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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이 '무진장인 광산'에서 이제 무엇을 얼마나 캐낼텐가?
그대들은 이 '무진장인 광산'에서 이제 무엇을 얼마나 캐낼텐가?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3.23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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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8강. 박종현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플라톤 독법

‘문화의 안과 밖’시즌2는 지난 21일부터 본격적인 고전 탐사에 들어갔다. 2섹션‘고전시대’가 박종현 성균관대 명예교수의‘플라톤『국가(政體: Politeia)』그리고『법률(Nomoi)』’로 막을 올렸다. 박 교수는 어떻게 플라톤의 이 명저들을 재해석해냈을까.
그의 목소리를 듣기 앞서 간단한 약력부터 짚어보자. 그는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2년부터 2000년까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아테네대, 옥스퍼드대에서
연구했다. 한국서양고전학회 회장(1990~1992)을 역임했고 2007년 이후 아테네에 본부를 둔 국제그리스철학협회(IAGP)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적도 또는 중용의 사상』(2014),『 헬라스 사상의 심층』(2001), 『플라톤』(편저·1987, 개정증보판·2006), 『희랍 사상의 이해』(1982)가 있다. 그 동안의 플라톤 역주서로는『국가(政體)』(1997. 개정증보판·2005), 『네 대화편: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2003),『 법률』(부록:『 미노스』,『 에피노미스』)(2009) 등을 펴냈다. 『희랍 사상의 이해』로 열암학술상(1983), 플라톤 원전에 대한 역주로 성균가족상 대상(1999), 서우철학상(2000)을 받았고 2003년에는 그 동안의 학술적인 업적으로 제17회 인촌상(학술부문)을 받았다.
“이‘무진장인 광산’에서 무엇을 얼마만큼 캐내는가는 이제 그의 대화편들을 새롭게 읽는 독자들 각각에 전적으로 달렸다”라고 화이트헤드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날 강연 마침표를 찍은 박 교수는 꼼꼼하고 해박한 플라톤 접근로를 제시했다. 특히 박 교수는 플라톤의‘正義’로 번역된 해당 개념어를‘올바름’이란 우리말로 풀어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 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화이트헤드는 플라톤과 관련해 “그의 저술들은 시사해주는 바가 무진장인 광산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무진장인 광산’에서 무엇을 얼마만큼 캐내는가는 이제 그의 대화편들을 새롭게 읽는 독자들에게 전적으로 달렸다.

『국가(政體: Politeia)』: 국가(정체)』편 첫째 권은 나머지 아홉 권과는 별도로 먼저 썼고, 초기 대화편 성격을 갖는 것이어서, 『트라시마코스』로 따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소피스테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외항 피레우스로 축제 구경을 갔다가, 많은 재물을 취득한 노옹 케팔로스를 만나, 노령에 지내기가 어떤지를 묻고 노옹은 재산의 소유가 큰 기여를 한다고 말한다. 노옹의 이런 말을 간략하게 정리하는 형태로 “올바름’(정의 : dikaiosyn–e)을 정직함과 남한테서 받은(맡은) 것은 갚는(되돌려주는) 것이라는 식으로 단순히(hapl–os) 말할 것인지, 아니면 이런 걸 행하는 것도 때로는 옳지만, 때로는 옳지 못하다고 말할 것인지요?”하고 묻는다. 이들이 주고받는 긴 논의를 듣고 있던 트라시마코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면서 화를 내며, 소크라테스에게 올바름이 무엇인지를 직접 말할 것을 요구한다. 트라시마코스는 올바름은‘더 강한 자의 편익’이라고 거침없이 규정하고 이에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이‘편익이 되는 것’이란 점은 인정하나, 그게 강자의 편익일 수는 없다고 반론한다. 이에 트라시마코스는 실제 현실로는 올바르지 못함이 이득이 되고, 그런 사람들이 잘 살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올바름’과‘올바르지 못함’(adikia)을 그 기능(ergon)과 관련지어 반론한다.

『국가(정체)』편 제2권부터 제4권까지는 첫째 권에서 실패한‘올바름’의 의미규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초기 대화편들의 경우처럼, 올바름의 속성(pathos)만 말했지, 그것의 본질(ousia)은 아직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말의 의미규정(定義:horismos)을 격식대로 내린 것은 플라톤이 처음이다. 이 말의 번역어로 필자는‘정의’보다도‘올바름’을 앞세우는데, 그 이유는 앞으로의 논의 과정에서 확인될 것이다.‘ 성향(physis)에 따른’분업의 효용성 때문에 생기게 된 공동체인 나라는‘최소 필요국가’에서 시작해‘호사스런 나라’로 확대돼 감으로써, 나라를 지키고 다스릴 수호자들이 필요하게 된다. 이들이 수행해야 할 일은 다른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맡을 일보다도 더 중요하며 그만큼 더 전문성을 요하는 것이므로, 이에 적합한 성향의 아이들을 선발해서 교육하는 일이 중대한 문제로 제기된다.

