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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춧돌부터 다지는 ‘木手型총장’ 성장 넘어 성숙을 지향하다
주춧돌부터 다지는 ‘木手型총장’ 성장 넘어 성숙을 지향하다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5.03.09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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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3개월 맞은 이남호 전북대 제17대 총장

이남호 전북대 총장(56세)의 전공은 목재 건조다. 압체 고주파 진공건조 방법(2002), 통대나무의 쪼갬 방지를 위한 건조방법(2004) 특허도 갖고 있다. 야구 방망이에도 활용된다. 7~8년 전만 해도 프로야구 선수들은 일본에서 수입한 방망이를 사용했다. 한 자루에 30만원이 넘었다. 국내 스포츠용품회사에 이 기술을 전수하면서 가격이 10만원대로 떨어졌다. 지금은 80% 정도가 국산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대호 선수는 일본 진출 첫해 슬럼프에 빠졌다가 이 방망이로 바꾼 후 연일 홈런포를 터트렸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추신수 선수도 클리블랜드 시절 이 방망이를 사용했다. 복원 과정에서 균열이 발생해 논란이 됐던 광화문 현판도 이 총장이 건조 작업을 맡아 문제를 해결했다.
산학협력단장을 3년 정도 맡은 것 외에는 별다른 보직 경험이 없었던 그가 총장 공모에 나섰고, 전북대 제17대 총장이 된 것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연령에 따라 역할 변화가 필요하다. 현장에서 교육, 연구를 활발히 할 시기가 있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누군가는 그분들이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 총장은 “젊었을 때 교수회 사무처장을 하면서 대학본부에 비판적인 입장에서 일을 했었고, 50대 초중반에는 산학협력단장을 하면서 대학을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도 가졌다. 전북대 재도약을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발전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제2의 성장’은 이 총장 개인뿐 아니라 전북대에도 필요한 과제다. 그가 ‘성장을 넘어 성숙으로’라는 대학운영 방향을 강조하는 이유다. “수치 중심의 성장은 한계가 있다. 성숙에는 한계가 없다. 이제 ‘빠른변화’보다는 ‘바른변화’를, ‘짧은호흡’보다는 ‘긴호흡’을 추구해야할 때다. ”‘레지덴셜 칼리지’와 ‘오프 캠퍼스’를 통해 전북대만의 색깔 있는 인재를 만들고, ‘세계에서 가장 걷고 싶은 캠퍼스 둘레길’과 같은 보이지 않는 가치를 통해 전북대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나가는 길은 바로 그 성숙을 위한 ‘주춧돌’을 새로 다지는 작업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14일 취임해 3개월을 맞은 이 총장을 만났다.

●일시 및 장소: 2015년 3월 3일(화) 오전 10시 전북대 서울사무소
●대담: 최익현 편집국장
●정리: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이남호 전북대 제17대 총장은… 1959년 전북 남원 출생. 전주고와 서울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국립 익산대학 교수를 거쳐 1997년부터 전북대 교수로 재직해 왔으며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전북대 산학협력단장을 역임한 바 있다.  전북대 농업과학기술연구소 소장, (사)전북대 자동차부품금형기술혁신센터 이사, (재)전북테크노파크 운영위원, (주)전북지역대학연합기술지주회사 이사 등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목재공학회 이사, 한국가구학회 이사, 전북 생명의 숲 운영위원, 전라북도 과학기술위원회 위원, 한국식품연구원 지방이전 자문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북대가 총장 직선제를 폐지한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공모제에서 1순위 후보자로 선출돼 2014년 12월 14일 제17대 총장에 취임했다.

△ 요즘도 새벽 1~2시가 넘어 퇴근한다고 들었다.
“임기 초반에는 생각의 공유가 필요하다. 총장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문서나 글로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다.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그게 안 된 상태에서 나를 따라와라, 이렇게 해서는 일이 안 된다. 회의나 공식 일정이 저녁이나 주말까지 잡혀 있는 경우가 많아 낮에는 서로 시간에 쫓기게 된다. 차분히 들여다보며 얘기도 나눠야 하는 중요한 자리는 오후 9시 이후에 잡는 편이다.”

△ 대학운영의 기본 방향을 ‘성장을 넘어 성숙으로’라고 밝힌 대목이 인상적이다. 대학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지난 10년간 다른 대학들이 부러워할 만큼 외형적으로 빠르게 성장해왔다. 그러나 성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동물이나 식물, 사람도 외형적 치수는 일정 시기에 도달하면 정체된다. 그럼, 그 다음은 없나? 그 다음 단계가 바로 성숙이다. 성장을 기반으로 한 제2의 성장, 한계가 없는 성장. 그것이 성숙이다. 성장은 내부 인테리어만 손보는 것이다. 지붕 모양을 바꿀 수 없다. 성숙은 ‘주춧돌’을 새로 놓은 것이다. 주춧돌을 놓아야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릴 수 있다. 제2의 도약을 위해선 새로운 지붕을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걸린다. 필요한 주춧돌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고,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야 한다. 성장이 빠른 성과를 기대한다면 성숙은 호흡이 길다. 성장이 빠른 변화를 원한다면 성숙은 바른 변화다.”

