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23:25 (토)
[학술대회]독일학계 고민 담은 두 개의 학술대회
[학술대회]독일학계 고민 담은 두 개의 학술대회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11.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11-09 12:39:55
수수께끼 하나. 1996년에 조사한 통계에서 대학원생 포함 전공학생이 1만4천명, 전임교수는 4백14명, 61개 대학에서 73개의 관련학과를 둔 학과는? 답은 독어독문학과이다. 1996년 학부제 도입 이후 학과 존폐 여부까지 생각하게 되는 독어독문학과의 현실을 생각하면 화려한 과거가 아닐 수 없다. 독어독문학계의 외적인 침체 현상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생긴 일이다. 이 가운데 독일 관련 학자들이 학계 내부를 변화시키자는 열망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지난 19일부터 이틀동안 한국외국어대 외국학종합연구센터에는 창립 1주년 기념 한국독일사학회(회장 문기상 성신여대 교수)학술대회가 열렸다. 주제는 ‘독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한국의 독일연구 현황과 앞으로의 과제’.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지난 25일부터 이틀간 비슷한 주제의 학술대회가 개최됐다. ‘21세기와 독어독문학’을 주제로 강릉대에서 한국독어독문학회(회장 조견 성균관대 교수) 주최 제1회 한국독어독문학자 대회가 열린 것이다. 이 대회는 한국괴테학회, 한국독어학회, 한국독어독문학회, 한국독어독문학교육학회, 한국독일어교육학회, 한국브레히트학회, 한국카프카학회, 한국헤세학회 등 8개의 독문학 관련 학회의 참여로 이뤄졌다.

문학 중심 교육 변화없어

그런데 사학과 독어독문학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준비한 이 두 대회는 사실 같은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현재 독일 관련 학문들이 처한 현실이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하루빨리 변화를 이끌어 내야한다는 것이다. 독문학계의 뼈아픈 반성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김용민 연세대 교수(독어독문학)가 독일사학회에서 발표한 ‘한국 독어독문학의 현황과 미래’라는 글은 학계의 반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독어독문학은 사실 지난 반세기 동안 기존의 체제에 안주해 오면서 거의 변화를 모르고 지냈다”라며 내부를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던졌다. 일본 대학에서 독문학을 공부한 이들이 초기 독문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정해진 전공의 방향과 그 내용은 크게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돼 왔다는 것이다. 즉 한국의 독어독문학은 일제시대 문학부 교육의 목표에 따라 문학교육에 큰 비중을 뒀고, 어학 지식이나 실용적인 정보가 아닌 세상과 삶에 대한 심오한 성찰인 문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학계 근저에 놓여 현실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한국사회와 연관성, 한국학문에 대한 기여방법, 한국 독어독문학의 특수성에 대한 성찰을 통해 한국적인 독어독문학의 위상과 역할을 고민하고 정립하려는 노력보다는 독문학이라는 상아탑 속에 안주해 변화 없는 안정을 왔다는 평가이다. 이 자리에는 안병직 서울대 교수(서양사학과), 이규영 서강대 교수(국제대학원), 전성우 한양대 교수(사회학) 등이 참여해 각각 독일사, 독일정치, 한국인문과학과의 연계 방법에 대해 그 의미를 되묻는 작업도 시도됐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제 1회 한국독어독문학자 대회에서도 나타난다. 염승섭 계명대 교수(독어독문학)는 기조 발표문 ‘문화학적 전환에 대한 재고: 한국 독문학에 있어서 그 한계와 전망’을 통해 지난 20년 동안 독문학의 세계적인 추세는 문화학과 결합하고 있다고 개관하면서 한국 학계가 이런 문화화적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염 교수는 “한국의 상황은 미국 또는 독일의 상황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가져야 하는 답도 다르다”라며 “한국의 독일어문학자들은 문화학적 방법을 받아들이되 그 이론에만 몰두하기보다는 실천적인 면에서, 예컨대 의사소통능력을 기르면서 학제간의 또는 민족간의 상호협력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박이도 경성대 교수(독일지역학과)가 ‘EU의 제도적 개혁과정’을 최병진 목포대 교수(독일언어문학학과)를 비롯한 4명의 학자들이 ‘독일학 학술정보 시스템 구축과 검색’을 발표해 독문학의 세부적인 논의에서 탈피한 연구들이 주목을 끌었다.

그동안 독어독문학계 내부에서 자신의 방향을 설정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5년 한국독어독문학회 창립 25주년 기념 세미나에서는 ‘한국독어독문학의 새로운 방향 모색’이라는 주제로 토론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현재와 관련한 문학교육의 강화’, ‘시각과 접근 방식에 있어서의 주체성 확립’, ‘자주적 교육’, ‘외국어로서의 독일어 강조’라는 커다란 원칙이 새로운 발전 방향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이후 교육 현장에서나 연구활동에서는 충분히 실행되지 않았다. 기존의 방식으로도 학생들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985년부터 이어진 문제의식의 향방

1996년 역시 한국독어독문학회 주최로 ‘한국의 독어독문학 위기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고 독어독문학의 정체성을 전통적인 어문학 연구가 아닌 언어교육과 지역학 연구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 역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독어독문학계와 독일 관련 학계들이 다시 변화의 몸짓을 보이고 있다. 공허한 울림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1980년대부터 이어져온 학자들의 문제의식이 어떤 성과를 이끌어낼 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