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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잘하는 남자
요리 잘하는 남자
  • 송명희 부경대·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5.03.16 13: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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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칼럼] 송명희 부경대·국어국문학과

"남자가 삼시세끼 밥 짓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아니 당당하기만 한 시대라는 것을 차승원은 몸소 보여줬다."

요즘 대한민국이 요리 잘하는 남자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다름 아닌 tvN의「삼시세끼-어촌편」이라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차승원이 그 주인공이다. 훤칠한 외모에 콧수염까지 길러 마초처럼 보이는 그가 매번 만들어내는 생선구이, 어묵탕, 해물찜, 식빵, 제육볶음, 막걸리, 김치…. 그의 손은 마법이라도 부리듯 동서양의 온갖 요리들을 뚝딱 만들어낸다.

그의 능숙한 칼놀림은 그가 요리학원이나 다니며 배운 요리를 얼치기로 흉내 내는 수준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다. 주방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노하우가 아니었다면 조리기구나 식재료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그처럼 환상적인 음식들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에 시청자들은 더욱 환호하는 것이다. 여성시청자들은 그런 남자와 한번 같이 살아봤으면 원이 없겠다는 판타지에 사로잡히는가 하면, 그의 아내는 대체 어떤 복을 타고났기에 연하의 훈남, 거기에다 요리까지 잘하는 남편과 같이 사는 것일까 하는 선망에 빠져든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루 삼시세끼 밥 짓는 일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남성은 들판에서, 여성은 가정에서/ 남성은 劒을, 여성은 바늘을/ 남성은 머리로, 여성은 가슴으로/ 남성은 명령하기 위해, 여성은 복종하기 위해/ 나머지 모든 것은 혼동이라네”라고 노래했던 것은 동양인이 아니라 영국의 계관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이다. 이 시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은 뚜렷하게 구분돼 있다. 남성과 여성은 일하는 공간과 하는 일이 각각 달랐으며, 이성적 존재와 감성적 존재로 구별됐다. 그리고 남녀관계에서 명령과 복종의 권력관계는 당연시됐다.

사회학자 탈코트 파슨즈는‘도구적 남성, 표현적 여성’이라는 말로 남녀의 성역할을 구분했다. 도구적 남성은 직업을 갖고 적당한 수입을 벌어들임으로써 남편과 아버지로서 공동체 내에서 지위를 보장받았다. 반면 표현적 여성은 아내나 어머니로서, 또는 안주인으로서 가족집단을 통합시켜 나가는 정서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하지만 21세기에는 더 이상 성역할 고정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삼시세끼」의 차승원은 온몸으로 증명해냈다. 더욱이 그는 만재도를 떠나면서 가족을 위해 겉절이를 미리 만들어 놓는가 하면 멀리서도 전화로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나 깨나 가족을 배려해온 어머니의 모성에 다름 아니다.

그를 보면 남성과 여성이란 젠더(gender)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도, 고정불변의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사회문화적 구성물이다. 현대에 와서 가부장제에 기반을 둔 성역할의 스테레오 타입은 급속히 깨지고 있다. 호주제가 폐지된 오늘날에는 남녀관계에 더 이상 수직적 윤리규범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남녀 모두에게 수평적 인간애에 기반을 둔 공생과 배려가 요구되고 있다.

남자가 삼시세끼 밥 짓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아니 당당하기만 한 시대라는 것을 차승원은 몸소 보여줬다. 한 매력적인 남자배우가 출연한 허구가 아닌 리얼 프로그램이 구시대적 고정관념에 빠져 있던 남성들을 온통 흔들어버린 것이다. TV매체가 보여준 막강한 영향력이다. 차승원, 그야말로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갖춘, 즉 양성적 인간의 모델이다.

그가 얼마나 남성적인 남성인가는 그의 마초적 외모가 아니라 지난해 그의 아들 노아의 친부라는 남자가 나타났을 때, “마음으로 낳은 아들 차노아, 선택 후회 없다”라며“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끝까지 가족을 지켜나갈 것이다”라고 의연하게 대처했던 데서 잘 확인된다. 동시에 그는 남을 잘 배려하고 요리까지 잘하는 여성성을 갖추고 있다.

양성성이란 주체성, 적극성, 능동성, 책임감, 용기, 지도력, 분석력, 활동성, 자신감, 합리성, 이성, 결단력, 성취욕과 같은 남성성의 긍정적 자질과 타인과의 공생과 배려, 풍부한 감성, 따뜻한 마음, 직관적, 정열적, 개인적인 것과 같은 여성성의 긍정적 자질을 조화시키고 통합한 인간적 자질을 의미한다. 이제 남녀 모두 성역할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독립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양성적 인간으로 거듭남으로써 가정과 사회에서 서로 유연하게 협력하고 공존해 나가야 할 시대가 됐다.


송명희 부경대·국어국문학과

고려대에서‘이광수의 문학비평연구’로 박사를 했다.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장,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 회장, 한국언어문학교육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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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영 2015-03-20 13:37:56
좋은 내용입니다. 홧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