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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고전]<36>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
[우리시대의 고전]<36>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
  • 선우현 / 청주교대·철학
  • 승인 2002.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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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1 13:24:03
선우현 / 청주교대·철학

‘의사소통행위이론’(1981)은 현존하는 서구 최고의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하버마스의 사상적 핵심이 담겨있는 저서다. 이 책에서는 흔히 ‘언어철학으로의 전환’이라고 일컬어지는 사상적 전환이 시도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하버마스는 그 때까지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사회철학적 난제들에 대한 자신의 ‘잠정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주목할만한 것이 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로 대변되는 비판이론 1세대에서 상실된 사회비판의 규범적 토대를 재확보하는 방안에 관한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비판이론 1세대는 이성이 총체적으로 도구화 돼가는 사태를 제대로 고발했지만, 그러한 비판을 제기하는 준거점으로서 이성마저 도구화하는 ‘수행적 모순’에 빠져버림으로써 마침내 비판의 척도가 상실되는 난국에 처하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은 사회비판의 새로운 규범적 토대로서 ‘의사소통합리성’을 제시함으로써 중단되었던 사회비판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기존의 ‘주체 중심적 합리성’의 한계를 넘어 ‘상호 주관적 합리성’으로서 의사소통합리성에 의거해 새롭게 ‘비판적 사회이론’을 정립하려는 하버마스의 이론 기획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러한 이론 기획이 갖는 철학적 의의와 중요성은 다음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근대화의 역설’을 불가피한 것으로 수용했던 베버와 비판이론 1세대의 ‘비관론’에 대항해, 그러한 역설의 본질을 해명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일시적인 계몽의 역설, 즉 ‘물화’가 초래됐지만 그럼에도 노동에 기초한 생산력의 발전을 통해 그러한 부정적 사태를 극복하고 인간해방을 이룰 수 있다고 본 맑스의 ‘낙관론’에 대해, 그러한 입론이 지닌 ‘근거의 빈약성’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인간해방의 근본 토대로서 ‘절차적 담론(대화)이론’을 새로운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셋째, 이성과 계몽에 관한 회의적 관점에서 이성의 해체를 주창하는 ‘反이성주의’에 맞서, 이성과 그것의 능력을 바탕으로 자율적 해방사회의 구현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설득력있게 입증해 보인다. 넷째, 사회의 전개과정을 객관적으로 분석 해명하는데 치중한 나머지, 비판의 대상과 관점을 제거하고 사회 진보의 방향성을 상실해버리는 루만의 ‘몰가치적 경험론’에 대항해, 사회비판의 토대를 유지하면서 여전히 사회의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실천적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다섯째, 특정 계급(층)의 관점이나 당파적 이해관계가 배제된, 누구나 정당한 것으로 수용할 수 있는 비판의 준거점은 오직 의사소통합리성에서만 확보될 수 있다는 입론을 세운다. 끝으로, ‘정치경제학 비판’과 같은 분석 방식으로는 더 이상 해명될 수 없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이론체계로서 합리성이론이 갖는 이론적 우위성을 논증했다.

나아가 하버마스는 이처럼 의사소통합리성에 입각해 ‘정태적 차원’에서 사회비판을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목적합리성’과 ‘의사소통합리성’의 범주적 구분을 사회진화론의 지평으로 확대해 ‘체계/생활세계의 2단계 사회이론’으로 정식화한다. 이를 통해 그는, 체계가 자신의 형성을 가능케 한 토대인 생활세계를 식민화하는 현상, 즉 ‘체계의 논리’가 자신의 관할 영역을 벗어나 생활세계를 침범해 의사소통합리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의사소통 구조를 자신의 논리로 대체함으로써 초래되는 ‘생활세계의 내적 식민화’를 통해, ‘동태적 차원’에서 근대화의 역설을 규명한다. 이어 체계의 논리를 본래의 영역에 되돌려 놓음으로써, 생활세계의 의사소통구조를 본래의 상태로 회복하고 체계와 생활세계 양자가 상호 균형적으로 공존토록 함으로써 근대화의 병리현상이 극복되고 계몽의 기획이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합리성은 현실사회의 왜곡성을 비판하는 척도로서 작용할 뿐, 현실적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하버마스는 담론적 절차에서 발현되는 절차적 합리성으로서 의사소통합리성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사회혁신을 도모하며 해방사회의 구현을 추동하는 ‘정치적 실천력의 원천’임을 말하고자 한다. 이는 1992년 출간된 ‘사실성과 타당성’을 통해 ‘의사소통행위이론’을 ‘법철학적 정치이론’으로 재편하는 작업에서 구체화된다.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
본 대학에서 ‘절대자와 역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교수 자격 논문으로 제출한 ‘공론영역의 구조변환’을 1962년 출간했다. 1964년 호르크하이머 후임으로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철학과, 사회학과 교수로 취임해, ‘인식과 관심’을 강연했다. 이후 학생운동권과의 논쟁을 계기로 교수직을 사임하고 81년까지 막스 플랑크 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1981년 ‘의사소통행위이론’을 출간한 2년 뒤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교수로 재취임한 후부터, 1995년 퇴임할 때까지 ‘근대성의 철학적 담론’(1985), ‘사실성과 타당성’(1992) 등 수많은 연구 성과를 양산해 냈다. ‘실증주의 논쟁’(1961~8)을 비롯해 ‘좌파 파시즘논쟁’, ‘하버마스-루만 논쟁’, ‘포스트모더니즘 논쟁’ 등 연속적인 논쟁을 열정적으로 벌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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