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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근원적 성찰 돋보이는 문제작 여기 있다
삶의 근원적 성찰 돋보이는 문제작 여기 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3.25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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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소설학회가 엮은 ‘2015 올해의 문제소설’은?


대학에서 현대소설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들이 주축이 돼 매년 문예지에 발표된 소설을 대상으로 전문 연구자의 시각에서 작품을 골라낸다는 측면에서 『2015 올해의 문제소설』은 조금 독특한 위상을 보여준다.

 

한국현대소설학회(회장 최병우 강릉원주대 교수) 소속 현대문학 교수 350명이 한 해 동안의 문제적 소설을 선정해서 그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올해의 문제소설’은 2002년부터 진행돼 왔다. 최근 한국현대소설학회는 2013년 겨울부터 1년 동안 문예지에 발표된 중·단편 소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선별, 『2015 올해의 문제소설』(한국현대소설학회 엮음, 푸른사상, 2015)을 내놨다
. 문학사상사가 내놓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있긴 하지만, 전국의 대학에서 현대소설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들이 주축이 돼 매년 문예지에 발표된 소설을 대상으로 전문 연구자의 시각에서 작품을 골라낸다는 측면에서 『2015 올해의 문제소설』은 조금 독특한 위상을 보여준다. 이들은 여러 차례의 학회 세미나와 토론을 통해 기성의 명성이나 기존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 소설문학의 오늘과 내일을 가늠할 수 있는 ‘문학성’과 ‘문제성’을 지닌 작품을 솎아내려고 애썼다.


한국현대소설학회가 최종 선정한 작품은 모두 12편이다(표 참조). 과연 이들 현대문학 교수들의 시선이 가닿은 작품들은 어떤 면면일까. 소설이 동시대의 서사적 문제성을 한껏 머금고 있다면, 이들 전문가들이 선정한 작품을 통해 우리시대 삶의 척도, 문학적 상상력의 지평을 엿보는 것도 퍽 흥미로우리라.

『2015 올해의 문제소설』 은 이들 12편의 문제작을 수록하고, 여기에 각각의 해설을 덧붙였다. 기획위원회측은 “구성, 기법, 시점, 인물, 주제, 플롯, 화자 등과 같은 소설의 핵심 개념들을 바탕으로 한 작품론”을 통해 이들 문제작을 이해하는 길라잡이를 제공했다. 해설은 대학과 문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필진들이 맡았다.


수록된 12편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먼저, 삶의 부조리함을 직시하거나(「근린」), 현대인의 분열증을 역사적 사실과의 대면 속에서 상기하고(「거제, 포로들의 춤」), 진실을 향해 노력하는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한편(「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일제 식민지 이후 발전된 현실이라는 것은 상상일 뿐이라는 진단(「개들」) 등 현실의 근저를 향한 성찰적 글쓰기로부터, 번역과 글쓰기를 엮어 작가의 존재를 환기하거나(「번역의 시작」), 삶의 문제를 소설적 자아와 소설적 언어로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비와 사무라이」) 등 작가적 글쓰기에 대한 탐구까지 촘촘하다.


더 나아가 삶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지향하는 작품들도 섬광처럼 번쩍거린다. 비극적 죽음을 통해 유쾌하고 능동적인 삶을 그리거나(「카메라」), 죽음의 묘사를 통해 삶의 문제를 천착하기도 한다(「흔적」). 여기에는 실존 가능성에 대한 탐색(「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인간은 다시 혼자가 된다는 사실의 수용(「한지와 영주」), 혼자일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타자의 존재 의미(「영영, 여름」), 생의 덧없음이라는 보편적 주제(「나선의 방향」)를 다룬 작품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다음은 「비와 사무라이」(백민석)와 「영영, 여름」(정이현), 「거제, 포로들의 춤」(최수철)의 작품에 대한 김동환(한성대), 강유정(강남대), 박진숙(충북대) 교수의 해설 일부를 발췌했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백민석 作「, 비와 사무라이」: 소설의 언어로 세상 베기(해설 김동환 한성대 한국어문학부)

소설가 백가흠이 백민석에 대해 쓴 글에 이런 표현이 있어 흥미롭다. “만나보니 그의 말은 조금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우며 뭔가는 베는 데 쓰였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백민석이 보여주는 인물들의 언어는 현실에서의 언어와는 달리 베인 곳을 아물게 하는 데 쓰이고 있다. 그리고 그 힘은 머릿속 한켠에 ‘우울증’이나 ‘노숙자’처럼 나앉아 있는 분노나 원한들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 그것이 이 소설의 독자들이 다다라야 할 지점이다. 백민석의 소설이 전위적이라고 하는 말에 동의할 수 있다면 그 한 근거는 이러한 ‘낯선 사유 방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이현 作, 「영영, 여름」: 소녀는 모국어로 운다(해설 강유정 강남대 국어국문학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는 왜 글을 쓰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우리는 모두 지상에 홀로 있는 존재들이다. 나는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모르고, 당신도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모른다. 글쓰기는, 최선의 경우에, 고독함의 심연을 가로질러 놓이는 다리가 돼준다.”
말, 글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 안의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타자를 발견하게 해주고 그 타자를 통해 결국 나와 만나게 되는 그 경이로운 기적, 그것이 곧 말로 이뤄진 소설의 세계다. 정이현의 「영영, 여름」이 주는 그 공감은 곧 모국어와 그 속살이 이어준 세계의 가치이기도 하다.

최수철 作「, 거제, 포로들의 춤」: 포로-재현 불가능성의 아이콘과 소설의 리얼리티(해설 박진숙 충북대 국어국문학과)

작가를 비롯해 현대인이 느끼는 포로 의식의 한켠에는 자유에 대한 지향이 억압당하고 있음을, 그것은 파편의 적극적인 통합을 통해서만 극복 가능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재현 불가능한 것을 상상력으로 재현해 리얼리티를 만들어내었다.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성찰,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료 등은 덤으로 얻어진다.
이 소설이 의미를 갖는 것은 사진 한 장에 대한 추론 과정에서 현대인의 삶에 나타나는 나태 분열증, 수용소 의식, 포로 표상,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역사의 리얼리티가 현재 의식과의 대화를 통해 어떻게 탄생되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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