제4권 끝에서 이제까지 언급한 나라 체제가 특출한 한 사람만을 배출했을 때는 왕도 정체(basileia)로 불리겠지만, 여럿을 배출할 경우에는 최선자[들의] 정체로 불릴 것이라 한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이런 나라 수호자들의 생활은 행복한 특권적인 것이 아니라, 통제된 공동생활이었다. 물론 이론상 시민 전체가 최대한으로 행복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봄으로써, 바로 그런 나라에서야말로‘올바름’이 실현돼 있을 것을 확인하기 위한 사고 실험이었다. 제5권에서 이 논의가 이어진다. 결국‘공유(koin–onia)’의 문제는‘공동 관여(koin–onia)’의 문제로 귀착돼, 교육을 받음에 있어서도 나라의 수호에 있어서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이런 나라의 이론적 수립은 그 실현성 자체보다도 이른바 ‘아름다운 나라’의‘본(paradeigma)’을 갖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현실 개혁을 기대해도 될 참된 철학자들이 그 지혜 사랑(철학)으로 해서 갖게 되는 참된 앎들과 궁극적인 앎은 도대체 무엇에 대한 것일까. 제5권 474b에서부터 제7권 마지막까지에 걸쳐 참된 앎(epist–em–e )과‘가장 큰 배움(to megiston math–e ma)’에 이르는 여정에 대해 말한다. 플라톤의 이른바 이데아 설 또는 형상 이론이 본격적으로 개진되고 있는 곳이 이 부분이다. 시가(mousik–e ) 교육과 체육(gymnastik–e ) 그리고 군사훈련을 거친 젊은이들이 다음으로 거쳐야 할 예비교육(propaideia) 과정으로서 ‘기하학이나 이와 유사한 학술들에 속하는 종류’(제6권 511b)의 학과목들이 제시된다. 이것들은 감각적 지각에 의존하지 않는 추론적 사고를 함양하기 때문이다. 이 추론적 사고 훈련의 끝 부분에 변증술(dialektik–e)이 제시되는데, 이를 두고 추론적 사고를 함양하는 모든 교과들 위에 마치 갓돌처럼 놓일 것이라고 말한다. 앎의 최종 단계는‘좋음(善) 자체’곧‘좋음의 이데아’를 알게되는 것인데, 이 앎을 그는‘가장 큰 배움’이라 말한다. 장차 나라를 통치하게 될 사람들이 이것을 지성에 의해 보게(idein) 된 다음에는 이를 본으로 삼고서, 저들 자신들과 나라를 번갈아가며 다스려야 할 것이라고 한다.

최선자[들의] 정체와 이를 닮은 철인 치자에 관련된 언급을 7권까지에 걸쳐 하게 됐는데, 이에서 멀어져가는 네 가지 유형의 대표적인 정체들과 이것들을 닮은 인간들을 제8, 9권에서 다루게 된다. 이것들은 최선자[들의] 정체와 최선의 인간성이 점진적으로 타락해감으로써 생기게 되는 형태들이다. 자유에 대한‘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apl–e stia)’과 그 밖의 다른 것에 대한 무관심(ameleia)은 결국 민주 정체를 몰락시킨다. 마침내 나라를 통째로 강탈한 참주(tyrannos)가 지배하는 참주정체(tyrannis)가 탄생한다. 제9권은 참주적 인간의 탄생과 그가 보이는 행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다. 10권은 내용에 있어서 거의 반분돼 있다. 608b까지는 詩와 관련된 것이고, 608c 이후는 각자가 이룩한‘훌륭함(덕)’에 대한 보답과 상에 관련된 것이다. 종래에 시가 거의 전적으로 떠맡다시피 한 교육을 이제는, 특히 이‘아름다운 나라’에서는, 철학이 떠맡을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언급한다.

『법률(Nomoi)』: 한 나라의 법률을 제정하려면 먼저 주목해야 할 기본적인 것이 있다.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내란(내분: stasis)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일면적인 것일 뿐인 용기의 고취보다는 [사람으로서의] 전체적인 훌륭함(sympasa aret–e )을 함양하고, 이에 주목하고서 법률 제정(nomothesia)을 해야만 한다. 이는 일단‘용기와 함께 올바름(정의)과 절제 그리고 지혜가 동일한 것에 합쳐지는 것’으로 제시된다. 이는『국가(정체)』편에서‘아름다운 나라’또는‘훌륭한 나라’와 아름다운 인격(가장 아름다운 인간)이 구비해야만 하는 덕목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교육(paideia)을 말하길, 그 요지는 ‘바른 양육’이겠는데, 제2권에 가면 이 교육과 [사람으로서의] 전체적인 훌륭함(sympasa aret–e )은 이름만 다를 뿐 같은 것이라 말하고 있다.

