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와 부끄러움, 문학과 예술에 대한 단상
도끼와 부끄러움, 문학과 예술에 대한 단상
  • 최성만 서평위원/이화여대·독문학
  • 승인 2015.03.0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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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최성만 서평위원/이화여대·독문학

문학이란 무엇이고, 책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꽤 잘 알려진 카프카의 고백이 있다.

▲ 최성만 서평위원
“내 생각에 책을 읽는 사람을 꽉 깨물고 콕콕 찔러대는 것만 읽어야 할 것 같아.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자네가 편지에 쓴 것처럼 우리가 행복하려고 읽는 걸까? 맙소사, 설령 책이 한 권도 없다 해도 우리는 역시나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또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책은 필요할 경우, 우리가 손수 쓸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책이 필요한 거야.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 같고, 우리 자신보다도 더 끔찍이 사랑했던 그 어떤 사람의 죽음 같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뚝 떨어져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이 필요하지. 책이란 무릇‘우리 안에 있는 얼어 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카프카가 친구 오스카 폴락(Oskar Pollak)에게 보낸 1904년 1월 27일자 편지글의 일부다.

무릇 글이란 실존적 절박함에서 나와야 독자에게 울림을 준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지만 카프카의 이런 격률을 그대로 따른다면 글을 쓰기가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특히 평범하면서도 진기한 경험을 풀어내며 지혜를 전해주고 삶에 유용한 조언을 해주는 이야기꾼의 전통과는 맞지 않아 보인다. 이야기의 전통에는 고립된 상태에서 침묵하며 소설 속으로 빠져드는 고독한 독자보다는 공동체 속의 청중이 있다. 즉 좋은 책, 필요한 책에 대한 카프카의 생각은 현대에 들어 심화되는 서사와 재현의 위기 속에서 돌파구를 모색하는 고급문학의 전통에 더 어울린다.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충격체험이 규범처럼 돼버린 현대, 그렇기 때문에 그 충격을 피하거나 충격에 자동적으로 반사하며 익숙해짐으로써 웬만한 충격도 충격으로 느끼지 않는 현대의 상황에서 진정한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와 같은 것이라는 카프카의 이 말에—한편으로 불편하면서도—대체로 공감한다.

올해 시인 윤동주가 서거한지 70주년이 됐다. 그의 시들은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고 있어 그를 기리는 모임까지 있다고 한다. 나는 그의 시들에‘부끄러움’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고, 그것에 사람들의 마음이 공명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시구도 위의 카프카의 말과 상통하지 않을까.

세상에 떳떳한 사람이란 없다. 문학과 예술도 마찬가지다. 무릇 문학·예술은 포만함과 풍부함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결핍과 고통에서 나온다. 그런데도 자족적이고 자아도취적인 것이 어디 세상 권력뿐이겠는가. 문학·예술을 창작하고 비평하는 사람, 아니 인문학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도 여전히 스스로를 혼탁한 세상과 변별시키며 문학·예술을 신성시한다. 그러나 문학·예술이라는 영역과 틀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특히 현대 이후 끊임없이 해체돼 왔고 그것은 좋은 일이다. 문학이나 예술이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문학이 세상을 책임질 수 없게 돼버린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 아닌가.

그렇지만 문학·예술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문학적’,‘ 예술적’이라는 형용사로 바뀌어 삶의 여러 영역으로 확산돼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삶이라는 것이 짐짓 객관적인 사실과 지식의 더미로 환원될 수 없는 불가해한 것이고 재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고, 자유로운 주체(성)의 욕망과 의지가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학’이라는 철학의 영역이 근대 이후 점차‘(심)미적 경험’이라는 형용사로 바뀌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문학창작은‘글쓰기 방식’으로 문학은‘텍스트’로 순화되고 외연이 넓어졌다. 철학과 사상이라는 말도 스스로 부끄러워지고 (시대에 따라 변하는) ‘이론’이나‘담론’으로 겸손해지면서 구체적 경험세계와의 인접성도 커졌고 인문학을 넘어 지식의 전 영역으로 확산됐다. 다만 대학의 학과들처럼 세상을 규율과 훈육으로 다스리는 권력 또는 자본과 결탁된 여러 제도가 여전히 화석화된 형태로 남아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밖으로 이러한 세상 권력에 순응하지만은 않고 그에 맞서면서, 또 안으로는 얼어버린 바다와 같은 내면을 깨는 도끼와 같은 무엇을 갈구하는 한, 희망이 있지 않을까.

진정한 문학과 예술, 참다운 인문학은 세상 권력 앞에 무력해 보일지라도 바로 삶과 그 삶을 지탱하는 사랑의 에너지처럼 신기하고 불가해한 것, 삶을 삶답게 만드는 유용한 것,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희망을 주는 것, 그러면서 자족하는 모습이 두려워 스스로 부끄러워하며‘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성만 서평위원/이화여대·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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