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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짐만 떠넘기는 사회
학교에 짐만 떠넘기는 사회
  •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 승인 2015.03.0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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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 이덕환 논설위원
국회가 지난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인성교육진흥법’에 따라 전국의 모든 초·중·고가 7월부터 강도 높은 인성교육을 실시한다. 장관급의 국가인성교육위원회가 마련할 인성교육종합계획에 따라 정부가 인증해줄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다. 국민적 노력이라는 핑계로 지자체와 지역사회에도 학교의 인성교육을 지휘·감독하는 책임과 의무가 주어진다.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예·효·정직·책임·존중·배려·소통·협동과 같은 핵심가치의 실천에 필요한 지식과 공감·소통·갈등해결 능력을 길러줄 것이라고 한다.

반인륜적 사건이 끊이지 않고, 약자에 대한 흉포한‘갑질’이 도를 넘어선 상황에서 인성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국회의 노력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전례를 찾을 수 없다는 해괴한 법안을 통과시킨 국회의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국회가 인성을 상명하달식으로 보급할 수 있는 ‘국민체조’정도로 여긴 것이 분명하다. 거짓과 갑질이 만연된 사회에서 학교 교육으로 인성을 길러줄 수 있다고 믿는 국회의 상상력과 순진함이 놀랍다. 인성은 학생들이 가정과 사회에서의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체득하는 것이지 학교 수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평범한 상식은 철저하게 무시됐다.

교육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하게 부실화된 영역이다. 물론 우리의 뜨거운 교육열이 식어버린 것은 아니다. 변한 것은 정부의 교육 정책과 학교 현장이다.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져버린 정부의 교육 정책은 이익집단으로 변해버린 사범대·사교육·학부모·언론에 휘둘려 휘청거리고 있다. 학교와 교실의 현실도 참담하다. 이제 학교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도 없다. 교사도 스승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인성교육진흥법에서도 그런 인식이 분명하게 확인된다. 학교와 교사의 역할은 국민체조 수준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수동적인 수준으로 끝난다.

고비용·저효율 집단으로 전락해버린 학교는 더 이상 학생들이 학습을 통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학습 효율은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버렸다. 학교만 믿다가는 상급학교 진학조차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지식 교육의 책임은 오래 전에 사교육 시장과 선진 외국으로 넘어가 버렸다. 수능 준비의 책임마저도 EBS에 빼앗겨버렸다.

물론 사회가 학교와 교사에게 억지로 떠넘기는 업무가 줄어든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학교와 교사들은 사회가 떠넘겨버린 무거운 짐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다. 학생들의 상급학교 진학에 필요한 학생부를 작성하는 일이 그렇다. 학생부에 기록되는 정보의 양은 상상을 넘어선다. 교사에게 학생부 작성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교사들이 애써 작성한 학생부 자료가 본래의 목적으로 제대로 활용된다는 보장도 없다. 대학이 그렇게 많은 자료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교육외적 업무도 넘쳐난다. 도시락 준비를 귀찮게 여기는 학부모를 위해 급식 관리도 해줘야 하고, 부실한 가정교육과 사회 안전망을 보완해주는 역할도 떠맡아야 한다. 왕따와 학교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학교와 교사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올해부터는 교복의 공동구매를 대행해주는 역할까지 맡겨졌다.

그런 학교가 이제는 가정과 사회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인성교육까지 떠안게 된 것이다. 학교에 대한 우리의 기대 수준을 낮춰야 한다. 학교의 일차적인 책임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인성교육과 같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은 더 이상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늪에 빠진 학교를 살려낼 수 있다.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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