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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문화관광부 ‘국어발전 종합계획 시안’ 무얼 담고 있나
진단 : 문화관광부 ‘국어발전 종합계획 시안’ 무얼 담고 있나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10.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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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9 16:09:07
지난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문화관광부와 국립국어연구원이 함께 마련해 발표한 ‘국어발전 종합계획 시안’에 각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말 발전을 위해 정부가 나섰다는 것뿐만 아니라, 시기에 있어서도 세계화, 국제화 바람을 업고 불어닥치는 영어 열풍과 우리말 환경오염이 심각한 상황에서 그 의미는 자못 크다.

심각한 한글 오염 인식 바탕

시안을 만들기로 한 이면에는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어가 없어질 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깔려있다. 유네스코는 얼마 전, 전 세계의 다양한 언어 가운데 절반 이상이 1백년 안에 소멸할 것이라는 전망을 발표해 비영어권, 소수민족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했다. 이번 문화관광부의 발표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언어라는 바깥의 칭송과는 달리 한글 홀대에 본의 아니게 앞장 서온 정부의 관행을 반성하고, 또한 그 동안 수없이 많이 지적됐던 국어 오염을 심각하게 깨달은 결과로 보인다. 언론매체와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우리말 오염사례, 지나친 영어 중심 교육으로 더욱 심하게 벌어진 국어교육의 부조화 문제, 우리 어법에 맞지 않는 번역 문투의 사용 증가, 국적 불명의 외래어·외국어 간판 및 광고의 남용 등 국어사용 환경을 악화시키는 요인들에 대해 ‘환경정화’를 하겠다는 것이 시안 마련의 가장 큰 목적이다.

담당자인 문화관광부 국어정책과의 박효건 씨는 “중요한 것은, 문화관광부를 비롯한 정부에서 국어 환경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국어정책은 객관적이고 타당한 기초조사자료조차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왔다. 이제 틀을 새로 짜야 할 시기이다”라고 밝혔다.

종합계획 시안에는 크게 8가지의 중점추진사업이 들어있다. 정책 추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어문정책공동협의회’를 구성하고 문화관광부·교육인적자원부·외교통상부·통일부·산업자원부 및 정보통신부 등 어문정책 관련부처간에 협조체제를 강화할 예정이다. 또 국어관련 연구 자료의 상호 공유를 위해 국내 대학의 국어국문학과, 국어교육과, 언어학과 및 해외 대학의 한국어과 등 어문 관련 학과, 언어정보처리 관련 대학·연구소 등을 연결하는 ‘국어 정보 교류 협력망’을 구성한다는 계획도 세워뒀다.

시안 가운데 논란이 예상되는 것은 공무원들에게 부과되는 ‘국어능력인증시험’ 제도다. 현재 형식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공직자 대상의 국어순화 교육을 실질적으로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내놓은 것이 모든 공무원대상의 교육원에 국어 순화과정을 설치하고, 시험을 보는 방안이다. 내년 시범적으로 문화관광부 전직원을 대상으로 연 2회의 교육을 실시한 뒤 2004년 중에는 모든 공무원대상의 교육원에 필수 과정으로 국어 순화과정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고, 2005년 이후에는 전 행정기관에서 소속 직원을 대상으로 연간 2회 이상 공직자 교육을 실시하도록 한다는 것. 인증서가 있어야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수 있을 뿐더러 공무원이 된 후에도 공무원교육원에서 의무적으로 국어교육을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정책에 대해 당사자인 공무원들의 반발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박효건 씨는 “아직은 문화관광부 자체 사업계획 시안이고, 관계부처간의 협의를 통해 내용을 가다듬어야 할 시기이므로 공무원들의 반응은 파악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다만 충분한 합의와 ‘설득’ 과정을 거쳐 또 하나의 불필요한 업무라는 인식은 최소화할 생각이다. 그러나 회의적인 반응도 만만치 않다.

제도나 법령보다 일상언어가 중요하다

이강옥 영남대 교수(국어교육과)는 “한쪽에서는 제주도 영어공용화 정책 등을 강하게 이끌어온 정부가 또 한쪽에서는 우리말 순화에 앞장서겠다는 움직임이 일단 앞뒤가 맞지는 않지만,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정부의 일방적인 질주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정책이 시험인증제 같은 ‘제도’로 귀결되면 곤란하다. 제도나 강제가 아닌 국민 개개인의 일상 안에서 언어생활 향상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 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

한글단체들은 정책 마련과 비판에 함께 참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글학회 한 관계자는 “협조나 참여에 대해 아직까지 내부에서 논의한 적이 없지만, 이번에 나온 시안은 그 동안 여러 한글 단체들이 함께 고민해온 문제”라고 밝혔다.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회장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들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일단 시안을 마련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게 생각한다”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공무원들의 반발도 조금은 예상되고, 정권 말기라서 과연 지속적으로 계획이 이뤄질 지 불안하기는 하지만, 일단은 적극적으로 돕고 비판할 것이 있으면 비판할 생각이다. 어쨌든 문화관광부에서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는 것은 확실하다”라는 것이 남 회장의 판단이다.

문화관광부는 시안을 법령으로 확대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지만, 정책들에 힘을 싣기 위해서 ‘국어기본법(가칭)’ 등의 제정을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 또한 국어 유해환경에 대한 인위적 규제 및 단속 등의 규정은 최소화할 방침이고, 각계에서 불고 있는 한글날 국경일 승격 문제도 고려한다는 계획이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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