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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임종 돌봄을 어떻게 하는가
일본은 임종 돌봄을 어떻게 하는가
  • 교수신문
  • 승인 2015.03.1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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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임종’다룬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국제학술대회

지난달 25일 한림대 생사학연구소(소장 오진탁)가 주최한 국제학술대회‘죽음과 임종에 대한 동아시아의 이해’는 ‘임종’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자리였다. 특히 이날 발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시미즈 테쓰로 도쿄대 교수는 일본 문화에서 통용되는 죽음 이해를 소개하면서 임종 돌봄의 방향을 검토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임종 돌봄과 관련해서는 연명이 우선인가 아니면 삶의 질을 강조하는 완화의료가 우선인가의 쟁점을 설명했다. 이어 안락사나 존엄한 죽음의 문제를 포함해서 남은 생명이 단축되는 문제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데 있어서 용어를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시미즈 교수의 발표문을 발췌했다.

‘존엄사(death/dying with dignity)’를 일본에서는 종말기에 무의미한 연명의료는 하지 않고 고통 완화만을 하며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가리키는 술어로 이해한다는 점이 왜 부적절한지 설명하겠습니다. 한편으로 현재 ‘존엄사’는 적어도 인터넷 검색에 한해 볼 때 미국 오리건 주의 존엄사법으로 대표되는 ‘의사가 방조한 자살’과 동일시됩니다. 그러나 어느 쪽도 부적절합니다. ‘death with dignity’는 보통명사로는 사람이 마지막까지 존엄을 유지하며 산다는, 모든 사람이 그리 되는 것이 바람직함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end of life care(이전에는 terminal care)의 목표를 나타내는 말로 이야기됩니다. 여기서도 ‘존엄을 유지하며 죽다’는 특정한 죽음의 방식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마지막까지 존엄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케어를 하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보통명사 ‘존엄을 유지하며 죽음에 이르다(마지막 생을 살다)’와 술어화된 일본이나 미국의 상기 용법 등은 어떤 의미에서 ‘존엄한 죽음’을 말하는 것일까요.
영어사전을 찾으면 ‘dignity’에는 세 가지 의미 내지 용법이 있다고 합니다.
① 위엄 있는 모습·행동: 이것은 예를 들면 극 중에 등장하는 황제나 교황 같은 권위 있는 이들의 외관이나 행동방식을 상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② 존중할 만한 성질: ‘존엄’은 가치 중에서도 ‘존귀한 것으로 소중히 여기다(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성질)’라는 뜻이므로 ‘X에는 존엄이 있다’는 말은 주위 사람들에게 ‘X를 존중해 소중히 대하라’고 지시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일본어로 바꿔 말하면 ‘X를 함부로 농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겠지요. 이러한 의미에서의 존엄은 결코 손상되지 않고 변함없습니다.
그러나 ‘존엄에 반하는 행위’를 X에 대해 일부러 행하는 경우는 있겠습니다. 즉 X를 농락하는 듯한 행동은 ‘존엄에 반하는’ 것이며, ‘존엄을 손상시키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또한 ‘수정란에도 생명의 존엄이 있다’고 할 때는 보통 ‘그러므로 수정란을 실험에 사용하는 것은 생명을 농락하는 행위로 그리 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이어집니다.


③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누군가의 존엄’): 이것은 주관적 자기평가 방식으로, 자신의 생을 긍정할 수 있는 방식을 뜻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자율을 잃었으므로 나의 존엄은 손상됐다’는 식의 주관적 평가이기 때문에 이러한 의미에서의 존엄은 ‘손상되는 일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②와 ③ 사이는 느슨하게 연관됩니다. 보통 ‘존엄을 인정해 아껴주고 존중해주는 대우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반대로 ‘존엄에 반하는 학대를 받은 사람’은 그 학대가 심할수록 스스로도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해 나의 존엄이 짓밟혔다·손상됐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존엄’에 대한 세 가지 의미 중 ②와 ③은 ‘존엄한 죽음’이라는 표현에서 사용됩니다.


(1) ‘존엄을 갖고 죽음에 이를 때까지 산다(dying with dignity)’는 말이 end-of-life care나 완화 케어에서 사용될 때, 그것은 케어의 목표를 제시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 경우 ‘존엄’은 첫째로 [의미③] 당사자의 주관적 자기평가를 뜻합니다. 즉 당사자가 현재의 생을 긍정하면서 적극적으로 자기답게(=존엄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케어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둘째로 [의미②] 케어 시 당사자에 대한 자세(respect를 갖고 대응)까지 함의하는 문맥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무리한 연명은 당사자의 생명을 농락하는 듯한 것으로 학대와 동일하다’라는 말에는 [의미②]의 존엄이 담겨있습니다. 즉 존엄을 유지하며/존엄을 인정하며 연명을 하지 않는다·중단한다는 선택을 하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2) 식물인간 환자의 호흡기를 제거하는 것을 인정해달라고 호소한 재판이 있었습니다.(카렌 퀼란의 케이스 등), 이 경우는 [의미②]에 기초해 무리하게 살려두는 것이 존엄에 반한다(농락하는 것)는 생각에서 ‘존엄한 죽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3)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안 했으면 한다’는 것이 ‘존엄사’라고 불리게 된 것은 먼저 위의 (2)와같이 [의미②]에 의한 것일 테지만, [의미③]도 들어간 것 같습니다. 즉 무의미한 연명을 하지 않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편이 적극적으로 자기답게 사는 것이라 해서 ‘나의 존엄’을 잃지 않겠다는 목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4) 오리건 주의 PAS라든지 네덜란드 안락사의 여러 케이스에서는 예컨대 자기가 자기에 대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면 존엄을 잃는 것이므로 그리 되기 전에 죽음을 택하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존엄한 상태를 지킨다(지킬 수 없게 되면 죽음을 택한다)는 방식이므로 존엄의 [의미③]을 쓰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존엄한 죽음’의 여러 가지 사용법을 보면, 이 가운데 어느 뜻에 한정해 ‘존엄사’나 ‘존엄한 죽음’을 술어처럼 쓰는 것은 부적절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보통명사적인 ‘존엄한 죽음’을 이해하고, 그 일반적 의미에 기초해 개별 장면에 적용돼 쓰이는 것을 보면 전체를 통일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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