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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과 대학의 품격
구조조정과 대학의 품격
  • 김 영 논설위원/인하대·한문학
  • 승인 2015.03.3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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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김 영 논설위원/인하대·한문학

▲ 김영 논설위원
지난 2월 26일 중앙대가 학과제를 폐지하고 신입생을 단과대별로 모집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 구조조정안을 발표해 대학가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 개편안은‘학사구조 선진화’를 표방하고 있으나 사실상“취업을 학문보다 우선하며 취업을 중심으로 대학을 바꿔야 한다”는 반교육적 발언을 서슴지 않은 황우여 장관의 교육부 방침을 앞장서 실행함으로써, 대학 본연의 지성과 덕성을 겸비한 민주시민양성이라는 교육기능을 포기하고 대기업의 입맛에 맞는 기능인력만을 양성하겠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앙대의 구조조정안은 겉으로는 시대변화와 산업수요에 맞게 학제를 개편하고 학생들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취업률이 낮은 인문사회과학, 기초자연과학, 문화예술전공의 궤멸을 초래해 다양한 학문생태계를 황폐화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해 우려된다.

인류의 지혜를 계승하고 인간다운 사람을 양성하는 것을 전통으로 삼는 대학마저 수요와 공급, 이윤창출이라는 시장논리에 맡기겠다는 무리한 대학 구조조정은 국회에 제출돼 있는 구조개혁법안(일명 김희정법안)의 내용과 최근 상지대 사태에 대한 교육부의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부실사학에게는 막대한 특혜와 보호를 제공하고 대학의 주체인 교수와 학생들에게는 엄청난 희생과 피해를 안겨주게 될 것이다.

그런데 중앙대의 구조조정안의 내용도 위험천만한 것이지만 그것을 시행하는 과정도 반지성적이었다는 점은 여러가지 성찰을 요청하는 대목이다. 교수와 학생들이 시대변화에 맞는 구조조정을 구성원과 협의를 통해 논의해가자고 수차례 건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단과대학 학장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비밀리에 졸속한 안을 만들었고, 문제가 불거지고 교내외의 반발이 확대됨에도 불구하고 일단 시행하고 보자는 억지논리를 내세워 강행을 시도하고 있다.

대학 본부측의 의사소통 불능과 교수사회에 대한 무시 현상은 입시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지 한 달이 되는 지난 주 목요일(3월 26일) 중앙대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대학학회, 한국 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각 대학 교수회와 학생회 등이 공동 주최한‘위기의 한국대학’대토론회의 장소 사용을 불허한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났다.

중앙대 교수협의회에서는 사태를 객관적으로 조명해 문제의 소재와 합리적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말을 주고받는’지성적인 토론회 행사를 기획하고 장소 사용을 허가 받았으나, 학교측은 행사 당일 외부 교수와 학생이 참여하는 토론회에 장소를 빌려줄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토론회를 가로막았다.

게다가 원래 예약된 토론회 장소에서 가까운 건물 벽에‘다른 학교 교수와 학생들의 도움은 필요 없다’는 글귀를 새긴 대형 현수막을 걸어놓고, 300여명의 토론 참가 학생들과 교수들을 교문 밖 차가운 길거리로 내쫓기도 했다.

구조조정이라는 쓰나미가 본격적으로 대학가를 엄습하고 있다. 대학의 품위와 품격을 잃지 않는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구조조정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해서, 어떤 구조조정방안이든 일방적으로 추진해도 된다는 생각은 위험천만한 반지성적 행동이다. 일반 기업과 달리 대학은‘대학정신’과 구성원의 자율성에 근거한 합리적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교육부도 대학이 스스로의 품격을 잃지 않고 합리적 이성에 의해 발전가능한 미래를 모색할 수 있도록 긴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고, 불필요한 개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 脣亡齒寒의 교훈은 아무래도 오늘 우리 대학들에도 적용될 듯싶다.

김 영 논설위원/인하대·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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