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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성찰의 때
자기성찰의 때
  • 정진식 한성대
  • 승인 2002.11.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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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정진식/한성대·문헌정보학

20여년 가깝게 학문의 길을 걸어오면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보직에는 연연하지 않았지만 지난해부터 본의 아니게 교수협의회 의장직을 맡게 됐고, 이를 통해 많은 교수들의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과정에서 교수사회가 심각하리만큼 오염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됐다. 그것은 바로 부정적인 사고에서 기인한, 상호신뢰성이 마비된 불신의 장벽이다. 이것이 어찌 어제오늘의 일이랴마는 이제라도 처방을 내리지 않는다면 한국 교수사회는 벼랑으로 추락하는 날개를 접을 능력을 상실하고 말게 될 것이다.

세인들이 생각하는 교수의 이미지는 선비 같은 신선한 자태와 학자적 양심을 지닌 도덕적 인격체로서 양보와 타협을 중시하며, 상대방의 의견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이 나라 최고의 엘리트계층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교수사회는 자기파멸을 초래하는 부정적인 사고와 자기편의 주의가 팽배해지기 시작하면서 교수사회는 혼탁해지기 시작했고, 대학의 좌표가 흔들거리는 위기에 처해있음을 바라보면서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나 뚜렷한 대처방안이 없어 그저 난감할 따름이었다.

도대체 중견 원로교수들은 후배교수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이며, 젊은 교수들은 후학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지금 우리에게는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고 존중하며 신뢰하는 긍정적인 사고는 물론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이 있어야할 때다.

6·25때 피난가다 겪었다고 하는 내가 존경하는 어느 목회자의 이야기와 설교메시지가 생각나 잠시 인용하고자 한다. 1백여명이나 되는 수많은 피난민들이 허기진 배를 움켜진 채 창고에서 밤을 지내게 됐다. 그때 어느 한 부인이 주먹밥 한 덩이를 꺼내서 막 먹으려 하는데 그것을 본 옆의 아이가 그의 엄마를 보고 칭얼대기 시작했다. 그 부인은 자기 밥의 반을 그 아이에게 나눠줬다. 그리고 나머지 밥을 먹으려는데 또 다른 아이가 보채 그 부인은 아무 말없이 나머지 밥의 전부를 건네줬다.창고의 피난민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부인은 선행의 쇼를 한 것도 아니고, 적선같은 과잉의식도 아니며, 사회의식 같은 동기에서도 아니다. 그저 동족에게 베풀 수 있는 지극히 사소한 눈물어린 동정일 뿐이다.이 사소한 행동으로 그 피난민들 사이에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요하고도 따사로운 감동이 번지고 있었다. 서로를 의심하고 누군가 나보다 더 많이 가졌을 것이라는 불신과 불만 같은 것으로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을텐데, 이 부인이 던진 조그마한 무언의 사랑의 자원은 실로 우라늄 광산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간의 정신자원을 보여준 것이다.

나는 이 사소한 나눔 속에서 우리 문제 해결의 중대한 실마리를 찾고 싶다. 사람은 서로가 빚진자이며, 우리가 가진 소유 가운데 내가 잘나서 얻은 것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내 몸이 그러하다. 내 정서와 지식과 의지가 그러하고, 내 사회적 신분과 재산과 재능이 그러하고, 건강과 부모 처자와 시간이 그러하고, 태양과 조국과 공기가 그러하다. 따지고 보면 순수한 내 것이란 하나도 없는 셈이다. 모두 창조주 하나님이 선물로 빌려주신 것이기에 죽을 때는 빌려쓴 것을 그 분께 반환하고 가는 것뿐이다. 그래서 소유는 책임이고 부채인 것이다.

심훈의 ‘그 날이 오면’이란 시에 보면 “그날이 오면/나는 나의 가죽을 벗겨/붓을 만들어/경축의 행렬에 앞장서겠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열정이 있어야 하며, 자기파멸을 초래하는 부정적인 시선에서 매사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편의만을 주장하며 남을 무조건적으로 판단하기 이전에 먼저 자신의 무지를 살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긍정적 사고는 대학발전에 플러스 요인이 되며, 에너지의 원천이요, 자신의 미래를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소산이 되는 것이다.자기자신의 절대 주체성과 자신의 절대성, 자기 자신의 충족성으로 완전무장된 갑옷을 과감하게 벗어야 할 때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남기기 위해 자신만을 생각하는 무
지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사고와 상대방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상호신뢰성을 회복할 때만이 우리 교수사회를 침식하는 불신의 장벽은 극복되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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