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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교수들', 그리고 懲毖
'최후의 교수들', 그리고 懲毖
  • 이연도 서평위원/중앙대 교양학부·철학
  • 승인 2015.03.2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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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이연도 서평위원/중앙대 교양학부·철학

▲ 이연도 서평위원
TV사극「징비록」이 화제다. 서애 유성룡이 임진왜란의 전후 상황을 기록한『징비록』은 그 내용의 참담함으로 읽어내기가 힘들다. ‘懲毖’는‘지난날의 잘못에 비춰 내일의 어려움을 방지한다’는『시경』「小毖」편의‘豫其懲而毖後患’에서 나온 말이다. 수년 전, 이 책을 번역할 기회가 있었는데, 최근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오백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당시의 상황과 지금 시대가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많다. 결국 사람 사는 일이란 비슷하구나 싶기도 하고, 과거의 잘못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懲毖’의 교훈이야 항상 되새겨야 하지만, 최근 우리 대학가에 불고 있는 바람이 심상치 않다. 이제 인문학의‘위기’를 얘기하기도 면구스러울 정도로, 대학의 비인기학과에 대한 압박이 본격화되고 있다. 프랭크 도너휴는『최후의 교수들』(차익종 옮김, 일월서각, 2014)에서 인문학이 현재 맞고 있는 문제를‘위기’라고 명명하는 것부터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위기’란 어떤 문제가 급작스레 떠올라 극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비상사태를 뜻하며, 이 고비가 지나면 각자 원래의 분야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기대가 내포돼 있는 단어라는 것이다. 이제 그러한 기대는 환상에 불과하다. 실상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나라의 대학 현실은‘인문학의 위기(humanities in crisis)’라는 이름으로 논의되는 것보다 훨씬 암울하다. 2008년 미국에서 출간된 책인데, 지금은 우리 대학 현실에서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최후의 교수들(The Last Professors)’은 제목도 그렇지만, 각 장의 제목들에서 느껴지는 암담함은 그 정도가 더하다.‘ 세익스피어와 호머가 무슨 쓸모가 있는가’,‘ 우수한 학생이 먼저 탈락한다’,‘ 떠오르는 비전임 강사 군단’,‘ 영리목적 대학에는 교수가 필요 없다’,‘ 브랜드 대학과 대량공급형 대학’. 대학과 기업 간의 뿌리 깊은 인문학 논쟁에서부터 언론사에 의한 대학 평가까지 한국 대학의 변화 모델이 원래 미국이었음을 실감케 하는 논의가 책 전반에 펼쳐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유용성과 효율성으로 대학사회를 재편하는 것이 과연 학생들에게‘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줬는가에 대한 실증적 검토와 함께, 교수들의 환상에 대한 비판 역시 신랄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교수들이 대학이라는 작업장 안에서 자율성을 확보했다고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강단 밖 사회에서 자신들의 지위가 어떤 지에 대한 현실 감각을 잃어버렸다고 평가한다. 그가 보기에 교수들이 자신들을‘공적지식인(public intellectuals)’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에 가깝다. 그가 인용한 스탠리 피시의 말이다.

“공적 지식인이란 공적 이해관계가 있는 분야를 떠맡은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법학 교수들도 이런 전문성은 있다. 공적 지식인이란 공적 이해관계가 있는 분야를 전문으로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가 하는 일이 공중의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대학교수들은 공적 지식인이 되겠다는 열망으로 추상적 시나리오를 늘어놓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있다. “즉 학문적인 견해란 그것을 포장하거나 해석하든, 또 어떤 경로나 네트워크를 통해 습득된 지식이든 대학 내부뿐 아니라 대학 바깥에서도 들릴 수 있어야 한다”는 자각이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기업과 고등교육의 관계를 놓고 벌어지는 논의에서 교수가 번번이 궁지에 몰리는 이유는 교수들이 대학 바깥 사회와의 소통 문제를 자각하지 못하고, 아울러 대학 안에서 지식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프랭크 도너휴의 지적은 뼈아프다. 그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 역시 인문학 교수의‘정체성 자각’이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교육부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학령인구의 감소도 이유지만, 더 큰 문제는 한국과 세계 경제가 이미 저성장의 구조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지금은 인문학이 위기지만, 결국 대학 자체의 존립이 문제되는 시기가 곧 닥쳐올 것이다. 그런 상황에선 어떤 대안이 나올까.

일부 교수들이 얘기하는 ‘교양대학(liberal arts college)’의 경우, 미국의 경험을 비춰보면 높은 등록금으로 소수 특권층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일본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국제교양대학’도 변형된 엘리트 교육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대학의 모든 교수가 전원 2년제 계약제인 것도 시사하는 것이 적지 않다. 한국 대학의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는 미국이나 일본의 사례에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懲毖’의 교훈을 깊이 생각해야 할 때다.

이연도 서평위원/중앙대 교양학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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