틈, 바로 여기에‘문화충격’을 안고 돌아온‘젊은 김형국’의 오래된 시선이 파처럼 쑥쑥 자라났다던 것이다. 물론, 한국 미학의 거리를 먼저 걸어간 이들도 있다. 책의 미덕이기도 하지만, 저자는『한국 문화재 비화』(이구열, 1973),『 한국 문화재 수난사』(이구열, 1996)를 참고했다고 분명히 밝혔다. 나아가 이 한국 미학의 계보를 近園 金瑢俊으로 잡았다고도 털어놓았다.“ 전문 한국미술사학자로서 누구보다 앞서 목기 갚은 민예품의 아름다움을 착안했음이 특출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빠뜨리지 않았다.

『우리 미학의 거리를 걷다』는 다양한 평을 받기에 충분한 책이지만, 기자의 눈에는 미학의 거리를 종횡무진 하는 그의 시선만큼이나 날렵하고 섬세한 문체, 거기에 뒷받침된 박학강기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예컨대「소설가 박경리의 손맛·고향 예찬」도입부를 보자.

“박경리라 하면 흙냄새부터 난다. 격동의 우리 현대사 초엽, 한반도 땅을 살아내야 했던 민초들의 파란만장 삶을 그린 대하소설『토지』의 제목이, 또는 대작 집필의 막바지에서 창작의 고통도 이겨낼 방편으로 원주 땅에서 매달렸던 텃밭농사가 풍기는 흙냄새다.”

단 한 문장으로 박경리를 말하다

저자 김형국은 이렇게 썼다. ‘박경리라 하면 흙냄새부터 난다.’이 문장 하나로 저자의 녹록치 않은 글쓰기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이건 두 가지 의미다. 박경리를 연구한 그 어떤 문학 논문 못지 않은 단 한 줄의 가공할 평가가 여기에 응축돼 있다는 것. 그 누구도‘박경리라하면……’이라고 첫 문장을 쓸 수 없을 것인데, 김형국만이 그렇게 써버렸다는 것.

다른 하나를 더 보자. 「강운구의‘사진 實學’」, 역시 도입부다. 그는 도입부터 급소를 치는 글쓰기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시선을 사로잡는 과감하면서도 정제된 마음의 무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구순을 넘긴 노모를 모시던 강씨댁 초상은 好喪이 분명했다. 문상 길에서 상청엔 어떤 영정이 올랐을까가 먼저 궁금했음에도 非禮가 아니라 싶었다. 거기서 떠난 이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니 단정하게 매무새를 다듬은 모습이 아니라 일상 중에 어느날 아들이 들이댄 카메라를 그냥 무심히 바라본 얼굴이었다.”

그럼에도 하나 더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 저자는 이 책의 부제에‘토막 현대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승미학의 주권회복에 대한 바람과 광화문 현판, 문화재 행정, 공공미술 문제 등에서 짐작할 수 있는‘공적 소통의 문제제기’를 담은 대목이다.“ 전승미술에 대한 나의 사랑이 개인적 호사놀음이 아닐지 하고 스스로 오래 경계해왔던 마음”을 못내 염려했던 저자의 또 다른 자의식을 엿볼 수 있다.

책은 모두 8부로 구성됐다.‘ 1. 민예품 사랑의 샘물’,‘ 2. 한국 전승미술의 추임새’,‘ 3. 우리 미학 각론’,‘ 4, 한류 미학 사랑의 방식’,‘ 5. 우리 미학의 현창방식’,‘ 6. 세계 속에서 우리 찾기’,‘ 7. 전통 민예의 재발견’,‘ 8. 앞날을 기약하려면’등이 저자가 누볐던 우리 미학의 거리를 재현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게 썼다.“ 조상의 유산을 그대로 팔아먹어서도 안 될 일이고, 무작정 복제하기도 삼갈 일이다. 대신, 우리 독자·전래의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새로 꾸며진 것이었으면 좋겠다. 피카소나 이영학의 조각에 나타난 것처럼 나라마다의 개성은 단단히 간직한 채, 세계가 두루 공감할 만한 설득력을 갖춘 것이었으면 좋겠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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