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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 : 말문 연 현대물리학의 최신 이론 소개서들
책들의 풍경 : 말문 연 현대물리학의 최신 이론 소개서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2.10.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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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에 대한 위기의식이 동력으로 작용
미국 서점의 교양과학 코너에는 수학보다 물리학 도서가 훨씬 많다. 우리나라는 정반대로 수학 관련 책들이 물리학을 열배는 앞지른다. 수학책이 많다기보다 물리학 책이 워낙 희귀해서다. 김제완 선생의 ‘겨우 존재하는 것들’ 외에는 교과서용 원서, 학회지, 청소년 교육용 도서가 물리학 단행본의 면면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물리 교양서들의 출간이 본격화됐다는 느낌이다. 지난해 10월 물리학과 음악에서의 창조적 직관을 탐구한 아서 밀러의 ‘천재성의 비밀’(사이언스북스 刊)이 출간된 후 스티븐 호킹의 ‘호두껍질 속의 우주’(까치 刊), 올 3월 브라이언 그린의 히트작 ‘엘러건트 유니버스’가 연이어 번역돼 나온 것.

이들은 모두 현대물리학의 중요한 성과들을 담은 교양서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특히 ‘엘러건트’는 현대물리학 중에서도 가장 최신의 이론인 초끈이론을 명확하고 쉬운 정통의 문법으로 소개했는데, 본격 교양서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빅뱅이론의 창시자 조지 가모브가 양자역학의 원리를 쉽게 기술한 ‘조지가모브 물리열차를 타다’(이상 승산 刊)도 이 분야 명작으로 꼽히는 책이고, 최근에는 양자전기역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도모나가 신이치로의 말년 에세이 ‘물리학이란 무엇인가’(사이언스북스 刊)도 출간됐다. 물리적 사유를 규명하기 위한 철학적 탐구인 이 책 또한 물리학의 기초교양서로서 손색이 없다.

물리학에 대한 위기의식이 동력으로 작용

출판 준비 중인 책도 많다. 리처드 파인만의 강의록을 쉽게 펴낸 ‘렉처 시리즈’가 도서출판 승산에서 한창 번역 중이다. 파인만의 강의록은 이미 1960년대에 미국 물리학도들의 교과서로 널리 읽힌 책인데, 파인만 물리학의 입문서로 예전에 벌써 번역됐어야 했다. 그 외 머레이 겔만의 ‘스트레인지 뷰티’, 볼츠만의 ‘볼츠만의 원자들’ 등도 곧 교양과학 서가에 등장할 예정이다.

‘볼츠만의 원자들’을 번역중인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는 단순번역이 아니라 한 챕터를 직접 써 “세간에 이상하게 이해되고 있는 ‘엔트로피’ 이론을 제대로 설명해볼 요량”이라고 말한다. 그 외에 정재승 고려대 교수와 성균관대 이상민 박사, 고등과학원 학자들이 중심이 돼 번역이 진행되고 있다.

생물학과 수학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국내 과학교양서에 이제 물리학도 동참하게 됐다. 하지만 아직은 겨우 이륙단계이고 넘어야 할 난관도 많다.

우선 물리학 단행본이 꽃피기 시작한 배경으로, 갈수록 허약해지는 국내 물리학 연구토대가 일종의 반작용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박병철 서울대 강사(물리학)는 “요즘 대학 교과과정을 보면 고등학생 수준의 물리를 가르치는 실정이다. 지원자도 갈수록 줄어든다. 일선의 선생들은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라고 현장의 암울한 분위기를 전한다. 이 때문에 젊은 선생들이 소명의식으로 해외 고전번역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물리학 교양서들의 증가는 물리학계의 자구책의 일환인 셈이다.

물리학 뿐 아니라 과학도서들의 전반적인 경향이지만, 최근 유행하는 도서들을 보면 지나치게 스타급 학자들에 의존한 인물 에피소드에 기울고 있다는 느낌이다. 특히 리처드 파인만의 경우 정작 그의 주저도 번역 안된 상태에서 뒷이야기만 끝도 없이 피어오르는 꼴이다. 출판사로서는 수입성을 염두에 둬야 하니 고전소개가 급선무인 학자들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장 형성의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물리학 독서시장의 열악성은 ‘엘러건트 유니버스’의 눈부신 ‘선전’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은 아마존에서 전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오랫동안 기록한 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출간 후 7개월 동안 1만부 판매에도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아폴로 신화와 ‘스타트랙’ 신드롬도 없는, 사회 전반의 척박한 물리학적 상상력을 고려할 때 과기처 등 정부부처에서 해외고전 번역지원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는 학계 일각의 요구도 있다.

‘엘러건트 유니버스’는 꼭 물리학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흥미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둘 필요가 있는 책이다. “물리학 이론을 일상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낙엽 흩날리는 스산한 풍경을 수학으로 납득시키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현실에서 이렇게 쉽게 현대물리학의 역사와 이론을 서술한 책은 찾기 힘들다. 특히 초끈이론은 수많은 현대 물리학자들이 우주를 설명하려는 원대한 꿈을 품고 뛰어든 분야로, 우주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을 우리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역사상 최초의 이론이다. 물리학이 우주에 대한 해석학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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