제3권 701d-e에서는 입법자가 법 제정을 함에 있어서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세 가지라고 하면서, “나라가 자유로우며 자체적으로 우애롭고 지성을 갖추게 되도록 입법해야만 한다”라고 말한다. 이런 결론을 내림에 있어서 그가 살핀 것은 전제적인 정체들과 자유로운 정체들 가운데서 유달리 번영을 누리게 되는 것은 적도 상태(metriot–es)를 취하게 됐을 경우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 극단은 노예 상태 또는 무정부 상태(anarchia)나 무법상태(anomia)로 치닫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법이 ‘지성의 배분(dianom–e)’(714a)이도록, 다시 말해 법조문 하나하나에 지성이 반영되도록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지성의 배분’이 제대로 된‘최선의 법률’, 나라 전체의 공동의 것을 위해 제정된 그런‘바른 법률’이 통치자들의 주인이고, 통치자들은 그 종들일 때에 비로소 나라에 구원이 기대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대화편의 유별난 특징 하나는 법률을 지극히 단순한 형식의 것으로만 불쑥 내밀 것인지 묻는 데 있다. 아무리 옳은 법일지라도, 강제보다는 교육을 통한 납득에 의해서 법을 따르도록 강조하는 것이 이 대화편의 기본 구상이기도 하다. 실상 이 대화편의 거의 3분의 2 분량이, 구체적인 법조문들보다도, 법의 정신을 말하는 철학적 논의를 담은 법률의 前文이다. 그래서 말하길 ‘가장 훌륭한 법의 기능’은“전반적으로 누군가가 무슨 방법으로든 불의는 미워하되 올바름의 성질은 미워하지않게 하는 것”(862d-e)이라 하는데, 이는 교육과 이성적 설득에 의해서나 가능할 것이다.

『국가(정체)』편(557b, 558c)에서도 언급하고 있듯, 일찍이 아테네는“자유(eleutheria)와 언론 자유(parrh–esia)로 가득 차 있어서, 이 나라에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exousia)’가 있었으며,”“무정부 상태의 다채로운 정체요, 평등한 사람들에게도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일종의 평등(isot–e s)을 배분해 주는 정체였다.”그러나 이는 여자에게도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인류사상 비로소 민주주의가 완전히 실현을 보았다고 드높이 칭송받아온 아테네의 그런 반쪽짜리 평등과 자유에 대해 플라톤은, 아니 그만이 유일하게 신랄한 비판으로 정색하고 맹공을 가했던 셈이다.

『법률』편은 현실적인 나라 수립을 위한 법률 제정을 다루는 대화편이다. 그런데도 이 대화편(781a-b, 804d-806c)에서는 그보다도 한층 더 강한 어조로, 그러면서도 더욱 설득력 있게 남녀평등을 말하고 있는데,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양성의 평등을 그만큼 선구적으로 외친 사상가는 없었던 것 같다. 법이‘지성(nous)의 배분’이 되도록 한다는 것은 법률 속에 지성이 최대한 반영되게끔 함으로써 법이 그 정당성(orthot–e s)을 확보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상황 또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맞아 법률을 보완하거나 개정해야만 할 경우들에 대비할 기구로 제시된 것은 제12권(949e-969d)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새벽녘] ‘야간 회의(ho nykterinos syllogos)’인데, 날마다 반드시 새벽녘에서 해가 뜰 때까지 회합을 갖는 것이다. 이 기구를 통한 법률의 상시적인 보완이야말로‘지성의 배분’으로서의 새롭고 때에 맞는 적도 또는 중용이 최대한 구현된 법률의 지속적인 확보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야말로 어쩌면 인류가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대의제도의 모델일지도 모를 일이다.

20세기의 큰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플라톤과 관련해서 많은 사람이 곧잘 인용하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유럽의 철학적 전통에 대한 가장 안전한 전반적인 특징적 규정은 그것이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언급하고 있는 바는 그의 저술 도처에 산재해 있는 전반적인 사상들의 풍부함이다. 그의 저술들은 시사해주는 바가 무진장인 광산(an inexhaustible mine of suggestion)이다.”이‘무진장인 광산’에서 무엇을 얼마만큼 캐내는가는 이제 그의 대화편들을 새롭게 읽는 독자들에게 전적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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