△ ‘성숙’의 가치를 구현해갈 방법은 무엇인가.
“성장이 지표, 수치를 중시한다면 성숙은 가치, 브랜드를 주목한다. 가치를 통해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만이 잘할 수 있는 것, 우리만이 가진 것을 찾아 전북대만의 명품 브랜드를 만들자는 것이 성숙의 기본 뼈대다. 우리 대학은 천혜의 생태·경관 자원을 갖고 있다. 150㎡(45만평)에 이르는 건지산 학술림이 있고 그 안에 오송제 호수, 덕진공원이 있다. 전주가 조선의 본향이라고 하는 이유가 전주 이씨의 시조묘가 있기 때문인데 그게 우리 학교에 있다. 전북대 하면 몇 위 몇 위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걷고 싶은 둘레길이 있는 대학, 역사적 자원이 있는 대학. 이런 것을 통해 전북대만의 브랜드를 만들겠다. 성장시대에는 가치로 보이지 않던 것들이다. 대학평가지표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가치들이 전달되면 인지도가 높아지고, 우수한 학생이 오고, 취업의 질과 양이 개선되고, 중도탈락률을 낮출 수 있다. 통 큰 기부도 들어오리라 생각한다. 또 하나, 전북대는 문화·예술이 강하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가 동문이다. 대학이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갖고 있다고 하면 품격이 달라진다. 그것이 대학다운 대학이 가야할 길이다.”

△ 성숙을 통한 성장이 교육에서 나타난 게 바로 ‘레지덴셜 칼리지’와 ‘오프 캠퍼스’가 아닌가 생각된다.
“대학교육이 ‘스펙 쌓기’와 ‘학원형 교육’으로 흐르고 있다. 상위 20% 학생을 위한 교육을 하고 있다. 나머지 80%는 어떻게 할 것이냐. 스펙만으로는 안 된다. 전북대만의 색깔 있는 인재를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바로 ‘레지덴셜 칼리지’와 ‘오프 캠퍼스’다. 레지덴셜 칼리지는 모든 학생이 1년 동안 기숙사에 입주해 생활하는 과정에서 인성과 사회성, 창의성, 문제해결능력 등을 기르는 생활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지금 기숙하는 밥 먹고 잠자는 하숙집이다. 생활교육 기능을 가미해 전인교육의 장으로 바꾸겠다. 공동체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능력, 다문화 포용력 등 6학점을 이수하도록 할 계획이다. 오프 캠퍼스는 최소 한 학기 이상 다른 나라나 지역에서 생활하며 현지 문화를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우리 대학이 추구하는 인재상인 ‘큰 사람’은 실력과 인성을 모두 겸비한 인재를 뜻하는데, 진정한 큰 사람을 양성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2학기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간다.”

△ 취임사에서도 언급했지만 지금 우리 대학이 두 가지 난제를 안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재정 압박을 받고 있지만 교육·연구의 질은 끌어올려야 한다. 어떻게 풀어갈 생각인가.
“교육부에서 지원하는 재원은 인건비 등 대부분 경직성 경비다. 등록금을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발전기금도 기부문화가 활성화하지 않은 여건에서는 지방대로서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결국 남는 것은 연구비 수주다. 정부 R&D 예산이 올해 19조원이다. 교육부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시장을 봐야 한다. 산학협력단장 할 때 연간 연구비 수주 1천억원 시대를 열었다. 교수 1인당 연구비 규모는 국립대 가운데 3년째 1위다. 그런데도 전체 R&D 예산의 0.5%를 넘지 못한다. 연구비 수주액 연간 2천억원 시대를 열어 4년간 총 7천억원을 확보하겠다. 연구비를 많이 수주하면 간접비도 증가한다. 대학예산에서 지원하던 연구비를 정부 R&D 예산으로 충당하면 그만큼 여력이 생기고,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 쓸 수 있다.”

△ 과거 산학협력단장으로 재직하면서 ‘연구비 수주 연간 1천억원 시대’를 열었다. 비결을 꼽자면.
“기본적으로는 투자를 해야 한다. 선 투자. 농사짓는 데 비유를 많이 하는데, 대개의 대학은 돈을 은행에 쌓아두려 한다. 돈 없다고 아끼기만  하면 싼 종자를 살 것 아니냐. 인건비 부족하다고 잡초 제거도 잘 안하고, 기본 인프라인 저수지도 안 만들고. 연구비는 그런 인프라 없이는 안 된다. 저수지 만들어도 당장 효과가 없으니 비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해서는 수확량이 확 줄 수밖에 없다. 그럼 그 다음해 농사는 더 어려워진다. 그렇게 악순환으로 가면서까지 은행에 돈을 쌓아놓을 필요가 있을까. 좋은 종자 살 수 있게 지원하고 내후년 농사 잘 짓게 저수지 만드는 데 투자해야지. 산학협력단장 하면서 그런 연구학술지원사업 21개를 새로 만들었다. 서울에 게스트하우스를 처음 만들었다. 공무 출장 때 이용할 수 있는 학교택시도 있다. 그렇게 하니 활동이 더 활발해지고 연구비가 늘더라. 연구비 늘면 간접비가 증가하고, 더 좋은 정책을 할 수 있는 예산이 생긴다. 연구 인프라를 확충하고, 감동을 주는 서비스로 연구 의욕을 고취하는 선순환 구조로 풀어가야 한다고 본다.”

