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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를 고민하지 않는 엔지니어는 도구에 불과
당위를 고민하지 않는 엔지니어는 도구에 불과
  •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 승인 2015.03.2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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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94. IT가 구한 세상

▲ 세월호에서 인양한 학생들의 휴대폰. 김인성 M포렌식센터장은 이를 마치 유골 같다고 심경을 고백했다.『IT가 구한 세상』 책 표지 사진.
세월호가 침몰한 지 68일 되던 2014년 6월 22일, 세월호 내부에 설치된 CCTV 영상이 담긴 DVR이 발견된다. 이날 유가족의 요청으로 한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가 급히 목포로 내려갔다. 그는 하드디스크를 복구하기 위해 2달 동안 세척 및 클리닝 작업을 했다. 전문가는 데이터 복구 과정에 감정인 자격으로 수개월 동안 관리 감독한다. 그리고 마침내 70일간 침수됐던 2TB의 하드디스크는 진실의 조각을 드러낸다.


그 전문가는 바로 김인성 M포렌식센터장(전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이다. 김 센터장은 세월호 진실을 집중 조명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에서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로 인터뷰를 한 바 있다. 그런 그가 그동안 활동하며 진실을 밝혀낸 내용들을 묶어 『IT가 구한 세상』(홀로 깨달음, 2015.2)을 세상에 내놓았다.
김 센터장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세월호는 침몰했지만 디지털 기기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많은 디지털 데이터를 지키며 세월호의 진상을 원하는 분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는 세월호 희생자 휴대폰에서 데이터를 추출하고, 유가족들에게 세월호 CCTV 영상을 300개의 USB에 담아주는 작업을 진행했다.

글쓰기와 IT 지식이 결합해 세상을 구하다
김 센터장은 세월호 사건 때문에 대학교수까지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많았고, 충격이 컸던 탓이다. <교수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세월호에서 인양된 스마트폰, 카메라 등 디지털 기기에 대한 복구가 시급했다”면서 “소금기가 있는 바닷물에서 건진 디지털 기기는 곧바로 부식되기 때문에 인양되는 대로 작업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사고 수습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김 센터장은 “디지털 기기는 물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삭기 시작해 복구 작업을 완료할 때쯤 되면 완전히 가루가 돼 마치 유골처럼 변한다”면서 “이것을 본 부모님들은 또다시 통곡을 하곤 했다. 그때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고 답했다.


디지털 포렌식은 간단히 말해 디지털 증거를 분석하고 조사하는 것이다. 디지털 포렌식이란 컴퓨터 하드디스크, USB 메모리, 메인 메모리, 네트워크 장비, 인터넷 서버 데이터, 디지털 카메라, 스마트폰 등 다양한 디지털 기기에 존재하는 디지털 증거를 수집, 분석하는 일련의 작업을 뜻한다.


예를 들어, SNS 메시지를 삭제해도 서버에 남아 있어서 쉽게 찾아낸다. 스마트폰에서도 삭제된 메시지를 금방 되살려 낸다. 내 폰이 아니면 상대 폰에서 찾는다. 디지털 증거는 도처에 있다. 김 센터장은 “디지털 시대에 더 이상 비밀은 없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늘 찍는 스마트폰 사진엔 각종 정보가 기록된다. 이것을 EXIF(EXtended Image Format)이라고 한다. 사진을 찍은 날짜, 조리개 값, 노출 시간, 사진을 찍은 장소 등이 정보로 기록된다. 특히 휴대폰에서 나온 자료가 법적 증거로 쓰이려면 해시값 확인으로 디지털 포렌식 절차에 따른 증거 보전 작업을 시행해야 한다. 해시값(hash value)이란 파일 자체가 갖고 있는 고유의 코드를 뜻하는 것으로 일종의 전자지문이다.


세월호 침몰 후 학생들의 스마트폰을 복구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스마트폰의 데이터는 모두 저장장치로 쓰이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칩(eMMC 칩)에 담겨 있다. 데이터를 읽으려면 손상된 보드에 붙은 메모리칩을 분리해야 하고, 이를 위해 전용 장비에 보드를 올려놓고 열을 가한다. 보드에 있는 납이 녹아야 분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열을 올리면 칩이 손상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여기서 스마트폰 데이터 이미징 작업이 필요하다. 이미징이란 디지털 포렌식 기법의 하나다. 메모리칩의 모든 영역, 즉 데이터 저장소의 A부터 Z까지를 그대로 복제해 파일로 만드는 과정이다.

디지털 세상이 야기한 위험은 어떻게 하나
한편 이미 현대사회는 디지털 정보에 기반하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세상이 야기한 위험도 IT가 구할 수 있을까. 김 센터장은 “기술은 사용자에 따라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다”면서 “기술은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선악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한 예로 최근 카카오톡 감청 사태를 들 수 있다. 정부의 감청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은 결국 정부 감시를 피할 수 있는 개인 간 암호화 통신 기술을 도입하게끔 했다. 그는 “IT 기술은 개인의 자유를 확대해 왔다”면서 “미국 NSA는 RSA 암호화를 금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RSA(Rivest Shamir Adleman) 비대칭 암호화는 개인들이 정부의 감시를 피해 비밀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이다. 특히 독점적 자본의 횡포와 권력자에 대항해 싸워온 기술로 김 센터장은 오픈소스를 제시했다.


책에선 IT를 공정하게 사용할 의지에 대해 강조한다. 그런데 과학기술이라는 것이 활용하는 주체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라면, 과연 객관적인 것인지 의문이 든다. 즉 모든 사람의 편견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김 센터장은 “기술은 검증 가능성 때문에 객관적일 수 있다”며 “외부의 압력에 의해 결과를 조작한다 하더라도 제3자에 의해서 진실을 밝힐 수 있다”고 밝혔다. 즉 “주체에 따라 언제든 결과가 왜곡될 수 있지만 사실에 바탕을 둔 진실은 단 하나이기 때문에 주체의 공정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공정성은 책에서 주장하는 “당위를 고민하지 않는 엔지니어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과 연결된다. 그러면 당위라는 것의 공정성은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는가. 김 센터장은 “당위는 사실에 부합한 결과를 가감 없이 도출하는 것이다. 이것은 검증 가능성에 의해 정합성을 담보할 수 있다”면서 “그 이외의 모든 행위는 조작과 왜곡”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그는 “엔지니어가 당위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독가스의 살상력을 높이는 일만 생각하는 아우슈비츠의 화학자와 다를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 센터장의 궁극적 목표는 오래가는 글을 쓰는 것이다. 책에선 “잘 만든 SW가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지만 잘 쓴 글은 그보다 훨씬 더 크게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 같다”며 “오래도록 연마한 글쓰기라는 촉과 긴 세월 동안 체득한 IT 지식을 활용해 사회가 올바른 길로 가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독자들에게 다음을 당부했다. “생각의 장애물이 없어지고 스스로를 제한하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당신이 얼마나 위대한 인간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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