△ 특성화 사업을 하면서 2017학년도까지 정원을 10%로 줄이기로 한 것도 당장 풀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다.
“올해 정원 감축은, 전임 총장 시절에 구성원 의견수렴을 통해 정한 원칙이 있고 그에 따라 감축 방안을 제출했다. 앞으로도 더 줄여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는데, 거점 국립대로서 공공의 책무, 사회적 책무가 있다. 기초학문에 대해서도 거점 국립대가 지켜야 할 선이 있다. 그런 방향을 유지해가면서 (정원 감축 방안을) 고민하고, 구성원과 충분히 토론해서 정리해갈 생각이다.”

△ 기초학문 보호를 얘기했는데, 정부에서는 산업 수요 중심 학과 개편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거점 국립대는 대학교육의 마지막 보루다. 단순히 취업이 안 된다고 폐과를 하거나 정원을 줄이는 형식의 구조조정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국립대의 경우에는 그런 학과를 보호하고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고, 정부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다만, 현장에서 보면 조금 과한 부분도 있다. 인문학을 예로 들면, 인문학 교육이 꼭 전공하는 학생만 대상으로 삼아야 하나.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앞으로 가야 할 모습 아닐까. 전공은 유지하되 과한 정원은 내놓자는 것이다. 나머지는 레지덴셜 칼리지나 오프 캠퍼스에 들어가는 콘텐츠,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교육의 영역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래도 기초학문 분야는 조건이 좋은 편이다. 내 전공이 목재인데, 전공 인원이 줄어들면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다. 자기 학과가 아니라 전체 학생들에게 전자공학을 가르칠 수도 없지 않나. 수학, 생물, 물리, 인문학. 이런 기초학문 분야는 전공 영역 외에도 할 수 있는 역할이 많다. 자꾸 자기 학과 학생만 쳐다보면 불행해진다. 스스로 없어지는 것 같고. ”

△ 대학의 경쟁력은 결국 교육과 연구에 있고, 그것을 책임지는 것은 교수들이다.
“지금 전임교원이 1천32명인데 1천100명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68명을 늘려야 한다. 출발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글로벌 명문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적으로 톱 랭킹에 들어가는 학문분야 2~3개는 있어야 한다. 농업용 로봇만큼은 우리가 세계 최고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글로벌 넘버 원 분야가 되려면 그 분야 교원이 30명은 돼야 한다. 가뜩이나 정부가 배정하는 교수 TO가 부족한데 다른 학과 정원 뺏어서 다른 학과에 주는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 국립대에는 국비 조교가 있다. 국비 조교 정원 가운데 60명을 전임교원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실제로 2~3년 전에 국비 조교 정원 7명을 회수해 이 중 일부를 전임교원으로 바꾼 사례가 있다. 대신 학과에는 교비에서 급여가 나가는 교비 직원을 주겠다. 기존 직원을 배치하거나 새로 뽑아야 하는데, 그 직원 인건비는 간접비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국비 조교는 대개 2~3년마다 바뀐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교비 조교가 되면 정년 때까지 채용할 수도 있고, 우리도 외국처럼 행정 전문성을 가진 할머니 조교가 가능하다. 교육부나 안전행정부, 기획재정부도 제도적으로도 그런 길을 좀 열어줬으면 한다.”

△ 임기 동안 이것만은 꼭 이루고 싶다고 하는 게 있다면.
“연구·융합 중심의 약학대학 유치다. 전북대가 새로운 영역을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다. 개업 약사가 아니라 연구·임상 약사를 양성하겠다. 일본은 약대 졸업생의 55%가 연구직에 종사하고 미국도 50대 50 정도다. 선진국은 연구직으로 가는 것을 당연시한다. 우리는 80%가 약국 개업한다. 창조경제 시대에 블루오션을 만들어야 하는데 신약 개발이 그것이다. 중추 인력인 약대 졸업생을 개업약사로 인식해서야 신약이 나오겠나. 선진국처럼 연구직 종사자 비율을 늘려야 한다. 전북대는 의학, 치의학, 수의학 분야는 물론 자연과학, 농생명, 고분자나노 및 화학공학 분야 등 신약 개발을 위한 학제 간 협동 기반을 잘 갖추고 있다. 임상시험센터도 8개나 운영하고 있고, 아시아 최대 규모의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도 갖고 있다. 그런데 톱니바퀴 하나가 빠져 있다. 동물의약품 개발에 관심이 많다. 약대가 들어오면 전북대가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다. 전북지역은 생명산업 집적화 지역으로 연구 분야에 집중할 약사가 필요하다. 신약 개발 등을 통해 국부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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